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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4:1이다 이병수목사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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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1일 주일 낮 예배설교(새생명 초청 작정카드)

성경:열왕기하 5:1-3, 9-17

제목:인생은 4:1이다.

전후좌우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승리자입니다. 당신은 존귀한 자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에 합당합니다.’

 

오늘은 나아만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나병으로 고통받던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는 사건을 통해 말씀 듣기 원합니다.

1.첫째로 우리들이 생각하기 원하는 것은 “인생은 4:1이다.”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오늘 본문에서 나아만의 이력이 5가지가 소개됩니다.

(1)첫째는 뭐예요? 아람 왕의 군대장관입니다. 아람은 오늘 날 시리아입니다. 2800년 전 시리아는 강대국이었습니다. 나아만은 당시 강대국인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미국의 국방부 장관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2)둘째로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영어 성경에 보니까 ‘great man’입니다. 공동번역에는 ‘왕이 매우 아끼는 큰 인물’우리말 성경에는‘왕과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는 사람’입니다. (3)셋째로 나아만은 구국공신이었습니다. 아람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나라에 이순신 장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4)넷째는 ‘큰 용사’였습니다. 용맹스럽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얼마나 화려한 이력입니까? 감히 누구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 헌데 인생이란 4가지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아만의 이름의 뜻은 ‘인생은 즐거워!!’입니다. ‘유쾌함’입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즐겁지 않을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헌데... 1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5)“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영어성경이 더 와 닿습니다. 'He was a valiant, but he had leprosy.' 가장 중요한 말은 “그러나”입니다. 네 가지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더라. 이것이 인생입니다. 어떤 인생도 100이면 100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더라”가 다 있습니다. 나아만을 생각해 보세요.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고, 돈과 지위가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병으로 죽어가는 것을요? 보세요. ‘그러나’ 그 한 가지가 나머지 네 가지를 아무 소용없게 합니다.

 

저 사람은 아무 근심도 염려도 아픔도 없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다섯 가지가 다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1)남편도 날 사랑해 주고, 집도 있고, 몸도 건강하고, 이만하면 살만합니다.‘그러나’자녀가 문제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2)여러분 자신을 돌아 보세요. 다 좋기만 합니까?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그러나’가 있습니다. 은유적인 것이지만, 인생은 4:1입니다.

우리는 4가지만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4가지에 대해서만 감사하려고 합니다. 또한 나에게는 감사할 4가지는커녕 하나도 없다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그러나’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결과적으로 나아만이 구원받은 것은 ‘그러나’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나아만이 4가지만 있다면 절대로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아만이 주님께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 앞에 나온 이유는‘그러나’그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나아만은 바알신의 일종인 림몬신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신에게 빌어보지 않았겠습니까?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봤을 것입니다. 그래도 병은 더 깊어져 갔습니다.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엘리사 선지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절박한 심정으로 이스라엘에 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복을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적용) 두 입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의 절박한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로 나오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느냐?입니다. 허나 나아만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다 해보았지만 나병을 고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것으로 소망을 삼지 마세요. 하나님 앞으로 나오세요. (예)신약 성경에 보면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 민간요법, 미신, 의원들을 다 찾아 다녔지만, 결과는 어때요? 돈은 돈대로 잃고,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마음엔 절망뿐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을 때 육신의 병도 치유되고, 영혼도 구원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예화)목회를 잘 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얼마나 겸손하신지 성도들에게나 후배 목회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자랑 할 것도 많은 분입니다. 큰 아들은 미국 유학을 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도 유학을 하고 좋은 기업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답니다. 목회자로도 성공하셨지요. 뭐 남 부러울 것이 없는 분처럼 보입니다.

