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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의 걸림돌을 제거하라 | 이병수목사 | 2012-1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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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열왕기하 5:9-14 제목:순종의 걸림돌을 제거하라 한 사회의 건강과 성장 잠재 능력, 또는 교회의 건강과 부흥 잠재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구성원들의 순종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 새벽 예배에서는 사도행전 1장부터 3장까지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다른 말로 성령행전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이지만 실제는 성령께서 세워 가시는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세우시는 공동체의 특징 중에 하나는 순종의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인상 깊은 것은 사도행전 2장 42절에 말씀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이 말씀 가운데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초대교회 교인들입니다. 사도란? 당시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봉사하고, 사랑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교회에 지도자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잘 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지도자들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훈련받자!하면 훈련 받기위해서 모이고, 전도하자!하면 전도하고, 예배하자! 기도하자!하면 가르침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인줄 믿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에 있어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함을 받습니다. 헌데 예수를 믿는 믿음도 선물입니다. 내가 믿어야지!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는 것이 복입니다. 또한 구원도 선물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죄사함도 선물입니다. 영원한 생명도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주심도 선물입니다. 성령을 주심도 선물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주심도 선물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평안과 기쁨도 선물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할렐루야!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허나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길 원하신다면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복을 주십니다. 신명기 6장 3절에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것을 행하라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 여기에서 복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서 누릴 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문제는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길이 순종인데, 순종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순종이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순종이 왜 어려운가? 순종의 걸림돌은 무엇인가?를 나아만을 통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나아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아픔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가 시리아의 군대장관이요 왕과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요 구국공신이요 용맹스러운 장군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헌데 우리는 결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나아만은 나병을 깨끗이 고침 받았습니다. 육신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육신의 질병이 치유되는 경험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평생 예배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아만이 복을 받은 것은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는 육신과 영혼이 구원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헌데 나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순종의 걸림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있는 것들입니다. 순종의 걸림돌이 무엇입니까? 1.첫째는 자존심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어린 소녀의 말을 믿고 어렵게 엘리사를 찾아 왔습니다. 9절입니다.“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설명)나아만이 어떻게 엘리사를 찾아 왔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는 갑옷을 입고, 군대를 거느리고 엘리사를 찾아 왔습니다. 나아만은 병을 고침받기 위해서 온 사람입니다. 헌데 갑옷을 입고, 군대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물론 경호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으로는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숨기기 위해서 갑옷을 입고 환자가 아니라 장군의 신분으로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약점이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서 포장합니다. 세상의 것들로 과시하려고 합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서 돈으로 포장을 합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권력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적용)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Broken Heart입니다. 헌데 우리들도 갑옷을 입고 나옵니다. 자신의 약점과 상처를 숨기려고 갑옷을 입고 나옵니다. 어떤 분은 마음을 절대로 열지 않는 갑옷을 입고 나옵니다. 죄를 감추고 나옵니다. 상하고 찢긴 마음과 형편을 꼭꼭 숨기고 나옵니다. 인습과 자기 생각, 고집의 갑옷을 벗어 버리고 나오셔야 합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이 어떤 갑옷을 입고 사셨는지 모르나, 주님 앞에 나올 때는 모두 벗고 나병을 갖고 그대로 나와야 합니다. (적용)우리는 원래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헌데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 밖에 왔는데도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습니다. 종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합니다. 10절입니다.“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무례도 이런 무례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만약에 미국 국방장관이 미래교회 저를 찾아 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헌데 제가 나와 보지도 않고, 청년을 보내서 ‘금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나아만이 노하였다”는 것은 아직도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 나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내가 누군지 알아!” 물론 자존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자존심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와 세상 속에서 신자다운 삶을 살아갈 때 는 자존심 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래뵈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이다. 나는 시시하게 살수 없다.’는 신앙의 자존심은 지키세요. 허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존심을 다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데는 자존심이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교회 일을 하는데 자존심을 내세워서 되는 일은 없습니다. 교회는 섬기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곳입니다. 희생하는 곳입니다. 헌데 자존심을 내세우면 절대로 섬길수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순종하려면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체면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나이가 얼만데... 내가 장론데... 권산데...’