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게 하옵소서 | 이병수목사 | 2013-05-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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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 17장 강해(4) 성경:요한복음 14:15-21 제목:거룩하게 하옵소서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삽니다. 헌데 70억이 모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거룩한 사람은? (1)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란? ‘the only true God!!’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할 때 대문자 God를 씁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유일하시며, 참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섬깁니다. 허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아닌 신들은 소문자 god를 씁니다.
사람에게는 종교성이 다 있습니다. 사람안에는 신으로 만 채울 수 있는 영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게 됩니다. 아무리 미개한 사람들도 나름대로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헌데 중요한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냐? 그렇지 않는냐?의 문제입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뿐입니다. 이틀 전에 석가탄일을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 불상 앞에, 절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에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에다 빕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형상 앞에 복을 빕니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빌어 보지만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왜요?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유일하신 하나님만 알면 됩니까? 아닙니다.‘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유대인들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슬람교인들도 유일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많은 이단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는 않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2)둘째로 거룩한 사람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다녔더니 하던 일들이 잘 되었다. -교회를 다녔더니 문제들이 술술 풀렸다. -교회를 다녔더니 병이 고침을 받았다. -교회를 다녔더니 자녀들이 성공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거룩한 사람이란? 이런 것으로 자랑 삼고, 이런 것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는 자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이와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사명이 있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니 환경이 좋아졌고, 내 문제가 풀렸다는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사람이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어떤 환경과 형편속에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맞혀 보세요. 질문1) 요한복음 17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최후 순간에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신 중보기도입니다. 헌데 예수님의 중보기도인 1절부터 26절까지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뭘까요? (예!!! 아버지입니다.) (혹 맞추지 못한다면 힌트를 주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예!!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26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무려 서른아홉 번이나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렇게 많이 불렀던 곳이 없습니다. (질문2)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서 서른아홉 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을까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예!!! 그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예수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도 되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하시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중에 복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부를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적용)저에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땅에 두 명뿐입니다. 저의 아이들 주안이와 주영이입니다. 그렇게 보면 주안이나 주영이 입장에서는 영광 아닙니까? 지웅이나 인호나 기윤이는 나를 뭐라고 부를까요? 목사님!!입니다.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안이와 주영이 입장에서는 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헌데 이 아이들이 저를 아빠!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 하거나, 숨기려 한다면 아빠는 실망할 것입니다. 반대로 제가 주안이와 주영이에게 아빠!라고 불리울 수 있도록, 좋은 아빠가 되어야 겠지요.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삶을 살면 안되겠지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세요. 그렇다면 이 땅에 수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자녀된 성도들로부터 아빠!라고 불리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헌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고, 숨긴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아빠!라고 부름받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우리들에게 언제나 좋은 아빠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화)예전에 한 기업에서 고개숙인 아버지! 아버지들의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전국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버지에 대한 동시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전국에서 무려 7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참여 했습니다. 그 가운데 추리고 추려진 시 가운데,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시들이 있었습니다. 한 어린이는 “체육시간에 걸려 넘어져 상처로 얼룩진 내 무릎. 저녁에 퇴근하신 아빠는 내 다리는 쓱 보시곤 ‘클 땐 다 그런 거야’ 그날 밤 잠든 내 무릎에 호오 - - 몇 번이나 입김을 불어 주시며 ‘에이 녀석, 조심하지 않구선’ 자꾸만 자꾸만 혀를 차시는 우리 아빠”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 인생에 상처가 났을 때 여러분들이 알든 모르든 그 상처 위에 호 오--하고 당신의 입김을 불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이 죄에 빠져 넘어질 때마다 가슴 쓸어 내리시며 저러면 안되는데...하시며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아파할 때, ‘클 때는 다 그래!'하시면서도 위로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화)미래교회 온가족 체육대회 때 풍선 터뜨리기 게임이 있었습니다. 저와 한 팀인 가원이와 서원이가 옆에 있었습니다. 반대편엔 민경용 집사가 있었습니다. 가원이가 동생 서원이에게 말합니다. ‘아! 우리는 아빠 풍선 터뜨리면 되겠다. 서원아! 우리는 아빠 풍선 터뜨리러 가자!’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헌데 그 말을 듣고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 이게 아빠구나! 아빠와 가원이가 풍선 터뜨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실력으로는 아빠가 이깁니다. 헌데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보면 누가 이길까요? 어린 딸 가원이가 이깁니다. 이겨야 합니다. 가원이가 아빠 풍선을 터뜨리러 가야지!한 것은 아빠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아빠가 져 줄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잘못을 했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와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어린 딸이 아빠를 믿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은혜가 되더라구요. 물론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빠에게 갔는지... 그리고 딸의 기대대로 아빠가 져 주었는지.. 아니면 딸을 강하게 키우려고 가원이의 풍선을 아빠가 터뜨렸는지... 아니면 아빠에게 가다가 다른 적들에게 장렬하게 전사했는지...
