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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다 | 이병수목사 | 2012-07-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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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17:1-6 제목: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훈련하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사람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야곱입니다. 야곱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사람입니다. 거짓말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다루시기 위해서 대사기꾼 라반을 통해 훈련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다듬어집니다. ②또 환경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고독, 고난을 통해서 연단하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뭐예요? 내적으로 성숙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기 위함입니다. 출애굽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애굽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환경이 바뀌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더 좋은 환경을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적용)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들의 기대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을 기대합니다. 만사가 내가 소원하는 대로 잘 풀리길 기대합니다. 환경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만사형통’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지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실증)물을 한 잔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마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맛있는 밥을 먹는 이유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먹는 것입니다. 한 잔의 물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려고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예화)인부들에게 땅을 파게 했습니다. 조금 있더니 다른 곳을 파게 했습니다. 또 다른 곳을 파게 했습니다. 인부들은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장난하는거냐! 왜 여기 팠다가 저기 팠다가 하느냐?’불만이 생기니까 하기가 싫은 거예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거예요. 그 때 감독관이 인부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지금 여기 어딘가에 가스가 누출되고 있습니다. 빨리 찾아서 복구하지 않으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지시에 잘 따라주십시오.’이 말을 듣는 순간 인부들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마음이 달라지니까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보세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가고 있는 길의 목적과 이유를 알고 나면 마음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 이후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환경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제 세 번째 원망입니다. 처음에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올 때에 원망했습니다. 사흘 길을 걸어서 도착한 마라의 물이 너무 써서 원망을 했습니다. 애굽에서 가지고 온 양식이 바닥이 났습니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 있을 때에는 고기 국물이라도 먹었는데,,, 떡이라도 배불리 먹었는데,,,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이곳으로 불러내어 여기서 굶어 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을 보면 하나 같이 환경이 안 좋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환경만 좋으면 우리는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적용)우리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내 문제 해결해 주시면 내가 왜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잘 믿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이 좋지 않아서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별 말씀 안하시고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 주셨습니다. 메추라기는 철새과에 속하는 새입니다. 메추라기는 떼를 지어 아주 낮게 날아가는 새입니다. 우리 나라에 참새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메추라기가 날 때는 아이들도 막대기로 잡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헌데 메추라기들이 뭔가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이라엘 진영으로 곧장 날라 와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는 것을 보고 ‘이게 뭐냐?’What is this? 이것이 무엇이냐? 히브리어로 ‘만후’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매일 새벽 40년 동안 내려 주셨습니다.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제 이들이 감사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던가요? 아닙니다. 여전히 원망을 합니다. 나중에는 만나가 지겹다고 원망을 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마늘과 부추와 파를 먹었는데, 여기에서는 만나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마늘과 부추와 파는 정력제입니다. 매일 만나만 먹었더니, 정력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실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을 주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 해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셨습니다. 더울까봐 구름기둥, 추울까봐 불기둥으로 보호하셨습니다. 헌데 여전히 불평, 불만,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무엇이 문제입니까? 환경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적용)한 번 우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4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잘 살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개인 자가용을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전 너무 자동차가 타고 싶어서 버스를 타고 한 참을 가고 난 뒤에 내려서 몇 시간을 걸어 오기도 했습니다. 해외여행 이렇게 자주 다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돈까스와 짜장면은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할 때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잘 다닌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도사님이 사 주신 오므라이스 때문입니다. 오므라이스를 처음 만나는 날 천국에 온 줄 알았습니다. 노란 계란 속에 숨어 있는 밥! 얼마나 맛있었 던지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헌데 지금은 환경적으로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의 성도들보다 지금 우리가 더 하나님을 잘 믿고 있습니까?