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1) | 이병수목사 | 2013-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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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5:1-3 제목: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1) 팔복강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행복’일 것입니다. 행복도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행복이 있겠지요. 허나 성도들의 관심은 내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이 뭔가?를 알아야 하지요.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산상설교라고 해요. 그 가르침이 보화와 같다해서 산상수훈, 산상보훈이라고도 해요. 산상설교의 핵심이 팔복이예요. 팔복은 주님이 보실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설교 제목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설교 제목을 정했어요. 산상설교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예요. 오늘 성경에 보니 예수님을 따르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1절이예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무리가 있고, 제자가 있어요. 헌데 산상설교는 무리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예요. 제자들에게 하신 거예요. 주님은 무리를 피해서 산에 오르셨어요. 그리고 산에까지 따라온 제자들에게 산상설교를 하셨어요. 이렇게 하신 이유는 주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과는 달랐기 때문이예요. 주님은 무리들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싶었던 거예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을 보면 무리와 제자를 분명하게 구분을 해 놓았어요.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큰 무리가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산에 올라 가셨다. 예수께 배우고, 그분께 인생을 건 사람들도 함께 올라갔다.” 무리는 그냥 무리예요? 헌데 제자들은 뭐라고 설명을 했나요? ➀예수님께 배우는 사람들이예요. ➁그리고 예수님께 인생을 건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제자는 예수님께 배우고,예수님께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예요. (적용)사랑하는 성도들은 무엇에 인생을 걸었습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보세요. 내가 무엇에 인생을 걸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점검을 하면 알아요. ❶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가? ❷어디에 관심이 제일 많은가? ❸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가? ❹내 기분을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내가 무엇에 인생을 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 인생을 건 사람들은 주님을 늘 생각합니다. 주님을 늘 의식하며 삽니다. 주님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을 알고 싶고, 주님을 만나고 싶고, 주님의 능력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에게 인생을 건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돈을 씁니다. 땅에만 쌓아두려고 하지 않고, 하늘에 쌓아두려고 합니다. 주님에게 인생을 건 사람들은 벌어지는 현실 때문에 기분이 좌우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함으로 괴로워하고, 주님께 실망스러운 삶을 산 것을 회개하고,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은 어디에 인생을 거셨나요? 그렇다면 주님에게 인생을 건 제자들이 꿈꾸고, 구해야 할 행복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너는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팔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제 일복을 나누려고 합니다.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풀어서 말하면 “마음이 가난한 너는 참 복이 있는 사람이구나! 네가 천국을 누리겠구나!”라는 말씀입니다. 팔복은 천국에 가서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현재적인 복이예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행복이라면, 사람들이 가장 꺼리고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가난’이 아닐까요. 어떤 식으로든 가난한 것은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헌데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가난함은 물질적인 가난함을 말합니다. 실제로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이 가난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난하면서도 교만한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면 안되지요. 1.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요? 보통 가난하다는 헬라 말은 ‘페네스’입니다. 페네스라는 말은 남들과 비교하여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넓은 집에 사는데, 나는 좁은 집에서 살 때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헌데 오늘 본문에서 가난이라는 말은 ‘프토코스’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 ‘프토코스’는 절대 빈곤의 상태를 말해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대빈곤의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예요. 아시죠! 우리는 영적으로 프토코스였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의의 근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구원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너희는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죽어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밖으로부터 누군가가 와서 구원해 주어야 할 상태입니다. 프토코스였습니다. 헌데 주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상태는 (1)첫째로 욕심을 다 비운 상태입니다. 우리들이 왜 불행해요?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욕심을 내려 놓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사람이 언제 성숙해 지나요? 내가 안간힘을 써보고, 노력을 다 해 보지만, 뜻대로 안될 때 사람이 절망을 합니다. 헌데 그 절망 중에 생각하는 거예요. 내 욕심이었구나! 내 욕심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려놓자!!!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자!!!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서 마음이 가난해 집니다. 종종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이런 것을 마음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➀난 크게 바라는 것 없다고. 그저 가족 모두 건강하고, 자식들 속 썩이지 않고, 남편 직장생활 잘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아세요. 이게 얼마나 큰 욕심이라는 것을요. ➁어떤 사람은 난 다른 소원 없고. 