또 한 어린이는 “나는 조금 밖에 안 예뻐도, 우리 아빤 내가 제일 예쁘대요. 나는 조금 밖에 잘한 것이 없어도, 우리 아빤 내가 제일 잘한대요. 그래서 나도, 이 세상에서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요” 내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 인생이 비록 남들보다 앞서지 못하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나는 네가 제일 이뻐, 나에겐 넌 최고야!’라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당당하게 용기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2.그러면 둘째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두 가지입니다. (1)하나는 편안함이 아니라, 평안함의 삶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때 편안 할려고 하지 마세요. 예수를 믿는 목적이 편안함에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좋은 것은 평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인데요.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나는 너희에게 선물을 주고 떠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편안함입니까? 아닙니다.)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한번 편안함의 정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편안함을 누리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예! 돈입니다. 사람이 왜 돈을 벌려고 합니까? 편안하게 살려는 것입니다. 돈이 주는 유익은 뭐니 뭐니 해도 편안함을 줍니다. 또 남들 앞에 과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주는 우상이 있다면 ‘편안함’입니다. (예화) TV를 보세요. 예전에는 다 수동이었습니다. TV는 손으로 다이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리모콘이 나왔습니다. 가정의 권력은 리모콘을 누가 갖느냐?입니다. 이제는 음성인식 기능이 나왔습니다. 말로 하면 채널이 바뀝니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행동인식 기능이 있습니다. 손으로 책을 넘기듯 손짓하면 채널이 바뀝니다. 에어콘은 사람이 움직이는 쪽으로 따라다니면서 바람 방향이 바뀝니다. 참 편안한 시대입니다. 헌데 이 편안함이 갖는 가장 유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몸은 점점 편안해지는 반면에 ‘영적으로는 무기력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적용1)신앙생활을 할 때 지혜가 무엇인가? 일할 수 있는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부서로 가는 것입니다. 헌데 똑똑하다는 교인들은 편안한 교회를 찾습니다. 편안한 부서를 찾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는 무기력해 집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것이 뭔지 아십니까? 일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러면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봉사해야 합니다. 할 일이 많아서 몸은 비록 피곤할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매일 무릎을 꿇는 일,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는 일, 모든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더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편안함이 아닙니다. 어떤 형편과 상황속에서도 평안함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훈련시킬 때 그 삶의 자리는 세 곳이었습니다. ?광야입니다. ?동굴입니다. ?골짜기입니다. 광야 동굴 골짜기의 공통점은 외로운 곳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곳입니다. (예화)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난 주, 무한도전에서 한국사특강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했습니다. 헌데 후반부에 안중근 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호가 도마입니다. 이것은 세례명입니다.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거사를 치룬 후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아들 안중근 의사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헌데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때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죽으라. 그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라. 그래야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 그리고 천국에서 만나자. 네 사명 다하고 오는 날 나는 너를 통해 영광을 받고, 천국에서 너를 맞이하리라”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이런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마치 예수님의 기도와 같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다. ?나는 천국에서도 너희들을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힘쓰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라. 죄와 싸우라. 너희들이 힘을 합쳐 나의 몸된 미래교회를 세우고, 이 땅 구석 구석에서 할렐루야!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힘을 다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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