라는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예화)한 목사님이 해외집회를 갔는데, 그 교회에 아주 인상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청소하시는 관리집사님이 너무나 밝고 즐거움속에서 일을 하더랍니다. 담임목사님에게 관리집사님을 칭찬하는 말을 했더니, “그 분은 그 교회 장로님이시고, 대학총장을 지내신 분인데... 은혜 받고 난 뒤에 교회청소를 도맡아 하십니다. 얼마나 기쁘게 하시는지 그분을 보는 교인들도 다 행복해 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적용)지난 충북노회에서 가장 은혜 받은 시간은 일신여고 관현악단 초청공연이었습니다. 지휘자 집사님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젊은 사람들의 눈 높이 맞추어 내려가야 한다고,,, 그래서 젊은이들을 이해해 주셔야 한다고... 그러면서 ‘강남스타일’을 연주했습니다. (적용)신앙생활을 잘 하시려면 개그맨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개그맨들은 무대 위에 있는 동안은 자존심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약점을 개그소재로 삼습니다. 뚱뚱한 것, 못생긴 것, 키가 작은 것을 개그로 승화시킵니다. 자신이 망가지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신자는 이래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일인데,,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면, 교회가 잘되는 일이라면, 영혼이 구원받는 일이라면 자존심을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화)주님을 생각해 보세요. 주님에게는 자존심이 없습니다. 주님만큼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자기를 부인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십니다. 주님이 계속 시험을 받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사실 하나님이시기에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존심을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십니다. 자존심이 있는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까? 왜 주님이 우리에게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실까? 자존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자존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2.또 하나 순종의 걸림돌은 “내 생각”입니다. 11절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지금 나아만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내 생각입니다. 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합니까?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사실 - - 나아만의 생각이 나쁜 것입니까?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나아만이 생각할 때,, (1)먼길을 찾아온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당연히 나와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2)또 자기가 솔직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입니다. 국가적인 예우가 있고 예전이 있는 것 아닙니까? (3)최소한 나와서 만나보고, 자초지종은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4)상처는 어떤지! 손을 얹고 기도는 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세요. 나아만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맞습니다. 허나 깊히 생각해야 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 올 때에는 무슨 마음으로 왔을까요? “내 병이 낫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시키는대로 한다”는 마음으로 오지 않았을까요? 맞지요? 나아만은 노하여 그냥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때 현명한 부하가 조언을 합니다. 보통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주인의 비위를 맞추고, 더 화를 내면서 흥분할 것입니다. 헌데 이 부하는 충언을 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이보다 더 한 일을 시키면 안하실 것입니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 것이 뭐가 어렵습니까?” 결국 부하의 말을 듣고 순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신앙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때에 보면 항상, 내 생각과는 안맞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럴 때에 내 생각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나아만이 병고침을 받은 것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신앙의 자세는 “주여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이 태도입니다. 신앙의 적은 ‘내 생각’입니다. 순종이 잘 안되는 이유는 내 생각, 내가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예1)12명의 정탐군들을 보세요. 10명의 정탐군들의 보고내용은 다 맞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정말 강하고, 그곳을 지키는 자들은 용사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생각’을 계속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헌데 계속해서 자기 생각을 고집합니다. 저들이 볼 때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합니다. 이게 누구 생각입니까? 하나님이 참 기뻐하겠네요. 허나 두 명의 정탐군들은 무엇을 신뢰했습니까?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저들의 보호자는 이미 떠났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올라가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예2)성경은 ‘내 생각’이라는 렌즈로 보면 하나도 믿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내 생각으로 보면 창세기의 말씀,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 만나를 주신 사건, 기드온의 300용사 등등 하나도 이해가 안됩니다. -우리들의 죄를 씻기는 오직 예수의 피 밖에 없다는 말씀이 내 생각으로 이해가 됩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내 생각으로 납득이 되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잠간입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됩니다. (예3)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우리 생각으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왜 시련가운데 기도하는데 응답이 안되는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부조리한지! 내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거든 하나님의 성품을 믿어드리세요. 선하시고, 자비하시고, 나를 향해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 주님을 믿어드리세요. (예4)전도에 대한 내 생각도 버리세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전도 못해!.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지... 저 사람은 안 믿을거야! 내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믿음은 내 이성(내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이다.” (예5)사람들을 대할 때도 내 생각을 내려 놓으세요. 교회 오는 젊은 아이들...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 예의 없어 보이고, 문제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이다. 내 생각이다. 주님의 생각은 다르다. 주님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하신 것 아닙니까? 내 생각을 극복하는 길은 믿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➀구하세요. 믿음을 구하세요. ➁믿음으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세요. ➂말씀을 계속해서 들으세요. ➃의지적으로 결단하고 한번 순종해 보세요. 시험적으로 순종해 보세요. 나아만은 불완전한 믿음이었지만, 순종할 때 복을 주셨습니다. ➄믿음의 말을 하세요. 믿음으로 선포하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순종의 최대 적은 ‘내 생각’입니다. 기억하세요. ➊하나님의 뜻과 내 생각은 거의가 충돌합니다. 그 때에 내 생각을 내려 놓고, 한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놀라운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➋세상의 생각, 전문가들의 생각만을 붙잡지 마세요.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➌믿음을 구하세요. ❹하나님 앞에 나오실 때는 자존심을 내려 놓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오셔서 쏟아 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만져주심과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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