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사람들(2) | 이병수목사 | 2013-05-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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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2일 주일 낮 예배 요한복음 17장 강해 설교(3) 성경:요한복음 17:11-15 제목:내게 주신 사람들(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지난 주일에 두 가지를 살폈습니다. Ⅰ.하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Ⅱ.둘째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4가지 말씀 훈련사역을 시작했습니다. ❶먼저 6기 제자 반을 꾸리고 있습니다. ❷또한 화요성경 공부 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홉 분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❸셋째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경과외를 하는 일입니다. 4명의 아이들을 1차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순종의 사람 요셉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인물연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요셉, 다윗, 다니엘입니다. 헌데 이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10대 청소년 시절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 절대 어리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말씀으로 깨울 수 있습니다. ❹넷째는 미래교회 장년 남자 성도들을 위한 토요 조찬 성경공부입니다. 어제 여덟 분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일주일동안 힘겨운 삶을 사느라 피곤한 분들입니다. 주말 오전만큼은 쉬고 싶을 텐데, 교회에 와서 말씀을 배우게 하니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사는 길이라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제가 사랑하는 길은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측은한 마음은 뒤로하고, 함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각자 말씀의 자리로 찾아 나오시기 바랍니다. Ⅲ.세번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겼는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 주님은 내일이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습니까? 헌데 무엇보다 주님은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것만큼 큰 사랑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만큼 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합니까? 그러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을 위해 주님은 세 가지 제목으로 기도해 주셨습니다. 보호하심, 하나됨, 기쁨입니다. 이것을 묵상하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구해 주셨구나! 생각합니다. 1.첫째로 주님은 저들을 보호해 주옵소서! 11절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겠습니까? 제자들을 두고 가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저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1)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말씀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버지의 이름을 걸로 그들을 지켜 달라’‘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예화-가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아빠! 이름을 걸고 약속할께!!’ 그대로 자녀들은 믿습니다. 헌데 이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이들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의 이름이 뭐예요? 많지요. 그 가운데 ➀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아십니다. 나의 생각 나의 체질, 나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분은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자 되시는 아버지께 지켜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➁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엘로히 -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혼자라고 내 아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양은 목자 없이는 절대로 살수 없습니다. 목자가 길을 인도해 주시고, 목자가 지켜주시고, 시원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➂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만큼 복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는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 주십니다. 탕자처럼 거지꼴로 와도 받아주십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받아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니 자신의 죄가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아버지는 내 상태가 어떠하든지 지켜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잘한 것이 있든 없든, 아버지는 지켜주시고, 사랑하십니다. 주님께 나오십시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2)15절입니다.“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악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 됩니다. 주님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집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주님은 오신 곳으로 다시 가셔야 합니다. 헌데 제자들을 두고 가셔야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가는 마음!!! 이 때 주님은 하나님께 그들을 맡기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화)진짜 사나이 - 군대관련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지금도 아이들을 군대에 보내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기도해 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요. 이것만큼 확실한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켜 달라고...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만큼 큰 사랑이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가? 세상에서는 마귀가 우리들을 악에 빠지도록 함정을 파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적용)아브라함은 늘 조카 롯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도 하나님은 롯을 구하셨습니다. 헌데 롯을 구원하는 대목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느 날과 같이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하는 그 날 아침에도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19장 27-2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절에서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소돔과 고모라성을 엎으실 때에 롯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롯을 위해 기도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능력입니다. 내가 자녀들을 아무리 사랑하나, 내가 지켜줄 수 없습니다. 대신 내가 하나님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사 내 자녀들을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2.두 번째 주님은 ‘우리와 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라면 우리가 서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적응력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갖다 놓아도 잘 견뎌냅니다. 반대로 가장 큰 단점이라면 하나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화1)미국의 테네시주에는 이상한 이름의 교회가 있습니다. ‘오른발 침례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연유가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아 세족식을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족식 때문에 성도들끼리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줄 때 오른발과 왼발 중에서 어느 발을 먼저 씻겨 주셨느냐?를 놓고 다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쪽에서는 오른발부터 씻겨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왼발을 씻겨 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 교회에서는 왼발부터 씻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바로 옆에 세운 교회가 오른발 침례교회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나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11절 후반절을 보세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아셨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시기 질투로 나누어지기 쉬운 자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또 마귀가 끊임없이 갈라놓으려고 시험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날마다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1)하나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에 보면 “우리와 같이”입니다. 우리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됨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것을 다스리게 하자”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23절 이하에서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브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가정의 근거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몸은 둘 이나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헌데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가 깨어진 것입니다. 마음이 둘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자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18절에서는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됨은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악한 마귀의 계획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2)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 ➀그래서 예수를 믿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21절에서도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일 때 세상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➁또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3)그러면 무엇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까? ⒜진리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미래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에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로부터 말씀의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방향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나가는 방향이 있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성도들을 깨우는 일!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뜻을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라는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 되기를 날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의 가정이 하나되길 기도하십시오. 부부가 하나되길 기도하십시오. 교회가 하나되길 기도해 주십시오. 이 민족이 하나되길 기도해 주십시오. 3.셋째로 주님은 ‘저들에게 내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한국교회가 정말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기쁨입니다. 예수 믿는 증거가 많습니다. 중요한 교리도 많습니다. 전통도 많습니다. 그러나 단연 예수 믿는 증거는 기쁨입니다. 신약성경에 기쁨이라는 명사가 60회, 기뻐하라는 동사가 72번 나옵니다. 112번이나 기뻐하라고 합니다. 13절입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러면 주님이 누린 기쁨은 무엇일까요? (1)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맛보는 기쁨입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주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에 기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기뻐합니다. 허나 참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수고할 때 기쁜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것임을 아셨기에 그 일을 하십니다. 한 예로 요한복음 4장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나의 기쁨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이 말씀은 사마리아 도시 수가 성에 사는 한 여인을 구원하시고 난 뒤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2)우리의 기쁨은 구원받은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둘 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자신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한 기쁨, 전도한 기쁨은 너무나 큽니다. 헌데 주님은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의 참 기쁨은 내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내가 쓰임 받은 기쁨 이전에 내가 구원받은 기쁨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3)구원하는 기쁨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기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 영혼을 섬기는 기쁨,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는 기쁨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결론 -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기도해 주십니다. 저들을 악에서부터 보호해 주옵소서. 저들이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저들이 내가 맛본 기쁨을 세상에서 맛보게 하옵소서 우리들도 늘 이 기도를 주님께 드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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