헌데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자신이 평생 교만할 수 없는 이유, 주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에게는 막내딸이 있는데... 평생 한 번도 ’아빠‘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중증 자폐아라고 합니다. 교만하려고 해도 막내 딸만 생각하면 울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원망해 보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시임에 틀림없다고... 그러나 그것이 나를 겸손케 하고, 주님만을 의지하게 했다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막내 여동생 때문에 오빠들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고쳐 보겠다고 큰 아들은 의사가 되고, 둘째 아이도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자폐를 앓고 있는 막내딸이 우리 가정에 복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각자마다‘그러나 그는 나병환자더라’가 있으시죠. 그 한 가지를 갖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다면 그것은 복입니다. 주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정말 감사할 것은 나를 아프게 하는 것, 힘들게 하는 것, 그래서 기도할 수 밖에 없게 하는 것,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것 그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2.둘째로 우리가 주목하기 원하는 것은 ‘어린 소녀’입니다. 10대 중반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고향 땅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던 소녀입니다. 헌데 어느 날 적군들이 어린 소녀가 살고 있는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이런 날 벼락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루 아침에 포로가 되어 먼 이국땅으로 개처럼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예화)요셉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혹시 이 어린 소녀가 조상인 요셉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틀림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존 비비어의 관계라는 책을 읽는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요셉과 같이, 어린 소녀와 같이 억울한 일,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에도 정신을 차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인간이나 악한 영이라도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믿으십니까? 우리가 볼 때에는 모든 것이 다 뒤틀린 것 같습니다. 다 끝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믿음의 길을 가는 가운데 당하는 고난과 억울함 속에서도 계속 순종하고 실족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날을 보게 될 것이다.”아멘이십니까?

이 소녀가 이 모든 사실을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1)이 소녀는 절망하거나 삶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인신매매 되어 온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헌데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장은 억울한 일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적용) 혹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통터지는 일을 만나셨습니까? 그래도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비관하지 말기 바랍니다.

(2)무엇보다 이 어린 소녀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가 안 주인 마님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3절입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이것은 확신입니다. 고칠걸요? 고칠지도 몰라요?가 아닙니다. ‘고치리이다’ ‘고칩니다.’이 확신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적용)저는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싸움은 확신의 싸움입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 보험상품을 파는 사람들,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공산주의를 따르는 사람들, 잘못된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세요. 확신에 차 있습니다.

11월 18일 새생명 초청잔치를 위해서 전도할 때 확신을 갖으세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일입니다.

(3)또한 이 어린 소녀에게 감동하는 것은 어떻게 살았기에 믿음을 주는 인생이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어린 소녀는 안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안 주인은 남편인 나아만에게 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포로로 잡아온 어린 소녀입니다.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지 않습니까? 헌데 “당신 사마리아에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나을 수 있데요?”나아만이 물었을 것 아닙니까? 누가 그래? ‘예!!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소녀가 그래요?’/ 헌데 이상한 것은 나아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왕에게 말합니다. 왕도 묻습니다. 누가 그러더냐? 그 때 나아만은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어린 소녀의 말이 그렇습니다.”그러자 왕은 친서를 써서 나아만을 보냅니다.

도대체 어린 소녀의 삶이 어떠했길래 안주인도, 나아만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었을까? 너무 상황이 급하니까 병은 고쳐야 하니까 어린 소녀의 말이라도 믿어야지!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어린 소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신뢰를 얻은 것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예)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말을 사위들에게 전하자,,,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롯이 어떻게 살았길래... 헌데 어린 소녀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을 주는 삶!1!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4)또한 어린 소녀는 은혜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아만은 이 어린 소녀를 만난 것이 복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복음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통로가 되는 삶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구원받는다면 그것처럼 영광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복이 많지만,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이 시간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귀와 눈을 열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인생은 4:1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원망하지 말게 하옵소서. 또한 “그러나”가 있음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그것 때문에 기도한다면, 그것 때문에 무릎 꿇는다면 감사하게 하옵소서.

때때로 사노라면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 때에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게 하옵소서. “어떤 인간이나 악한 영이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도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섬기는 자들도 순종의 걸림돌들을 제거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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