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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스스로 버리는 삶!! 이병수목사 201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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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21:1(21-22장)

제목:사랑하기에 스스로 버리는 삶!!!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주신 법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첫째는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입니다. 도덕법이라고도 합니다. 십계명은 모든 법규의 뼈대가 되는 말씀입니다. ②둘째는 사회법입니다. 오늘 본문이 되는 21-22장입니다. 민사법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입니다. ③셋째는 의식법입니다. 제사법이라고도 합니다. 23장부터 31장까지입니다.

오늘 1절만 읽었지만, 이번 주간에 시간을 내셔서 21-22장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회법으로는 7가지의 법이 나옵니다.

①첫째는 종에 관한 법입니다. ②둘째는 살인자에 대한 법입니다. ③셋째는 부모상해 법입니다. ④넷째는 일반 상해법입니다. ⑤다섯째는 소유주에 대한 법입니다. ⑥여섯째는 정당방위에 대한 법입니다. ⑦일곱째는 소외계층에 대한 법입니다. 이 7가지의 법을 오늘 날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7가지의 법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뭐냐? 7가지 사회법의 핵심원리가 뭐냐? 그것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살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정죄하고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우선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살리는 인생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악한 마귀는 죽이는 영입니다. 정죄하고 심판해서 죽이려는 것이 목적입니다.“이리가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요” 허나 성령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용서하고, 새롭게 기회를 주시는 영이십니다. 우리들도 성령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영생)을 얻게 하고, 너희의 인생이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행복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적용)여러분들도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아시겠지요? 살리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충전소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일과 마귀의 일은 분명합니다. 세우는냐? 헤치느냐? / 하나되게 하느냐? 분리되게 하느냐? / 회복하게 하느냐? 죽이느냐? 우리 미래교회 성도들은 살리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1)첫째는 종에 관한 법입니다. 2절입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이것은 같은 동족인 히브리 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히브리인이 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난 때문입니다. 빚을 갚지 못했거나,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 종이 되어 몸으로 갚거나, 생계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종이 되면 6년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7년째가 되면 주인은 반드시 그를 자유케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낼 때 빈 몸으로 보내지 말고, 살 길을 열어주라는 것입니다. 결국 종의 법을 주신 이유는 살리는 데 있습니다. 종을 자유케 할 때 혼자 왔으면 혼자 나가고, 가족이 함께 와서 종이 되었으면 가족이 함께 나가도록 했습니다.

헌데 혼자 종이 되어 섬기다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처자식은 놓고 나가야 합니다. 이유는 당시 종은 노동력이었습니다. 헌데 갑자기 종의 가족이 다 나가버리면 막대한 노동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7년 전에 들어올 때를 기준으로 해서 나가야 합니다.

 

헌데 처 자식을 놓고 나가기 싫은 종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는 주인에게 스스로 영원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적용)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스스로 영원한 종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얼마든지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헌데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기에’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은 그와 가족들을 재판장에게로 데려가서 귀를 뚫습니다. (적용)우리 여자분들이 귀를 뚫지 않습니까? 의미를 알고 뚤어야 합니다. 미용실이나 병원이나 금은보석 가게에서 귀를 뚫는데 그러면 미용실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 귀를 뚫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나는 영원히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나는 미래교회의 영원한 종이 되겠습니다. 얼마나 성서적인지...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자유가 뭐예요?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자유입니다. 스스로 희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진짜 자유입니다.

(예1)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참 감동이 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7-18절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저들이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이기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당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자유는 무엇입니까? 사랑하기에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자유!!입니다. 사랑하기에 스스로 종이 되는 자유입니다. 사랑하기에 스스로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자유!!!가 진짜 자유입니다.

(예2)가룟 유다는 도저히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두 명의 마리아가 자신의 전 재산과 같은 향유를 전부 깨뜨려 드린 사건이 나옵니다. 헌데 가룟 유다와 사람들은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왜 이것을 낭비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이들은 몰랐습니다. 사랑은 낭비성이 있다는 것을요. 또한 주님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마음! 사랑하기에 전부를 쏟아 부어드려도 기쁜 마음!을 몰랐습니다.

