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사람들 | 이병수목사 | 2013-05-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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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5일 주일 낮 예배 요한복음 17장 강해 설교(2) 성경:요한복음 17:6-10 제목:내게 주신 사람들 1.주님이 달란트 비유를 하셨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불러 각각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이냐? 둘이냐? 하나냐?라는 차이는 있지만, 달란트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각자의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적게 받은 사람도 있지만, 달란트는 누구에게나 주셨습니다. / 그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받은 달란트를 갖고 어떻게 살았는지 결산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헌데 하나님의 관심과 판단 기준은 얼마를 남겼느냐?는 결과물보다, 달란트를 갖고 어떻게 살았느냐?는 태도를 보십니다. 결산하실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얼마나 착하냐? 얼마나 충성되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는 무엇이 있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➀시간의 달란트입니다. 어느 사람이든지 주어진 시간은 다 다릅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짭은 인생을 살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헌데 잘 살았느냐?는 몇 살을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입니다. 100년을 살아도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악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허나 주님처럼 33년을 살았다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착하고 충성스럽게 살았다면 그는 잘 산 인생입니다. ➁둘째는 물질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물질은 은사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적게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 또한 주님은 얼마의 물질을 소유했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주신 물질을 갖고 어떻게 살았느냐?를 보십니다. 자신의 배만 채우며 산 인생이라면,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사랑하기에 게으르고, 섬기기에 게으르고, 남의 아픔을 돌아보는 것에 게으른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신 물질이 얼마이든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셔야 합니다. ➂셋째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주님은 하나님께서는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혼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족일 수 있고, 이웃일 수 있고, 친구일 수 있고, 동료일 수 있고,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국의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2.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헌데 내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7절에는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 9절에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절에서도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이것이 주님의 청지기 의식이었습니다. 우리의 변질이 뭐예요?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잊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변질된 것입니다. 다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헌데 달란트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세 번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모든 것 중에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위해서 사람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위해서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시간과 물질은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을 섬기는 데 써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데 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입니다. 헌데 타락이 뭐예요? 물질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만 쓰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생명을 짓밟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도 물질도 기꺼이 쓸 줄 알아야 합니다. 3.그렇다면 주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을 어떻게 섬겼습니까?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1)첫째는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습니다. 6절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었습니다. 헌데 우리는 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건만,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좋다. 영적으로 성숙하다. 신앙생활이 참 아름답다’는 말이 뭘까요?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예!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1)세례 요한을 보세요. 요한은 주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주님보다 먼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놀라운 부흥이 임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말을 듣기 위해 광야로 몰려 왔습니다. 사람들은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의 이름은 삽시간에 유명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 엘리야가 살아 왔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영권이 탁월한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고 여겼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몰려와 묻습니다. 당신이 메시야요? 당신은 누구요? 이 때 세례요한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더 더욱 메시야도 아니요. 나는 그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사람이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뿐이요. 신부를 취한 자는 그분이시고, 나는 그분의 들러리 일뿐이요.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부족한 사람이요” 한결 같이 자신 이름을 부인합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높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예화2)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은 우리의 죄된 본성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것은 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김용구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배 전에 강사 목사님과 우리 내외, 최전도사님 내외, 그리고 몇 분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하던 중에 김용구 목사님이 교육전도사 시절에 만난 청년이 지금까지도 자신을 따르고,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겠다며 자랑을 합니다. 청년 사역하면 나도 열심 있었던 사람인데... 순간 질투심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 잘 했나보네! 지금까지 따르는 청년이 있는 걸보니... 나도 청년사역 열심히 했는데, 그런 청년이 없네!... 태수 사모 하나밖에 없어!!!” 태수사모는 전에 제가 청년사역을 할 때 리더로 섬겼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따라 우리 교회로 오셨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돌아와서 제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는 나를 좋아하고, 따르고, 잘하는 청년이 없다...”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게 할 말입니까?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 사람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언제부터 목회의 결과가 내 사람을 갖는 것이었나? 내 편들어주고, 나에게 잘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을 갖는 것이 목회인가? 그게 목회성공인가?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아직도 난 멀었구나! 이런 교만이 있나!’ 혼자 정말 회개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이 주신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지 않고, 나를 나타내려고 하는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고요? 이것이 목회 아닙니까? 제가 정말 좋은 목사라면 어떤 목사여야 할까요? 내게 주신 미래교회 성도들이 나!