작은 바램이 있다면, 비오는 날에 거실 유리창으로 흘러 내리는 빗물을 바라 보면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만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참 낭만이 있지요. 이것을 한 마디로 뭐라고 할까? ‘헐!!’이지요.. 이대로 되려면 큰 거실이 있는 집이 있어야 하죠. 남편과 자녀들은 다 자기 역할을 하러 나가야 되지요. 집안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마음이 가난한 것이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는 상태, 만사가 다 편안한 상태를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욕심이예요. 수요예배 시간에 야고보서를 나누었는데... 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 중에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자기 의지와 노력과 뜻만을 갖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이러 저러한 도시에 가서 일 년 정도 머물면서, 사업을 시작해서 큰 돈을 벌어야겠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는 여러분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내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햇빛이 조금만 비쳐도 금세 사라지고 마는 한 줌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원하셔서 우리가 살게 된다면, 이러 저러한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면, 주님이 허락해 주시면, 주님이 함께 하시면 이러 저러한 일을 하겠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욕심을 비운 가난한 마음입니다. (2)둘째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범사에 자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13절에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이예요. 나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이니까 내가 기도하고 계획해서 손을 대어 하는 일들은 결국 다 잘 될 것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나를 어떤 형편에 갖다 놓는다 해도 나는 주님만 바라보고 견뎌낼 힘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형편에서도 난 적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예화)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시골로 발령을 받았어요. 그것도 주거 환경이나 교통 사정이 아주 열악한 시골로 가셨어요. 찾아가기도 힘든 학교예요. 이 분이 서울에 와서 동료를 만났어요. 동료는 위로한답시고 천방지축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인사를 했어요. 헌데 그 선생님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말썽도 많이 부리고 도회지 아이들에 비해 학업 능력도 떨어져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전에 있던 학교 아이들은 이미 학원에서 제가 가르칠 것을 다 배워서 옵니다. 수업을 하지만 저도 아이들도 의욕이 없었지요. 도시 아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것 가지고는 즐거워 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날 아이들이 예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려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조금 싼 것을 사주면 안 먹지 않을까? 몸에 안 좋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고 학부모들에게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등등.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릅니다. 아이들이 아직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가르칠 것이 많습니다. 제가 열심히 가르치면 아이들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이곳에서는 새롭게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의욕이 살아납니다. 또 어쩌다가 과자라도 한 번 돌리면 교실은 난리가 납니다. 많이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제일 싼 과자를 아이들 수만큼 사면 됩니다. 부담이 없으니까 자주 생색을 내게 되죠. 그때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제가 더 행복합니다.” 보세요. 가난해야 행복을 압니다. 배 고픈 사람이 밥맛이 좋듯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많이 갖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혹 웬만한 일에는 감사할 줄도 모르고, 기뻐할 줄 모르신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년이 지나도 쓰지 않는 옷이나 신발, 가방은 나누세요. 농안에 옷이 가득한데도,,, 뭐라고 해요?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주는 대로 먹는 사람이 좋지,,, 그거 살쪄요. 맛 없는데요. 이빨 썩는대요하며 골라 먹으려고 하면 주기 싫지요. 주님도 그래요. 매 순간 감사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하세요. (3)셋째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주님을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산상설교에서 일복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생각해 보세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어요?. 절박하지요. 절실하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이와 같아야 한다는 거예요. (적용)정말 안타까운 것이 뭔지 아세요. 교회에 와서도...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거예요? 별로 사모함이 없다는 거예요. 기대감도 없어요. 왜 그래요?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예요. 주님에 대한 가난한 마음이 없는 것만큼 불쌍한 것이 없어요.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나는 승리에 굶주려 있다. 아직도 배고프다’ 주님에 대해서 그래야 해요. ➀시편 53편에서 다윗은 탄식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가장 큰 죄가 뭐예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마음 안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오늘 날이 이와 같은 시대가 아닙니까? 사방을 둘러 보아도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세상의 것으로 마음이 가득합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여전히 관심은 세상의 것으로 가득해요. 주님을 향해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요. 너무 절망스러운 상황이예요. 헌데 시편 53편 2절이 한 줄기 소망이 되요.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한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찾고 계세요. 하나님은 굽어 보시고 계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 있지만, 이와 같은 때에도 나를 찾는 자가 없나? 하나님을 찾는 자를 살피시고 계신다는 거예요. (예화)지난 주일에 살펴 보았지요. 삭개오는 외로웠습니다. 돈으로도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에 주님을 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뽕나무로 올라갑니다. 지금 삭개오는 주님을 너무 보고 싶습니다. 먼 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습니다. / 헌데 주님은 삭개오의 가난한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오셔서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며 삭개오의 마음안에 들어 가셨습니다. ➁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왜요? 