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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라 | 이병수목사 | 2012-07-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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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12:40-42 제목: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던 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우리는 출애굽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기 원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어중이떠중이들도 여호와의 군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고통의 밤을 여호와의 밤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2절입니다.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1.“이 밤은”어떤 밤입니까?? 이 밤은 430년! 애굽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날 밤입니다. 이 날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430년이 되는 이 날 밤은 닷새 전에 미리 정해 놓은 어린 양을 잡는 날입니다. 저녁 때에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먼저 양의 피를 받아서 출입문에 십자가 모양으로 바릅니다. 아래 위로, 좌 우로 피를 바릅니다. 그리고 고기는 구워서 먹습니다.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습니다. 이 날 밤에는 절대로 밖으로 나오면 안됩니다. 밤이 깊어지자 애굽 온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애굽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의 처음 태어난 것이 전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애굽 온 나라에 죽음으로 통곡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안전합니다. 집집마다 장자를 잃은 슬픔에 울부 짖기 시작합니다. 바로 왕의 장자도 죽었습니다. 바로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급하게 부릅니다. 그리고 빨리 애굽 땅을 떠나라고 명령 합니다.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밤을 새워 애굽 땅을 떠나왔습니다. 이 밤은 430년의 고통의 날들이 끝나는 구원의 밤이었습니다.
헌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밤’은 ‘애굽에서 나오는 그 날 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넓은 의미로 애굽에서 보내야 했던 수 많은 날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몇 날 밤을 보냈을까요? 430년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날수로 계산하면 430년 곱하기 365일하면, 156,950번의 밤을 보냈습니다. 놀래지도 않으시네요!!! (예화)저는 27개월을 군 생활 했습니다. 27개월이면 810번의 밤을 보내야 합니다. 이것도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군대에서는 야간에는 경계근무를 섭니다. 매일 야간 보초를 서는 것입니다. 방위병이나 공익근무한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예요. ㅋ ㅋ. 왜냐면, 야간보초를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간 보초를 서면서 오늘도 하루 밤이 갔다. 이제는 몇 일 밤만 보내면 된다며 날을 새었던 기억이 납니다. 810번의 밤을 보내는 것도 너무나 힘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밤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156,950번의 밤들을 고통 가운데 보냈습니다. (늘 목회하면서 묻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는가?하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분들이 없습니다. 고통을 주시는 이유 는 우리를 내적으로 성숙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외적으로 우리들이 잘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진짜 관심은 내적인 성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 고독, 고통을 주십니다. 헌데 우리는 ‘하나님! 고통은 싫어요! 고난은 사양 할래요!’합니다. 고난 없는 삶은 갓난 아이와 같은 수준인 것입니다. 갓난 아이들은 작은 고난도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수준이 어린 아이와 같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내적으로 성숙케 하기 위해서 고난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 땅에 고통 없는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고통의 밤을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어느 선교사님은 ‘지금 받는 고통 속에 그냥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이유는 이 고통이 끝나면 또 다른 고통이 오기 때문에 새로운 고통에 적응하느니 이미 적응된 고통과 함께 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허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156,950번의 고통의 밤을 보낼 때,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56,949번의 밤 동안 떠나 계셨다가 156,950번째 이 날 밤에만 구원하시려고 찾아 오신 것이 아닙니다. (적용)고통의 밤을 보내실 때,,,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아신다” - 이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내 고통을 아시기나 할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고통가운데 절대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적용)하나님은 인류를 위해서 구원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주님의 이름은 두 가지입니다. 주님이 갖고 오신 이름은 약속입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백성들의 죄를 깨끗이 씻으실 자’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 뜻은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는 것입니다. 사명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이하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영원토록입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잠시 잠간 왔다가 다시 가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세상은 성령을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의식하는 사람이 참된 신자인 것입니다.성령님은 오셔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주님의 약속을 믿어 의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밤을 보내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모두 아십니다. 또한 고통 중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들이 성숙해지도록 때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넉넉히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고난의 밤을 보낼 때 결단코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상실의 아픔으로 밤을 지샐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질병으로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우리 하나님은 함께 계십니다. 2.또한 우리 하나님은 그 고통의 밤을 끝내시고 ‘여호와의 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밤이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밤입니다. 메시지 성경으로 42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인도해내시느라고 밤을 새워 지키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때로부터 대대로 여호와를 위해 이 밤을 지켜야 했습니다.”여기에서 출애굽 하던 날 밤에 하나님은 그들을 밤새도록 지불침번을 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밤을 새워 지키셨다는 말씀도 그 날 하루만 지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156,950일의 밤을 쭉 함께 하시며,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121 :3-4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서 기꺼이 불침번을 서 주셨습니다. 