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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남! | 이병수목사 | 2013-0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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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6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32:7-14, 30-32 제목:무아남(무릎 꿇는 아름다운 남자!) (사진을 보여주면서-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errer, 1471-1528)는 독일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로 독일이 EU에 가입 하기 전 독일 화폐에 그려져 있었던 인물입니다. 뒤러는 친구 한스와 함께 화가가 될 것을 다짐하고 도시로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난해서 도저히 그림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그림 공부를 하는 친구와 약속을 합니다. 한 사람이 먼저 일자리를 얻어 친구의 그림 공부를 돕고, 그 다음에 그림 공부를 마친 친구가 일자리를 얻어 다른 친구의 그림 공부를 돕기로 한 것입니다. 먼저 뒤러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화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뒤러가 친구를 도울 차례였습니다. 뒤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친구 한스가 일하는 식당에 들어가려고 할 때입니다. 마침 친구 한스는 기도 중이었습니다. 뒤러는 들어가지 못하고 한스의 기도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이미 무뎌져서 붓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친구 뒤러만은 꼭 위대한 화가가 되게 해 주십시오." 친구의 기도를 들은 뒤러는 너무도 큰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그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뒤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기도하는 손이 가장 깨끗한 손이요, 가장 위대한 손이요, 기도하는 자리가 가장 큰 자리요, 가장 높은 자리요." 친구에 대한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린 유명한 그림이 바로 '기도하는 손'입니다. 친구 한스의 기도가 왜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➀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이타적인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➁희생하면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➂억울함이나 원망이 없는 기도였습니다. ➃즐거이 헌신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도 아름다운 기도를 봅니다. 모세의 기도입니다. (내용설명)모세는 시내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금방 내려올 줄 알았는데,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되어도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세가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불안해 합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는 보이지 않고, 어떻하면 좋으냐? 결국 이들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왜 금송아지냐면 애굽에서 본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하나님이다라며 제사를 드리고, 술을 먹고, 결국은 난잡한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9-10절입니다.“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화가 나신 하나님은 다 쓸어버리고, 너를 통해서 다시 큰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비유설명)왜 이렇게 하나님이 화가 나신 것일까요? 마치 이런 것입니다. 저희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바람 피는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때에 예수님을 잘 믿는 한 권사님이 계셨는데, 남편이 그렇게 속을 썩였습니다. 술, 도박, 여자로 맘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래도 다 용서하며 살았습니다. 헌데 하루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이혼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유가 뭔고 하니,‘술에 취한 남편이 자기를 품에 안고, 미스 김!하더랍니다.’이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내가 싫어서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 헌데 나를 다른 여자로 알고 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기는 아내와 살면서 마음엔 온통 다른 여인을 품고 있다면, 용서가 됩니까? 차라리 떳떳하게‘난 네가 싫으니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낫지요. 살면서 다른 사람을 품고 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릎 꿇는 아름다운 남자! 무아남!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대로 뜻을 바꾸십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게 한 모세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첫째로 하나님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12절입니다.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진멸하시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애굽 사람들 아닙니까? 애굽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광야에서 다 죽이려고 애굽에서 구원했냐?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참 잔인하고 악한 신이구나!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이스라엘을 아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심판 받아 마땅합니다. 모세는 자신들이 심판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릴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애굽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불신자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짓은 나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고 비난 받는 것은 안되니 니 참아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리는 기도라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적용)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십자가의 능력을 붙잡고 하는 기도입니다. 십자가 기도가 뭘까요? 사랑하는 노현자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붙잡고 기도한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딸이 이 일로 무너지면 하나님 영광 가리지 않습니까? 위암으로 큰 수술을 받고도 돌아와 아동부 부장, 목장 교사, 매주 토요전도를 쉬지 않았던 종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늘 밝은 모습 잃지 않고, 밤마다 교회 나와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하던 딸입니다. 그런 딸이니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치유하시고, 승리하게 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 딸을 대신 살리시려 함 아닙니까?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으로 당신의 딸을 위로하시고, 회복의 은총을 주옵소서!”