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5) -긍휼이 여기는 자 | 이병수목사 | 2013-09-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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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5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5:7 제목: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5) - 긍휼히 여기는 자 1.긍휼이란? 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하나? 생명의 주인되신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행복하다고 합니까? 오늘은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矜恤(긍휼)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➀불쌍히 여길 ‘긍’=‘긍’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헌데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있으면 안 되지요? 그 다음에는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➁구제할 ‘휼’/ 구원할 ‘휼’입니다. 예를 들어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떻게든지 구해줘야 합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든지, 찾아가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든지, 진실한 마음을 담은 말로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헌데 보세요. 우리의 긍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보면 불쌍해요. 헌데 나는 살릴 능력이 없어요.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구원할 능력도 없어요. 말 몇 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겠어요. 밥은 얼마든지 사줄 수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이 되겠어요. 사람의 긍휼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는 힘이 없으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해 달라고...’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1)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맹인은 소리를 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여기에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이 ‘긍휼’ '엘레오스'입니다. 거지 소경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적용)때로는 우리 기도는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한 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주여”- - 간절하게 해 보시지요? “주여!”-‘주여’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짧은 기도는 동방 정교회의 고전인 ‘순례자의 길’에 ‘예수기도’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의 한 청년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에, 수도사에게 찾아갔습니다. 헌데 수도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순간 순간 마다 고백하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수도자의 권면에 순종하여 늘‘예수기도’를 드렸습니다. 길을 갈 때도,,,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고백을 10번, 50번, 100번을 진심을 담아서 기도할 때, 심령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도는 ‘저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긍’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휼’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구원하소서! 2.오늘 본문의 참된 의미? 본문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어떻습니까? 언뜻 보면 이 말씀이 조건절처럼 보이지요.‘너희들이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면, 나도 너희를 긍휼히 여겨 줄 것이라’는 말 같지 않습니까? 허나 이 말씀은 율법적인 도식으로 풀면 안됩니다.‘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 주겠다’는 율법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 말씀은 은혜로 풀어야 합니다. ‘너는 이미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이미 누구의 긍휼을 받은 자입니까? 예!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입니다. 3.하나님의 긍휼이란?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긍휼, 하나님의 긍휼을 알려면 구약성경 가운데 호세아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 중에 ‘긍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 성경이 호세아입니다. 히브리어로 긍휼이란 ‘라함’‘헷세드’입니다. 라함은? 내장, 창자라는 말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힘들 때 쓰는 말 중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애 간장이 녹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창자가 끊어지는 그 마음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헷세드는 열정, 열심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열심, 열정으로 사랑하고, 구원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라함’과 ‘헷세드’가 가장 잘 나타난 것이 호세아입니다. 호세아에서 말하는 긍휼은 창녀 고멜을 품고 용서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 역할을 합니다. 호세아의 이름의 뜻이 예수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고멜의 역할은 당시 하나님을 떠난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이요,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고멜을 사랑하는 호세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❶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고멜과 친구가 되거나, 보호자가 되어 도와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창녀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적용)하나님이 뭘 원하시는 거예요?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시는 거예요.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됩니다. 성경은 주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부부관계와 같다고 설명하십니다. (적용)예수를 믿어서 받는 가장 큰 축복은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➀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➁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➂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 다른 사람들도 존귀한 자요 구원받아야 할 자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흐르는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긍휼이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됨의 관계는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화)부부가 의사인 가정에 아주 예쁘고 귀한 딸이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예수를 잘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딸은 믿음도 좋고, 예쁘고, 장래가 촉망되는 딸이었습니다. 