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달을 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언어나 문자에 집착해서 정작 가리키는 참된 의미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헌데 성도들은 ‘주님을 보아야 하는데, 주님을 전하는 설교자를 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사람의 말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정확하세요. 제가 서남교회에 있을 때에 권사님들 중에 저를 좋아하는 팬클럽이 있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시죠.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모릅니다. 물심양면으로 잘해 주셨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대접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내가 잘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착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헌데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게는 광야교회인 시골교회인 주성교회로 보내셨습니다. 청년들과 팬들로부터 끊어 놓으셨습니다. 시골 코흘리개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돌아보면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 자신에게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믿고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저를 보게 하셨습니다. 시골교회에 있으면서 비로서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가 시골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전 여전히 내 이름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헌데 주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고, 시골에 머물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오직 주님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예화3)조선일보 한 지면에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내용인즉 요즘 ‘가나안 교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교인들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믿지만, 교회에는 안나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잖습니까? 예수님은 믿는데, 교회는 ‘안나가’는 교인들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안나가!는 이유는 교회에 대한 실망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교회의 이름, 담임목사의 이름, 특정한 사람의 이름만을 내세우고 있는 현실에 대한 실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식대로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사람의 뜻과 사람의 식대로 세워져 가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허나 교회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교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길은 하나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만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자신의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제자 삼는 본질을 회복할 때 그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적용1)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고 계십니까? 내가 원하는 자녀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양육하고 있습니까? 애들에게 무슨 말을 많이 하십니까? / 하나님이 주신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 교회에서 내 이름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는 미숙한 성도들 되지 마십시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우리는 주님이 세상에 보내신 편지이다. 세상의 향기이다.) (2)둘째로 주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8절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주님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지 않고, 사람의 말이 선포되기에 성도들이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잘하라고 하고,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 강단에 실망하여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사십니까? 사람이라는 말이 영어로 Person입니다. 이 말은 Per라는 접두어 “무엇을 통하여”라는 말과, sound 즉 “소리”라는 명사가 합쳐진 말입니다. 주님의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오직 주님의 소리를 내는 자입니다. 개는 개소리를 냅니다. 사자는 사자의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소리를 냅니다. 절대로 자기 소리를 내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주님의 소리를 내야 합니다. 헌데 주님의 사람이라면서 자기 소리를 냅니다. 심지어는 마귀의 소리를 냅니다. 안됩니다. 지난 주간에 새벽예배 시간에 에스겔 37장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임재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골짜기로 가셨습니다. 그 골짜기는 마른 뼈들이 가득한 사망의 골짜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물었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에스겔이 보기에는 도무지 살 가능성이 없습니다. 깡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나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에게 답이 있겠지! 하나님이 하시면 얼마든지 살아나겠지!하는 마음으로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너는 이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라. 말씀을 선포하라. “마른 뼈들아 살아나라! 생기야 오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말씀을 선포하자 마른 뼈들이 서로 들어맞으며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생기가 불어와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제게 도전을 주셨습니다. ‘이목사 너는 내가 맡겨준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하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책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힘을 내서 말씀을 대언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겠구나! 그래서 미래교회에서 온 편지에도 썼지만, 상반기 말씀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❶먼저 6기 제자 반을 꾸려서 평신도들을 제자 삼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아직 제자훈련을 받지 않은 청년들, 장년 성도들은 훈련의 짐을 져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 오후 1시간 30분씩, 12주 과정으로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5명 이상만 모집이 되면 바로 시작할 것입니다. ❷또한 화요성경 공부 반에도 참여 하십시오. 화요일 오전에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오십시오. 이제 신약성경에 대한 연구가 시작됩니다. ❸셋째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경과외를 하려고 합니다. 2013년 대한민국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들 중에 60% 이상이 게임중독과 스마트 폰에 중독되었다고 합니다. 매일 2시간 이상씩 붙잡고 있다면 중독입니다. 점점 우리 아이들의 지성과 인성과 영성을 세상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자녀들에게 성경과외를 시키기 바랍니다. 영어, 수학 학원에 보내 공부시키듯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 담임목사와 성경을 배울 수 있도록 과외를 시키세요. 정말 자녀들이 성공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가르치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아이들에게 권해 보세요. 그리고 과외비를 내셔야 합니다. 과외비는 모일 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사시면 됩니다. 한 아이라도 모집이 되면 시작할 것입니다. 개인과외라서 한 두 번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❹넷째는 장년 남자 성도들을 위한 토요 조찬 성경공부입니다. 토요일 새벽예배 후 오전 6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성경공부를 하기 원합니다. 성경공부 후에는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할 수 있으면 운동도 하겠습니다. 전도사님, 장로님들, 안수 서리 집사님들, 남자 성도들이라면 모두가 모이기 원합니다. 일주일마다 모여 기도도 하고, 말씀도 배우고, 서로 친교도 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모입니다. 5월 11일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려고 합니다. 다만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훈련의 짐을 집시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맡겨 주신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셨습니까?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고, 아버지의 말씀을 전했습니까? 반드시 결산하실 때가 옵니다. 그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인정받는 거룩한 종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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