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실 수 없다고 믿습니다. 나를 봐서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봐서 참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기도하십시오.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이 이만한 일로 나를 망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을 들이밀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화)자식이 잘못해서 매를 들어 때리는데,,, 그 자식이 한다는 소리가... “아이구! 엄마 아들 죽네!!!”“때릴수록 누구 손해예요? 아빠와 엄마 손해예요. 엄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알면 더 때릴 것도 없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부모님의 마음에 못질하는 거구나!라고 알면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기도하세요. (2)둘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는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보십시오. 31-32절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어떻게 이런 기도가 가능했을까요? 인간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하는 짓이 망해도 싸다! 그런 마음이었을 텐데,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심판하시려거든 나도 심판해 주십시오.”왜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한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자녀의 문제는 곧 부모의 문제입니다. 내 자녀의 수치는 곧 부모의 수치입니다. 왜 한 운명공동체이니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까요? (예화)1월 2일자 조선일보에 이 시대의 희망! 다시 가족이다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담보로 대출 받아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여 수억 원의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갓 세 살 된 둘째 아들이 자폐진단을 받았습니다. 매달 수 백만원의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아들 치료비를 위해서 카드로 돌려막기 하다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쫄딱 망한 아빠, 신용불량자 엄마,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 그 사이에서 소외된 큰 딸!!!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가족이었습니다. 헌데 그 가족을 지킨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의 사랑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서로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 한 운명공동체끼리 서로 비난하고 탓을 하면 결국 내 운명을 망치는 것이니까... 그래서 온 식구가 하나되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탓하지 않고 하나되기만 한다면 어떤 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적용)어려운 시련이 닥칠 때,,, 절대로 서로 탓하지 마세요. 가족이니까 함께 어려움을 헤쳐가야 합니다. 온 식구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하나되어 나간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서로 탓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과 자신은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름 받았는데, 이스라엘이 없으면 자신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힘이요, 교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절대로 남의 탓을 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 때문이라고.. 집이 가난해서 그렇다고... 친구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아니요? 그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서로를 탓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 없는데,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화)한 원로 야구 감독이 나라가 어려울 때 말했습니다.“국가가 없으면 야구도 못한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국가를 비평하는 것은 좋지만,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세요. 국가가 없으면 야구도 못합니다. 국가가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못합니다. 왜요? 한 운명공동체이니까요? 모세의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화)‘忠則盡命 충즉진명’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참 사랑이 뭔가? 충성이 뭔가?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왕이 신하들을 떠보기 위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에 홍수가 나서 짐과 신하들의 아버지가 물에 떠내려 가고 있다. 한 사람 밖에 구할 수 없다면 자네들은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간신배들은 하나같이 왕을 먼저 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헌데 충성스러운 신하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왕은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 신하는 진실하게 그러나 충성스럽게 대답을 합니다.‘저는 아버지를 먼저 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뛰어 들어가 왕과 함께 죽겠습니다.’이것이 충성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기도입니다. 모세는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시려거든 나도 이들과 함께 죽겠습니다.’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감히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헌데 함께 죽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무엇입니까? 너를 살리고 내가 죽는 것입니다. 누구시지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살리시고 당신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참 사랑이요 이것이 참 충성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나도 함께 죽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를 하셨습니다. 그것을 가상 칠언이라고 합니다. 가상 기도라고 합니다. 주님은‘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대신 죽겠사오니 저들을 살려 주옵소서’이 기도를 어찌 하나님이 거절하실 수 있습니까? 또“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저들이 뭔데 나를 버리시고 저들을 구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예수를 버리시고 누구를 대신 살리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입니다. 보세요. 주님의 사랑은 모세의 기도를 뛰어넘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조용하지만, 너무나 강력합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와 죄와 사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남습니다. 2013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십시오. ‘너를 살리고 내가 대신 죽겠다’는 십자가 사랑이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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