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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이병수목사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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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1일 주일 낮 설교

성경:마태복음 4:18-22

제목: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두 종류였습니다. 무리와 제자입니다. 마태복음 4장 25절로 5장 1절을 보겠습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엄밀하게 둘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무리와 제자입니다.

무리와 제자의 차이는 뭘까요? 대표적인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5-27절입니다. “수 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제자의 자격에 대해서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리와 제자는 ➀먼저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무리들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이익이 먼저인 사람들입니다. 허나 제자들은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보다 주님이 먼저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자신의 꿈과 가족과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위의 것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허나 제자란 주님보다 더 우선인 것이 없어야 합니다. ➁둘째는 대가지불이 있느냐?입니다. 무리는 주님을 따르기는 따르나 손해를 보면서까지 따르지 않습니다. 이익이 될 때에만 따르는 것입니다. 허나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생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허나 기쁘게 고생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무리는 많은데 제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무리로 따르길 원하지, 제자가 되어 따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예화)유명한 교회에는 등록교인보다 출석교인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담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교회, 유명한 목회자의 설교를 찾아서 여기 저기를 찾아 다니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미래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짐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 부담도 갖지 않으려고 하는 무리가 되지 마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을 쓰셨지, 무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자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제자는 나의 결정이 아니라,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주어가 주님입니다. 18절에 보세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누가요? 주님이요. 무엇하시러요? 제자들을 찾아 다니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주님이 먼저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곧 그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요? 따라오란다고 어떻게 단번에 따라갑니까? 그들이 어떻게 해서 따랐는지 오늘 본문에는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설명은 누가복음 5장을 보아야 합니다. 수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에 오셨습니다.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졌지만, 잡은 것이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런 날이 없었는데, 그 날은 헛수고였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의 대답을 보세요. 5절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멈추었다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더라”

이 체험이 있고 난 뒤에 나와 함께 가자!하신 것입니다. 사실 누가복음 5장의 주제는 ‘예수님의 찾아 오심’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기적이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는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더 감동인 것은 예수님은 지금 누구를 찾아오신 것입니까? ‘실패한 사람들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어 낙심하고 절망한 인생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잘난 사람만 찾아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 있는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 토라를 가르치는 유명한 랍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헌데 랍비가 제자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랍비를 찾아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랍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허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주님이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얼마나 실력이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부르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쓰시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이 누구신가? 주님이 얼마나 실력이 있으신가? 주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신가?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자꾸 나를 바라보지 마세요. 찬양가사 중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후렴]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이땅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은혜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새겨야 할 말씀은 “나는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선택을 잘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때문입니다.” 제자는 이 확신을 갖는 자입니다.

 

2.둘째로 제자는 회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명한 클럽에 회원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타종교는 따르는 그 사람보다 그의 가르침에 집중합니다. 부처가 죽을 때 그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스승님을 가장 잘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는 “애써 나를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나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타종교는 그분의 가르침에 집중합니다.

허나 기독교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 예수님의 행동에 집중기 이전에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처럼 예수님은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만 좋아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제자가 아닙니다. 제자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24시간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남들이 갖지 못한 자격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힘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과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예화)어떤 기도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 정말 열심히 목회를 했는데도 열매는 없고, 너무 힘들어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목사님은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내 기도 들어 주신게 뭡니까?“라며 따졌습니다. 헌데 그 날은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은 뭐든 구해라. 내가 다 들어주겠다.’ / ‘정말입니까? 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실 것입니까?’ / ‘그래 정말이다. 구하라.’

그러자 목사님은 가슴이 벅차서 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설교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우리 교회 예배에 감동과 변화가 있게 해 주십시오.

그래! 들어주마! 또 없느냐?

 

저희 자녀들이 일평생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 사회에 이바지 하는 아이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분단의 아픔을 치유해 주시고, 이념간의 갈등을 치유해 주십시오.

성도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병든 성도들이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치유되는 은혜를 주십시오.

 

‘그래 좋다. 다 들어주마!!! 헌데 내일부터 넌 나를 더 이상 보지 못 할 것이다’ 목사님은 놀라서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왜요?’ 그러자 하나님은 돌직구를 날리십니다. ‘너는 나를 구하지는 않았다.’ 못 알아 들으시네요.

 

이 목사님이 구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 영원히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십시오.’ 많은 기도제목 가운데 정작 하나님은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소원은 많이 아뢰지만, 정작 하나님을 구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예수님이 우리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삼아 내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기도제목 보다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이것 하나면 됩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가자!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예화)울지마 톤즈로 전국민을 감동하게 한 이태석 신부님은 수단이라는 가난한 나라에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섬기며 그들을 사랑한 분입니다. 그분이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처음엔 저들을 어떻게 도울까? 무슨 일부터 해야 하나? 너무 할 일이 많아 정신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헌데 해도 해도 끝이 없더랍니다.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사역을 했는데... 지치고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깨달았다고 합니다. 내가 이들을 뭘 도와 주겠다는 것이 교만이구나! 이 마음이 나는 저 사람들하고는 달라!라는 마음이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는 사랑은 그냥 함께 사는 거구나!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고, 그렇게 같이 사는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 나와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처음 가는 인생길 얼마나 험하고 어렵습니까? 밤이 새도록 수고하지만, 남는 것은 빈 그물 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 예수님은 함께 나와 동행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24시간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특별한 회원권을 갖은 사람처럼 주님을 믿지 마세요. 제자는 주님과 함께 인생길을 동행하는 것입니다.

 

3.셋째로 제자는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자도! 제자도!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헌데 제자도의 완성이 뭘까요? 제자도의 완성은 순종입니다. 베드로의 결단이 무엇입니까? 정말 피곤합니다. 밤새도록 수고했습니다. 집에 가 쉬고 싶습니다. 너무 피곤합니다. 이미 그물을 다 정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뭐라고 순종합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렇게 하니”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말씀이 능력이 되려면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➀먼저 듣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을 들었습니다.

➁다음은 마음으로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 순종하자. 그래 믿음으로 도전해 보자’

➂그리고 셋째로 결심만 해서는 안됩니다. 결단을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 피곤하지만, 다시 그물을 들고 주님이 일러주신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힘껏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니”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순종한 베드로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만선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동업하자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1)이 일로 인해서 베드로는 주님에 대한 경외함을 갖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베드로는 주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신적 두려움을 회복했습니다. (적용)저는 우리 성도들이 빨리 회복해야 하는 것이 신적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2)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8절을 보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이 뭘까요?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그리고 주님에 대한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5절에 보면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처음에는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Master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Lord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호칭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마태복음 말씀처럼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제자를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미래교회를 섬기시는 여러분은 무리처럼 교회생활 하십니까? 제자처럼 교회생활을 하십니까? 주님은 수 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응답하고, 순종한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무리가 아니라, 제자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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