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입니다. 깨지지 않는 우리의 굳은 마음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인격입니다. 환경은 너무나 좋아졌지만, 여전히 불평하고,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하고, 원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원망이 왜 나쁜 것인지 아십니까? 출애굽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해 달라고 했느냐? 왜 애굽에서 불러내서 여기에서 죽게 하느냐? 차라리 애굽에 그냥 살게 내버려 두었다면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들의 원망은? 구원했으면 책임을 지셔야지! 이렇게 고생시킬거면서 왜 구원은 하셨냐는 것입니다. (예화)여러분의 자녀들이‘밀어 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낳으셨어요? 낳으면 책임을 져야지요?’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환경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잘해주면 부모고, 못해주면 부모가 아닙니까? 부모와 자녀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힘들다고 누가 구원해 달라고 했나? 편하게 잘 사는데 왜 구원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하시면 되겠습니까? 형편이 어려운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금 환경적으로 너무 힘들고 어려우시더라도 우리들이 품어야 할 마음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사랑한다면 인내의 마음을 갖으십시오. 힘들지만 지금은 가나안을 향해서 가고 있는 길 아닙니까? 그러면 좀 참고 기다리면 안 됩니까? 힘들다고 화를 내기 보다 좀 기다리면 안됩니까?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인내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다면 인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저녁예배 시간부터는 베드로서를 강해설교하려고 합니다. 저녁예배에도 기쁨으로 나오세요. 말씀을 자꾸 들어야 들립니다. 말씀이 들려야 뜨거워집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언제까지 화석화된 믿음으로 사실 것입니까? 들은대로 살아보는 거룩한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 베드로가 무슨 말을 적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글보다는 말과 행동이 앞서시는 분인데, 후대의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것이 베드로서입니다. 무슨 말씀이 기록되어 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정리하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에 이 땅에 사는 한 고난이 있다. 고난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당황하지 마라. 고난이 너무나 힘들 때 주님을 생각해라. 우리 주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데 죽기까지 고난을 받았지 않느냐? 그래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한 마디 불평이나 원망 없이 가시지 않았느냐? 주님을 생각하면서 인내해라. 고난을 인내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성도의 길을 가자!”라는 것입니다. 2.둘째로 우리들이 품어야 할 마음은 ‘내가 누구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예화)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아무추어는 금방 포기합니다. 허나 프로는 어떻게든 극복합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인가? 내 사명이 무엇인가?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입니다.’라는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까? 가나안을 향해 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입니다.’ 이 마음만 있다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화)자녀들을 키우면서 걱정입니다. 세상의 공격과 유혹이 너무나 강력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까? 유혹받을 자리! 위험한 자리!에 못가게 하는 것입니까? 예! 성도는 어떤 환경 속에 있느냐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조금만 어려운 자리에 있으면 포기해 버리고,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면 그만 두는 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담대한 마음입니다. 어떤 현실과 환경속에 있다해도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사람이다. 나의 사명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라는 의식이 분명하면 어디에 있어도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가나안!입니다. 헌데 조금만 어려우면 안나가!(가나안으로 안가려고,,,가나안 반대 안나가! 안나가!)합니다. 애굽에서 안나가! 모험하는데로 안나가! 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마음은 코람데오 정신입니다. In the Face of God!!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믿음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바울을 보십시오. 환경에 연연합니까? 아니요! 환경을 지배하지 않습니까? 어떤 환경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3.우리들이 채워야 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심대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명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욕심이 이끄는 대로 가시면 안됩니다. 사명이 끄는 대로 가야 합니다. 사명이 이끄는 삶은 우리 마음 안에 말씀을 채울 때 가능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말씀을 흐르게 해야 합니다. 불순종과 의심으로 막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리면 의심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이렇게 판단하고, 저렇게 의심하면 말씀에 내 안에서 역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육신을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밥만 먹어서는 안됩니다. 영혼을 위해서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삶에 막힘없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영혼이 동맥경화가 걸리면 안됩니다. 말씀이 내안에서 막힘 없이 흘러가게 하십시오. 말씀을 들리면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마귀는 순종하는 성도를 무서워하지 많이 아는 성도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환경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바꿔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할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는 자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코람데오 정신으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죄성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내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새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평, 불만, 원망하는 마음은 비우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만족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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