헌데 단기선교를 갔다가 사고로 그 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아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회복되었고, 믿음 안에서 잘 살아갑니다. 이 분들이 출석하는 교회에 부목사님이 한 번은 자녀 때문에 너무 속상해 하는 것입니다. 부목사님이 딸 때문에 힘들어 하니까 부인 권사님이 “자식은 다 그래요?”그리고 다음 말이 가슴에 박혔다고 합니다. “목사님! 힘들게 하는 자녀라도 있는게 은혜입니다.”이 분들에게 힘들게 하는 자녀라도 있는 게 은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자녀는 그 자체로 귀한 것입니다. ❷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자녀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름을 짓게 했는데,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막내 아들은 ‘로암미’라고 짓게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로=아니다. 루하마=긍휼,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떠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님이 경고하는 것입니다.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그리고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신 주님은 너희는 내 자녀도 아니야! 우리는 너무 힘들면 자녀에게 뭐라고 합니까? ‘넌 자식도 아니야! 이렇게 엄마 아빠 마음도 몰라주고...’그 마음인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고멜은 자식들을 낳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어 도망을 갑니다. 들리는 소식을 들으니 고멜은 정부에게 버림받고, 노예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지요. 남편 호세아 싫다고 나가더니 버림받고, 거지가 되어 노예로 팔려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아도 마땅하지요? 무슨 동정이 필요합니까? 헌데 하나님은 고멜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가서 값을 다 지불하고 다시 데려와 아내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고멜!!! 남편이 싫다고 도망친 고멜!!! 그 죄값으로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고멜!!! 헌데 하나님은 다시 가라! 가서 데려오라! 그를 구원해 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고멜이 우리입니다. 남편되시는 하나님에게 관심없고 세상이 좋아서 정신 뺐겨 살아갑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삽니다. 헌데 예수님을 보내셔서 살려오라! 구해오라. 값을 다 지불하고라도 살려 오라고 하십니다. 고멜이 돌아와서 다신 안 그럴께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너는 루하마라고,,, 너는 암미라고 선포했습니다.우리가 하는 것 봐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를 호세아 2장 2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항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정말 중요한 말씀은 두 곳입니다. ➊하나는 “내가 나를 위하여”죄악 중에 있는데 용서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잘 한 것이 없는데도 사랑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내가 나를 위하여”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시겠답니다. 하나님이 그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➋또 하나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우리들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앞에서 이 반응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하나님을 긍휼히 여기세요. 하나님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예배입니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들이 참 예배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존귀히 여겨 드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2)부모님들을 긍휼히 여기세요. 부모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3)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세요. (4)나 자신을 긍휼히 여기세요. 예수 기도를 드리세요. (예화)팬더 이야기 판다 한마리가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나무 위에서 열흘 동안 굶고 있지만...판다는 내려 오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동물 친구들은 이 모습이 너무 미련해 보입니다. 파란나비가 토끼에게 물어 봅니다 "난 판다를 이해 할 수 없어. 왜 몇 일씩 굶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니?? " 토끼는 나비에게 말합니다. "너는 네가 이해하는 것만 이해 할 수 있지. 판다의 상처도 모르면서 이해 할 수 있다 없다 말하지마.." 숲속 동굴에는 어미판다와 새끼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미 판다는 새끼를 위해 먹이를 구하러 나가야 하지만 나갈 수 없었습니다...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순간 하얀 눈에 찍힌 자기 발자국을 보고 사냥꾼이 동굴에 들어와 자기 새끼를 해칠꺼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눈이 계속 그치지 않으니 어미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굶고 있는 새끼를 위해 음식을 구하러 나갔습니다.... 내리는 눈이 자신의 발자국을 지워주길 바라면서요.... 어미판다가 재빨리 먹이를 구해 다시 동굴로 돌아왔지만 예상했던대로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2개의 사람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끼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눈위에 찍힌 자기 발자국 때문에 새끼를 잃은 어미판다는 눈만 내리면 자기 발자국이 너무 큰 공포가 됩니다.... 그래서 눈이 오면 일주일 열흘 씩 나무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제 판다가 왜 나무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난 너를 이해 할 수 없어" 우리는 이 말은 너무 쉽게 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봐야 이해 할 수 있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 -그럴 수 있지!하고 이해해 보는 것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갖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긍휼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기도했습니다. 이 긍휼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긍휼로 우리들이 서로 긍휼히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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