말씀영상

  • 홈 >
  • 하나님말씀 >
  • 말씀영상
말씀영상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이병수목사 2012-05-06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08

http://cjpfuture.onmam.com/bbs/bbsView/5/3346563

2012년 5월 6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5:22-23

제목: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굳게 붙들고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바로가 대답합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야 한단 말이냐? 나는 여호와를 모르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광야로 3일 길을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집트 왕 바로는 “너희가 배가 부르구나!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일을 중단하고 한가로이 예배를 드린단 말이냐” 바로는 애굽의 감독관들을 불러서 명령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노예들에게 짚을 주지 말고 스스로 짚을 구해다가 벽돌을 만들게 하라. 그러나 하루 생산량은 전과 같이 그대로 하라. 그들이 게을러 빠져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정신없는 말을 하는구나!”

 

그들이 가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말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않겠다. 스스로 짚을 찾아서 벽돌을 만들어라. 그러나 전에 짚을 나누어 주었을 때와 같은 양을 채워야 한다.” 허나 도저히 짚을 구해다가 하루 벽돌 할당량을 맞추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자 애굽 관리들은 채찍으로 때리며, 더 가혹하게 몰아 부쳤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분위기가 급변한 것입니다. 전에는 강제노역이 힘들긴 해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헌데 모세와 아론이 온 이후로 애굽의 태도가 돌변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혹독한 시련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도 수 많은 시련들이 찾아 옵니다. 그 때에 우리는 누구를 찾아 갈 것입니까?

1.(나는 누구를 찾아 갈 것인가?) 이 시간에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내 인생에 시련이 찾아 왔을 때, 나는 누구를 찾아 갈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누구를 찾아갔습니까? 바로왕을 찾아갔습니다. 본문 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1)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누구에게 갔습니까? ?바로입니다. 바로는 누구입니까? 당시 절대 권력자입니다. 힘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바로를 찾아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들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누구를 찾아가야 합니까?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사람을 찾아가 호소하고 도움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들의 처지를 말씀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헌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적용)혹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예! 물론 사람들에게도 찾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먼저 구하라! 그리고 사람에게 찾아가라! 그리하면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미래교회를 개척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찾아가 도움을 구하면 예비된 사람처럼 도움을 주는 것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성서의 예)역대하 16장에 보면 남 왕국 유다 나라에 3대 왕인 아사왕의 말년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사왕은 선한 왕이었습니다. 우상을 파괴하고, 신상을 제거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통치하는 동안 정치 외교 경제에 안정을 주셨습니다. 헌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한결 같지 않았습니다. 통치 말년에 아사 왕은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이 말씀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사실 병이 들어 의원들에게 묻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병이 들면 좋은 의사와 병원에 찾아가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헌데 성경이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아사는 하나님은 먼저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의사들만 의지했습니다. 의사들이 자신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결국 아사는 그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 안타깝지요?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적용)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질병이든지 무슨 문제든지 먼저 하나님께 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구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주권을 갖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의사와 의술의 도움을 받지만, 살게 하시고, 새살이 돋게 하시고, 약이 효과가 있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치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보다 성령님보다 절대로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낱낱이 고하고,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리고 기도 중에 주시는 지혜와 생각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십니다. 그러나 구해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을 찾아가기 전에, 하루에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누구에게 갔습니까? 모세입니다. 20-21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먼저 사람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람을 찾아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모세와 아론을 만나서 남의 탓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원망을 합니다. 사람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사람과 다투는 것입니다. 이건 전혀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2)그러나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22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왔다는 말씀은 멀리 갔다가, 지금까지는 구하지 않다가 어려워지니까 돌아와 구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왔다는 말은 평소에도 기도하였으나, 위기상황이 발생하자 더 가까이 더 간절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위기를 만났을 때,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적용)헌데 중요한 것은 평소에 경건생활을 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전혀 기도생활, 말씀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이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께로 갈까요? 아니요? 사람에게 갑니다. 허나 평소에 늘 기도하던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더 주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예화)제 2차 세계대전 이 발발했을 때... 영국 국민들은 큰 위기 앞에 있었습니다. 나라는 극도의 혼란과 절망 속에 있던 때였습니다. 그 때 대영제국의 여왕은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영국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에게 연설을 부탁했습니다. 한 사람은 정치 지도자 윈스턴 처칠 경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종교지도자 윌리암 템플 주교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각 방송에 나와서 연설을 했습니다. 온 국민들은 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들이 무슨 말을 할까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헌데 그 두 사람은 미리 짜고 한 것도 아닌데 결론이 똑 같았습니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히 무릎 꿇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이 후 영국 전 국민의 70% 이상이 전쟁의 위기 앞에 있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 가까운 교회로 찾아갔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마음에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전쟁에서도 모든 예상을 깨고 영국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 엎드려 구하십시오. 지혜를 구하세요. 도움을 구하세요. 은혜를 구하세요.

