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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 이병수목사 | 2013-0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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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출애굽기 성경:출애굽기 34:1-9 제목:두 번째 기회를 주신 하나님! 미신과 비교하여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아버지는 어떤 분이시냐?고 묻듯이...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1)첫째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6-7절입니다. “ ” ❶“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❷“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이 말씀은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의 말씀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 물속에 있는 것의 어던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생각해 보라. 이 말씀의 액센트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푼다는 것이다. 1000대와 3-4대가 비교가 됩니까? 복은 1000대까지 주시고, 벌은 3-4대까지 주신다니 이것은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또한 3-4대까지 내리시는 벌은 징계입니다. 정죄가 아닙니다. 정죄는 완전히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징계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3-4대까지 가지 않고 용서하시리라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2)또한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 법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생명의 관계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❶하나는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❷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은혜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입니다. 자식들이 누리는 권세가 무엇입니까?? 자식들이 이러죠. “나 밥 안먹어! 나 집 나갈 거야!”사실 밥 안먹으면 누구 손해죠? 자기 손해입니다. 헌데 이 말을 들으면 부모들은 겁을 먹는다는 것을 자식들은 압니다. 집 나가면 좋지요! 돈도 많이 드는데... 헌데 자식이 집을 나갈까봐 벌벌 떱니다. 이유가 뭐예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못하면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 못해도 먹고 싶다. 갖고 싶다. 사달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도대체 자녀들에게 이런 자신감과 확신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적용)우리들도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헌데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두려워합니다. 멀게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뻔뻔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물론 철부지일 때는 ‘떼’를 쓰는 것으로 소원을 아룁니다. 허나 철이 들고 성숙하면 부모의 은혜를 알기에 감사합니다. 부모의 노고를 알기에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주 안에서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당당해야 합니다. (3)셋째는 하나님 아버지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❶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죄책감입니다. -죽음으로부터 구원입니다. ❷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❸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❹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13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들이 어떤 복을 누리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뭐냐는 것입니다. 1.첫째로 기회를 다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첫 번째 돌판을 받을 때, 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죄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온 모세는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립니다. 왜 모세는 첫 돌판을 깨뜨렸습니까? ❶분노심을 이기지 못해서 깨뜨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득력은 없습니다. ❷돌판을 받을 자격이 없었기때문입니다. 두 돌판에는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헌데 지금은 받을 자격이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그 약속의 돌판을 받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삼 사대가 벌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깨진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셔서 다시 돌판을 주십니다. 두 번째 돌판을 받을 때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난 뒤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기회를 더 얻지 못해서 쓰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다시 기회를 주시지 않아서 쓰임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베드로, 마가요한 모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허나 주님은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화1)특히 요한복음 4장에는 수가성의 여인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낮 12시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입니다. 다섯 남자와 헤어지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그도 남편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여인을 나쁜 여인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도대체 몇 가정을 파괴시킨 여자인가? 음란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이 여인을 나쁜 여인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모르는 자입니다. 당시 여인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때인가? 아무런 경제권이 없던 때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쁜 여인이기 전에 불쌍한 여인입니다. 많은 상처를 갖은 여인입니다. 아픈 여인이구나!가 먼저 보이는 사람은 복음을 아는 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넘어졌을 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뭘까? 교회는 무조건 받아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품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정죄하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예화)어릴 적에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창녀촌으로 팔려간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도 순정은 있는 법입니다. 자매님은 어떤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자신들의 어둠을 스스로의 힘으로 걷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창녀촌을 탈출해 아무도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로 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자매님이 창녀촌에서 지낼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주일에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발품을 팔아 교회에 찾아 등록을 했습니다. 부부는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모두 집사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행복한 삶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어느 집사님이 자매의 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신실해 보이는 자매가 그렇게 더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정말 가증스러워 어쩜 자기의 더러운 과거를 그토록 감쪽같이 속일 수 있을까? 이건 당신만 알아야 해. 정말 기막힌 일이야“하며 다른 교인에게 전해준 귓속말은 그들 부부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 부부는 교인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전에 그토록 친절하고 따듯했던 교우들이 자기들만 나타나면 마치 벌레 보듯이 힐끔거리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교우가 자기들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들은 안타까웠습니다. 자신들의 불행한 과거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아픔이지 교우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교인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교인들은 그들을 피해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창녀촌보다 더 싸늘한 교회에서 그들 부부는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밤 부부는 수면제를 나눠 먹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청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부부 집사의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 담임목사님은 가슴을 치며 울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양 떼를 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리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2.셋째로 복음의 능력은 광채 나는 인생이 되게 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언제 광채가 났나요? (1)모세는 기도하고 난 후에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28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생각해 보세요. 40일을 금식하면 얼굴이 어떻게 광채가 나겠습니까? 뼈만 앙상하지 않을까요?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분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헌데 이것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이 말씀은 억지로 금식한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 생각나지 않을만큼 하나님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행복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이빈다. (2)또“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눴을 때” 광채가 났습니다. 29절입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보세요. 좀 전의 말씀대로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했습니다. 헌데 자신은 몰랐습니다. (적용)예배시간에 보면 교회 들어올 때는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헌데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들을 때 보면 얼굴에 광채가 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성령의 충만한 모습을 서로가 느껴요 할렐루 할렐루 손뼉치면서 할렐루 할렐루 소리 외치며 할렐루 할렐루 두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해요”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은혜를 누린 사람들에게는 광채가 납니다. 헌데 자신은 모릅니다. 남들이 알아 봅니다. 우리들도 이런 역사가 있길 바랍니다. (한 번 옆에 사람을 보세요.) (결론)우리는 빛 되신 주님을 모신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광채가 나야 합니다. 오늘 날에 광채나는 삶이란 뭘까요? 한 마디로 기쁨이 있는 삶입니다. 기도하고 주님과 깊은 교제하고, 철저히 나 자신을 돌아 보며 회개할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도됨은 기쁨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기쁘십니까? 혹시 기쁨을 잃어버리고 계시다면 우리는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기쁨을 구하십니까? ❶혹 요나의 기쁨은 아닙니까? 요나의 기쁨은 박넝쿨의 기쁨입니다. 니느웨성이 어떻게 되나? 보자합니다. 헌데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쬐자 정신이 혼미해 집니다. 헌데 박넝쿨이 나서 그늘 속에서 쉬니 너무 좋습니다. 보세요. 요나의 기쁨은 편한거입니다. 내가 편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편한 것 때문에 기쁜 것은 낮은 차원의 기쁨입니다. 편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라면 우리는 참 기쁨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❷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영혼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에 기뻐합니다. 잃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기뻐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쁨은 영혼을 구원한 기쁨!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기쁨! 오늘 주일 누가 기쁠까요? 와서 대접받는 분들이 기쁠까요? 점심을 준비해서 성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봉사자들이 기쁠까요? 앉아서 먹는 자들이 기쁠까요? 전자입니다. 복음의 확실한 능력은 기쁨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이 기쁨이 넘쳐서 승리하는 거룩한 종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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