프토코스는 보호자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보호자 삼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예화)세상은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부모 없는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함부로 대합니다. / 왜 그래요? 보호자가 없으니까? 미성년자가 잘못하면 보호자를 모시고 오라고 합니다. 보호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릅니다. 허나 세상에서는 보호자가 없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보호자 삼는 사람이 제일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한 성도에게 받은 메일 - 사단의 마지막 전략이라는 내용의 글 중에서) 내가 이 마지막 시대에 너희들에게 명령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믿도록 해놓고 그들의 시간을 사소한 것으로 빼앗아라. 그러면 그들의 마음은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일주일 내내 바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전략이다. 행복은 물질의 풍요에서 온다고 믿게 하고 아내들의 사치심을 부추겨서 일주일에 7일을 일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하라. 돈과 명예를 좇는 일에 집중하게 하고 노후를 위해 돈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하라. 아내들을 직장으로 내몰아라. 그러면 아내들이 밖에 나가 일한 후에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 남편과 아이들에게 식사를 차릴 여력이 없게 될 것이다. 입에서는 짜증과 신경질과 투정이 새어나오게 될 것이며 만사가 귀찮게 느껴질 것이다 그 결과 조그만 일로도 갈등하고 결국에는 이혼이라는 파국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후 자극적인 드라마와 광고와 연예뉴스 그리고 영화를 통하여 불결하고 추잡한 마음을 불어넣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하라. 신문과 잡지와 라디오와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퍼트려라. 모든 가정과 거리와 직장마다 사람의 정욕과 탐욕을 자극하는 내용을 퍼트려 그 마음에 음란한 생각과 마음을 품도록 퍼트려라. 그리고 컴퓨터의 노예가 되게 하라. 초고속 통신망을 연결시켜 날마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그들을 유혹하라. 또한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풍조를 유행시켜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토크쇼에 나오는 사회자와 출연자들을 통하여 이사회의 가치관과 풍조를 동성연애와 불륜과 이혼을 타당하게 생각하도록 퍼트려라. 각종정보와 스팸메일을 퍼부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라. 또한 교회 성도들이 불화하게 하여 교회를 떠나도록 하게 하라. 마음과 정신이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여유를 전혀 주지마라. 그들의 시간을 뺏을 수 있다면 예수를 만날 시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혜와 거룩함이 점차 파괴될 것이다. 교회의 위기가 뭔가? 너무나 부유하여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갈급함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하나님 말고도 의지할 것이 많다는 거예요. 주님은 제일 행복한 사람은 나를 찾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보호자로 삼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어떻든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거에요. 우리 교회는 지금 좋은 기회예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주님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 채울 수 있어요. 2.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유가 뭐에요? 천국이 저희의 것입니다. 성경에서 천국은 3가지입니다. (1)하나는 에덴동산입니다. 헌데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을 잃어 버렸습니다. (2)둘째는 장차 갈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입니다. 죽음 이후에 갈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3)그리고 천국은 주님을 모신 마음입니다. 기억하세요. 팔복은 죽어서 나중에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복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헌데 주님은 어떤 사람이 제일 행복한줄 아느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결국은 천국이 된단다.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이 없고,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병이 들고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마음이 천국인 사람이라면 그가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보세요. 이 땅에는 마음이 지옥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옥 같은 가정들이 많습니다.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년 마다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합니다. 헌데 중요한 것은 수입이 많은 것과 행복지수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적정한 수입이 되면 그 이상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도리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지수는 더 높습니다. 왜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마세요. 마음이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마음이 어떻습니까? 마음이 천국이세요? 마음이 천국인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뭘까요? 환경일까요? 조건일까요? 아닙니다. 마음이 천국인 것입니다. (예화)아주 고전 예화가 있어요. 좋은 주일학교를 다니면 알게 되는 예화예요. 어느 사람이 천국에 갔는데 사람들의 얼굴이 기름지고 토실 토실 하더랍니다. 헌데 지옥에 가니 사람들의 얼굴이 삐쩍 골아있어요. 왜 그런가? 가만히 보니까 천국이나 지옥이나 조건은 똑같아요.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신기한 장면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숟가락이 1m 짜리예요. 1m짜리 수저로 어떻게 음식을 먹어요. 헌데 천국에서는 그 수저로 서로 먹여 주는 거예요. 너 많이 먹어라! 네가 먼저 먹어라! 이러면서 알콩 달콩 맛있게 음식을 먹어요. 헌데 지옥은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난리예요. 남이 먹는 꼴을 못봐요. 1m짜리 수저로 아무리 음식을 떠 먹으려고 해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도 못 먹고, 남도 못 먹고, 그러니 점점 말라 갑니다. 보세요. 주님을 모시고 서로 사랑하는 곳은 천국입니다. 상대방을 섬기고 사랑하니 그 곳이 천국이 됩니다. 헌데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서 욕심으로 사는 곳은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 안에 주님이 오셔서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긴다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기억하세요. ‘마음이 가난한 너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다. 왜인지 아느냐? 네 마음이 천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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