(예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사랑하기에 스스로 섬기는 삶!!! 사랑하기에 스스로 종이 되는 삶!!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생활의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희생해야 하는 길입니다. 주일성수를 하는 것, 십일조를 드리는 것, 교회 봉사 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을 억지로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것을 손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기꺼이 하는 이유는 뭐예요? 사랑해서 스스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우리들이 헌신과 섬김과 봉사가 주님을 사랑해서,, 교회를 사랑해서,,, 영혼들을 사랑해서 스스로 기쁘게 결정한 헌신이요 섬김이요 봉사라면 그는 참 기쁨을 아는 자입니다. 주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어요. 이유가 뭐예요?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도 있지만, 스스로 버릴 수 있는 자유, 스스로 섬기고 낮아지고 종이 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2)둘째는 살인법입니다. 고의적으로 살인을 행한 사람은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헌데 문제는 우발적으로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버젓이 아무 값도 지불하지 않고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피해자 가족들은 너무 억울하고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도 살고, 가해자도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그것은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을 정하고 제도를 실시한 것은 훗날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부터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세 곳, 서쪽에 세 곳을 도피성을 정하고 살인자는 그곳으로 도망을 치도록 했습니다.

(도피성과 그리스도의 상관성)

도피성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도피성 제도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피성은 높은 산지에 있었고 항상 그 길을 잘 닦아 놓아야 했습니다(신 19:3). 히브리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유대법에는 1년에 한 번씩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서서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잘 닦고, 보수하는 일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넓이가 14m나 되었으며 길에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놓아야 했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하는데 어떤 걸림돌도 없어야 했습니다.

 

(적용)이러한 도피성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살다보면 사람은 실수를 합니다. 비록 실수로 살인한 죄인이라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피할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섯 개의 도피성은 각 지파가 사는 지역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이유는 죄인들이 어디서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빨리 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도피성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께 피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잘 닦여진 길이고 안내표가 있었다는 것은, 구원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용)그러면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도피성 되시는 주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안내 표지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구원의 길을 볼 수 있고, 갈 수 있도록 우리들이 표지판이 되어야 합니다. 헌데 우리가 잘못 살면 표지판이 엉망이 됩니다. 방향을 잘못 가르쳐 주거나,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낡았거나 하면 그 성의 성주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약에 도피성으로 가는 길에 청소가 안되 있어서 피해자 가족에게 잡혀 가해자가 죽으면, 도피성의 성주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②도피성은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타국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합니다.(롬 1:14-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③그러나 도피성을 떠나면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도피성 안에서만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구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3)셋째는 부모상해에 대한 법입니다.

(4)넷째는 일반 상해법입니다.

 

(5-6)다섯째와 여섯째는 소유주, 임자 주인들의 마땅히 지켜야 할 법과 정당방위에 대한 법입니다.

 

(7)일곱째는 당시 연약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과부와 고아들, 나그네들에 대한 법입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의 법은 강자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이 많으면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헌데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들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강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허나 가난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은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헌데 이것이 복입니다.

핵심이 되는 말씀은 22장 21-23절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잘 들어 주세요. 연약한 자들의 기도를 잘 들어 주세요. 그들이 부르짖으면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연약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는 일에 앞장 서시면 안됩니다.

오늘 날 나그네면 누굴까요? 외국인으로서 우리 나라에 와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 다문화 가족들, 탈북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나그네를 절대로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너희도 과거에 나그네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나라도 한민족이 아니라, 다민족국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나그네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시지요? 그들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하나라도 더 나누어 주십시오. 그건 곧 하나님에게 한 것입니다. 우리 교단 총회가 정한 주제가 “그리스도인, 작은이들의 벗(마태복음 25:40,레 19:18)”‘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이 말씀을 반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연약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면 이들이 축복기도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기도는 직방입니다. 하나님이 즉시 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주변에 여러분으로 인해서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됩니다. 성도들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하나님 누구 누구에게 복을 내려 주세요. 저는 그분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사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이유는 살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살리는 인생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신 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저희의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권리 내 이익만을 구하며 살았던 저희에게 참된 성도의 삶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종이 되는 삶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저들이 내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린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내 권리를 스스로 버리고 종이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는 죄 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헌데 주님께서 구원의 도피성이 되어 주심으로 용서해 주시고, 영원히 살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부모님들과 어른들을 공경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며, 세워주며, 섬겨주는 거룩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거룩하고 순결한 표지판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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