불침번을 다른 말로 파수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신자들에게 주신 사명이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성서의 예)에스겔 3장은 에스겔이 부름 받는 소명장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수꾼으로 부릅니다. 이 사명은 오늘 날 우리들에게는 동일하게 주시는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의 파수꾼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파수꾼들이 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파수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이 나라에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인사-당신을 파수꾼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파수꾼의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다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깨어 있는 것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깨우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파순꾼의 사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열왕기서에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도단이라는 마을을 겹겹이 포위했다. 아침에 엘리사의 사환이 보니까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아하 내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적들이 우리를 포위 하였나이다’ 그 때 엘리사는 무엇을 합니까? 말씀을 선포합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니 청년의 눈이 열리매 하나님의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하자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목사의 사명은 성도들의 눈을 열어주는 사명입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눈을 열어야 합니다. / 우리 성도들이 삶의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는 아람군대만 보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저들과 함께 하는 자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자가 더 강하십니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성도들의 눈을 열어 주님이 함께 하심을 보게 하옵소서!”기도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의 파수꾼이 되십시오. 현실 앞에서 두려워 하는 자녀들에게 ‘두려워 하지 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세상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단다.’그리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3.고통의 밤을 여호와의 밤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고통의 밤을 맞았을 때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첫째로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자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의 가장 큰 공격은 사람들은 분노케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의 시대는 분노의 시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화가 나 있습니다. 모든 문제들을 분노로 풀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분노합니다. 노동자들이 분노합니다. 총파업, 투쟁, 파괴, 공멸로 가득합니다. 청소년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의 원인은 화를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분노의 수준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화가 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악에 바쳐 살아갑니다. 악한 마귀가 오늘 날 수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사실 세상을 보면 분통터지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국회의원들을 보고, 종북 세력들을 보면 분통이 터집니다. 일본, 중국이 하는 일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용히 생각해야 합니다. 같이 분노해야 할까요? 솔직히 분노한다고 해결되던가요? 속은 시원하다고요? 화가 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분노는 문제를 더 어렵게 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줍니다. 성도들은 분노가 최선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의 밤을 맞이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쏟아 놓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손과 발은 착고에 채워져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기가 막힙니까?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이 분노했습니까? 분통을 터뜨렸습니까? 아닙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에서 “한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원망할 줄 알았습니다. 분노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바울과 실라는 도리어 기도하고, 찬양을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영적 지가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기도와 찬양이 문제는 푸는 열쇠였습니다. (2)둘째로 고통의 밤을 맞았을 때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베드로전서 2장 19절입니다. 찾아 보겠습니다.379면입니다.‘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부당하게 받는 고난이란 정직하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다.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 있다.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심판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 받는다고 절망하지 말고, 분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고난을 참으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22절-24절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주님은 아무 죄도 없으시지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래도)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주님은 같이 욕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부활하고 보자, 밤길 조심해라! 내가 반드시 찾아간다!! ‘I Will Be Back!’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하나님께 모두 맡겼습니다. 우리들도 맡겨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분노하지 말고, 참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헌데 내가 분노하면 하나님에게서 기회를 뺏어 오는 것입니다. 내가 열받아하고, 맞서 싸우면 결국 나도 죄를 짓기에 하나님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12절-16절입니다.“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입니다. 신자이기에 받는 고난입니다.)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통의 밤을 보낼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십시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고난을 넉넉히 이기도록 충만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 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난을 받는 것을 절대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럼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결론 우리들이 고통의 밤을 보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성숙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여호와의 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밤에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분노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생각함으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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