 

2.둘째로 우리가 깊히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왜 상황은 더 나빠지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신자들의 질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왜 상황은 그대로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사는데, 왜 고난은 끝이 없는가?

사실 모세와 아론은 순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설득하셔서 왔고, 하나님이 전하라는 말씀을 전했는데 벌어지는 상황은 어떻습니까? 더 가혹한 탄압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더 복잡해 졌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22-23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다음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가 피를 토하며 꼬꾸라졌다!라든지... 바로가 두려워 하며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다든지.. 해야 하지 않습니까? 헌데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백성들은 더 학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적용)사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일들이 수 없이 벌어집니다. 눈물로 호소하며 기도하고 돌아가도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영적으로 당황스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도들이 목사님! 교회에 나오고, 기도해도 왜 해결이 안됩니까?라고 물을 때면 너무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는데도 나쁜 결과가 생길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먼저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장 결과가 나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일은 더 복잡해지고, 백성들은 더 학대를 받게 되었습니까?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지만, 순순히 그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는 강팍해서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아라. 내가 애굽의 처음 난 것들을 멸할 때에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고, 두려워 너희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장기전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항이 강할수록 하나님의 능력도 강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련이 크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바로가 강팍 할수록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은 더 강하게 나타났고, 그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바로가 항복했다면 사흘 길을 가서 광야에서 제사하고 돌아와 그대로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해방입니다. 자유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적용)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그렇습니다. 환경을 조금 바꾸어 주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해방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려 함입니다. 천국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종살이를 하는 사람이 좀 더 좋은 옷을 입는다고,,, 좀 더 넓은 집에 살게 되었다고...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게 되었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환경이 좋아진다고 뭐가 그리 행복하겠습니까? 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헌데 우리의 관심과 기도는 늘 환경을 좋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 데려 가기 위함입니다.

?또한 빈손으로 가지 않고, 애굽의 금은보화를 바리 바리 싸서 가게 하시기 위해서 완전 항복을 받아내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애굽의 처음 난 것들이 죽자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하는 대로 금은 보화와 짐승들을 다 내줍니다. 원하는 대로 빨리 갖고 제발 떠나기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성서의 예)요셉을 잘 아시지요? 어느 날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킵니다. 세겜에 가서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즉시 순종합니다. 요셉이 살고 있는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100km입니다. 어린 요셉이 걸어서 나흘은 가야 하는 길입니다. 드디어 세겜에 도착을 했습니다. 헌데 형들은 이미 도단으로 떠났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걸어서 하루 길인 30km입니다. 결국 요셉은 성실하게 도단까지 갑니다. 사실 안가도 됩니다. 아버지는 세겜에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갔더니 형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만나지 못했다고 하면 됩니다. 헌데 요셉은 도단까지 찾아갑니다. 도단까지 찾아갔던 이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는 길이었습니다. 도단에 갔다가 형들에게 사로잡혀 죽을 위기를 만납니다. 결국에는 애굽으로 팔려가 노예가 되고 맙니다.

생각해 보세요. 요셉은 성실했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헌데 결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말씀에 순종했는데, 결과는 나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벌어진 나쁜 일이 정말 나쁜 것이었습니까? 겉으로 볼 때는 나쁜 결과였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심으로 결국은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둘째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는데도 결과가 더 어려워지고 힘들어지고 나빠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큰 그림을 갖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혹독하고 가혹한 어려움들을 주었습니까? 애굽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하심입니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가나안 약속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400여 년 간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시고,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허나 누가 하나님의 이 큰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가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요셉 자신을 연단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결국 바로 앞에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3년이란 시간동안 그를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상 황 속으로 몰아가셨지만,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간 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바로를 곁에서 섬기는 보디발의 집으로 요셉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 바록 감옥이지만 왕의 신하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그를 보내십니다. 거기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십니다. 나중에 그 관원장이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하게 하십니다. 잘 보면 점점 요셉은 바로에게로 가까이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헌데 요셉이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영적으로 뛰어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약간은 볼 수 있지만 다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다 알고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겠지! 하나님이 최종승리를 주시겠지! 믿고 가는 것입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십시오. 단기적으로는 나쁜 결과였지만, 그 일로 망했나요? 실패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내 믿음이 좋아졌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생각지도 않은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큰 그림을 갖고 나를 이끄시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 시련이 찾아 왔습니까? 하나님께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간절함으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보는데도 여전히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힘겨우십니까?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향하신 큰 그림을 갖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그림을 완성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모세와 아론의 가족 이야기 2012.05.20 0 437
다음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2012.04.29 0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