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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준비하기(2) 이병수목사 201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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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19:5-6

제목:그릇 준비하기(2)

지난 주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순종의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2.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그릇은 “거룩함의 그릇”입니다. 5 - 6절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제 마음에 꽂힌 한 문장이 있습니다. 마음에 계속 맴도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성도의 숫자가 아니라, 헌신의 깊이이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함이다.” 교회 창립 5주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교회와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저는 창립 5주년을 앞두고 양적으로 더 성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관심이 숫자에 있었습니다. 헌데 책을 읽는 가운데 이 문장 앞에 사로 잡혔습니다. 이 문장이 살아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습니다. ‘너는 숫자에 관심이 있지만, 난 여기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자가 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단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관된 관심은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본질을 놓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유혹입니다. 우리의 자랑이 숫자에 있다면 우리는 타락한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임하는 곳에 양적 성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관심은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적용)저도 날마다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인지라 숫자에 연연합니다. 그러나 얼마의 사람이 나오든지,,, 최선을 다하자. 주님이 보시는 것은 예배하러 나와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초점을 놓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고 다잡습니다.’

(예화)하루는 영성일기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 날은 새벽 예배에 11명이 나와서 예배를 드린 날입니다. ‘주님 솔직히 세 사람이 새벽에 나와 예배하는 것보다 열한 사람이 나와서 예배하니 기분은 참 좋습니다. 사람의 숫자에 따라서 제 기분이 좌우되는 것을 보니 저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 약속합니다. 한 사람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든지... 백 사람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든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 사역에 임하는 마음, 은혜를 구하는 열정은 한결 같겠습니다. 만약 제가 숫자에 따라서 태도가 달라진다면 저는 삯군이요 악한 종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종이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성서의 예화)다윗을 아시지요? 다윗이 승리하는 인생을 산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헌데 다윗도 연약한 사람이라 초점을 놓칠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이라고 흠이 없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 한 번은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승승장구할 때입니다.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을 불러서 명령을 합니다. ‘내 군사가 몇 명이 되는지 인구조사를 하라! 내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자 알고 싶다!’지금 다윗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숫자입니다. 역대기 말씀에 보니까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사탄이 다윗을 충동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성령님은 우리를 감동시키십니다. 그래서 순종하게 하십니다. 허나 마귀는 우리를 충동질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불순종하게합니다.

사실 인구조사를 시키는 다윗의 본심은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겉으로 말은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많은 복을 주셨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다윗의 교만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요압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언을 합니다.

‘왜 왕은 군사력이 얼마인지 굳이 알려고 하십니까? 우리가 언제 군사의 숫자로 전쟁에 이겼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 전술이 좋고, 군사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헌데 왕은 왜 인구조사를 하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이것은 요압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보세요. 지금 다윗은 어떤 함정에 빠진 것입니까? 숫자의 우상에 빠졌습니다. 정말 다윗이 관심을 갖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다윗과 백성들의 거룩함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에 집중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있는가?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거룩함에 대한 관심을 갖아야 합니다.

 

(예화2)욥을 아시지요? 욥은 하나님이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욥기에서 욥을 소개하길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우리 성도 중에도 이런 신실한 종들이 많이 세워지길 축복합니다.) 어떻게 욥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관심입니다. 욥기 1장 5절에 보면 “그들이(아들과 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욕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의 관심은 항상 뭐예요?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나? 거룩함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언제든지 쓰실 수 있도록 내가 준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요. 거룩은 하나님이 언제든지 쓰실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24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갈 때 나를 아름답게 가꾸어 갈 것 아니겠습니까?

(예화)신천지에 빠진 분이 있습니다. 듣기로 신천지 교인이 이제 10만이 넘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14만을 채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얼마 있으면 예수님이 재림 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14만이 차도 그 속에 알곡과 쭉정이가 있어서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 아마 14만 명의 신천지 교인들이 차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헌데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한국인만의 하나님은 아니지 않아요. 이들의 말대로라면 한국인들 14만 4천명만 구원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20억이 넘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나요? 한 번만 내가 잘 믿고 있나? 내가 믿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한번만 생각해 보면 좋을텐데... 신천지를 보면 성경을 푼다고 하지만, 복음이 없어요. 복음이 뭐예요?

성도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①모든 사람은 죄인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치료가 되듯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②그 죄 값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③허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④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⑤어느 누구나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을 얻게 됩니다. 영접해야 합니다. ⑥예수를 믿는 자들이 육신을 갖고 사는 동안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두시지 않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기쁨과 소망과 감사속에서 사명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죄죽사영영성’= 죄(죄인)죽(죽음)사(사랑)영(영생)영(영접)성(성령)’/ 헌데 신천지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성경을 기가 막히게 궤단고 유혹할 뿐입니다.

헌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10만이 넘는 신천지 교인들이 누구입니까? 기존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이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 가족들도 있습니다. 나와 같이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헌데 이들이 왜 교회를 떠나 신천지로 간 것입니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이들의 책임입니다. 이들은 진리를 버린 자이기에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허나 우리는 책임이 없습니까? 아니요?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의 부조리를 보고, 신앙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거예요? 교회가 거룩의 싸움을 하지 않고, 숫자만을 자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많아졌는데, 성도들은 적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많은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지 못한 이유입니다. 목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사다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 이유입니다.

우리들의 자랑은 거룩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들이 거룩한 것입니다.

 

또한 강단에서는 십자가 신학을 전하지 않고, 담요신학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담요는 뭐예요? 안락함입니다. 편안함입니다. 잠자는 것입니다. 담요 같은 설교, 담요 같은 교회, 담요 같은 목회만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굴욕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헌데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싫어합니다.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교회들이 십자가는 말하지 않고, 담요장사만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거룩해야 합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들이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6절에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목사나 장로만 제사장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줄 믿습니다.(서로 인사 - 당신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4대 사명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축복자입니다. 제사장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축복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거룩한 입술이 되시길 바랍니다. 원망, 불평, 불만, 비판, 비난하지 말고, 축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라를 축복하고, 가정을 축복하고, 자녀들을 축복하십시오.

②둘째는 중보자입니다. 제사장은 가장 중요한 사명은 중보하는 사명입니다. 제사장은 날마다 성소의 향을 피워야 합니다. 향을 피워 연기를 피워 올려야 합니다. 이것을 절대로 꺼뜨리면 안됩니다. 향연이 기도입니다. 우리들은 제사장으로서 중보기도하는 사명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예화)저는 담임목사로서 성도들을 위해서 축복기도해주고, 중보기도한 것이 응답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③셋째로 선포자입니다. 백성들에게 죄가 씻음 받았음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피뿌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음을 선포해 주는 사람입니다.

④마지막 넷째로 제사장은 예배자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헌데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라고 합니다. 이유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라도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다는 확신을 갖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 돌아가셔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축복자가 되시고, 중보자가 되시고, 선포자가 되시고, 예배자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적용차원에서 우리들이 거룩한 그릇으로 준비되기 위해서 반드시 집중해야 할 일이 예배입니다. 본문 10-11절 보겠습니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셋째 날은 오늘 날 주일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그릇을 준비하였듯이 우리들도 주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적용)예배를 절대로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예배는 연례적인 종교행사가 아닙니다. 가인의 비극은 제사 즉 예배를 소홀히 한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예배였습니다. 예배의 역사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최초의 예배가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헌데 하나님은 왜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는가? 단순하게 제물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가인은 곡물을 바쳤다. 허나 아벨은 제일 좋은 양을 바쳤다. 제물의 질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만약에 제물의 질 때문이라면 하나님은 너무나 옹졸하지 않은가?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예배를 보면서 우리들의 예배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성경이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모아져 흘러간 시간들을 말한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면 30년의 하루 하루의 삶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지금 처음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예배를 드려 왔다. 헌데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그동안 달랐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제사를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2)또한 하나님은 제물만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도 받으신다. 성경을 보라.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받으신 것입니다. 주중 6일간의 삶도 받으신 것입니다. 일주일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예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3)무엇보다도 피가 있느냐?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서 유유히 흐르는 정신가운데 하나는 피 뿌림이다. 피 뿌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을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피뿌림을 통한 용서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대신 짐승을 죽여 그들의 허물을 덮어주신 것입니다. 이 때부터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대신 짐승의 피 뿌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농산물만 드리면 안된다. 자신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피 뿌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드렸어야 합니다. 헌데 가인은 자신이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죄인됨을 고백한다면 양을 대신 바쳤어야 했다.

반면에 아벨은 자신이 죄인됨을 알았다. 아버지와 엄마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이후 죄인됨을 깨달았다. 그리고 온전한 양을 죽여 대신 피를 흘린 것이다. 피 뿌림이 없은즉 자신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양을 드린 것이다. 단순히 가인은 농사군이니까 농산물을 드리고, 아벨은 양치기니까 양을 드린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헌데 문제는 세상을 둘러 보십시오. 가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의로운 아벨은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벨로 세상을 살 때 가인에게 당합니다. 힘듭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는 항상 두 줄기였습니다.

①하나는 가인의 길이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은 항상 강하다. 멋지다. 가인의 후손을 보라. 금속업, 보석세공업자들의 조상들이다. 음악의 조상들이다. 가축업의 조상이 되었다. 화려한 삶을 살았다. 부유했다. 쾌락이 있다.

②반대로 다른 하나는 셋의 길입니다. 셋은 아벨은 대신하여 하나님이 주신 아들입니다. 셋의 후손들은 늘 약하다. 매일 가인에게 당한다. 별 볼 것이 없다. 무명한 자와 같다.

헌데 기억하라. 하나님은 항상 셋의 후손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가인의 후손을 통해서 아닙니다. 아벨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셋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셨다. 가인의 길에 구원은 없습니다. 화려함과 부유함은 있을지 몰라도 구원은 없습니다. 셋의 길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잊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 두 길이 있습니다. 가인의 길, 셋의 길입니다. 어느 길을 가시렵니까?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다고... 그러나 넓은 길은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사망으로 끝납니다. 허나 좁은 길은 길이 험하고 좁아 가는 이가 적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길로 끝이 납니다.

 

우리 함께 이 찬양을 올려 드리기 원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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