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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 이병수목사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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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3일 주일 낮 2부 예배 설교

성경:마태복음 5:21-26

제목: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

1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미워하고 싫어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오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율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➀첫째는 의식법입니다. 다른 말로 제사법입니다. 이 구약의 제사법은 예수님께서 단번에 영원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용서 받으려고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씻고도 남는다는 것을 믿는 자마다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허나 율법은 제사법만 있지 않습니다. ➁도덕법이 있습니다. 도덕법은 민법이라고도 합니다. 이 법은 계속됩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도덕법을 재해석 해 주셨다.

그 예로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예로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는 살인하지 말라는 것과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살인하는 것은 뭐예요? 사람의 육신의 생명을 해하는 것입니다. 간음하는 것도 남의 사람과 음란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헌데 이 율법의 허점이 있습니다. 들키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 다음에 십일계 명이 ‘들키지 말라’입니다. 설령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해도 들키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습니다. 또 율법의 가장 큰 단점은 한 번 발각되면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헌데 주님은 새로운 법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법은 ❶행동 이전에 생각과 마음까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세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이것만을 놓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살인을 하고 사는 것입니까? 오늘 아침에도 혹시 노하셨다면, 화를 버럭 냈다면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가라는 말은 멍청한 놈! 천벌을 받을 놈!!이라는 말입니다. 멍청한 놈! 미련한 놈! 바보천치 같은 놈!이라고 했다면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저희 어머님이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만 보면 안되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보시는 것입니다. 행동의 출발이 생각과 마음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법이 더 어려운 것이 뭐예요? 주님은 결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보시는 것입니다.

 

분노에 대한 바른 정의가 뭘까요? 분을 내는 것이 무조건 죄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노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거룩한 분노도 있습니다. 의를 위한 분노도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을 하거나, 미워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에 대해서 지적만 하면 됩니다.

또한 주님이 말씀하시는 노한다는 것은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쌓아두면 안됩니다. 마음속에 늘 화가 쌓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분노가 왜 생깁니까? 보면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안되니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세요. 마트에서 사달라는 물건을 당장 주지 않으면 화부터 냅니다. 즉각 즉각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에 화를 냅니다. 1000원을 잃어버렸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헌데 거리에 자판기에 500원을 넣는데, 돈만 먹고 커피를 주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자판기를 발로 차고, 욕을 합니다.

 

청소년, 청년들이 가장 화를 내는 것은 컴퓨터 속도가 느릴 때입니다. 렉이라도 한 번 걸리면 얼굴이 빨개집니다. 화를 냅니다. 욕을 합니다.

 

부모되신 분들은 왜 화를 냅니까? 자식들이 말한대로 즉각 즉각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부모말을 안듣느냐고 화를 냅니다.

보면 다들 자기 중심적입니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1.분노를 품고 살면 어떻게 됩니까?

(1)말을 좋게 안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살인이 뭐예요? 말로 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칼로는 몸을 죽이지만, 말로는 마음을 죽입니다. 주님은 칼로 육신을 죽이는 것이나, 말로 마음을 죽이는 것이 같다는 것입니다. 분이 마음에 있으면 말을 좋게 못합니다. 화가 잔뜩 났는데 말을 좋게 합니까?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상처 되는 말을 하고,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성도들이 깊은 상처를 받은 것 중에서 말로 받은 것이 가장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서로 말로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된 자분들은 자녀들에게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주님은 말로 비난하고 욕하고 무시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서 사람을 죽여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만약에 칼을 빼서 사람을 찌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걸 쉽게 할 사람이 있습니까? 너무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헌데 말로는 너무나 쉽게 사람을 죽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칼입니다. 그 칼로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것이 살인입니다.

조언해주고, 바른 길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해야 합니다. 책망도 해야 합니다. 헌데 분을 품고 말로 사람을 욕하면 안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면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을 비난하고 욕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2)또한 분노를 품으면 미워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니, 살인한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우리는 살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각색하지 마세요. 실제로 살인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살인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3)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누구입니까? ‘형제’입니다.“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입니다. ‘형제가 누구입니까?’ 한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➀먼저 가족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는 남들에게는 천사입니다. 헌데 가족들에게는 악마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화)TV속에 드라마나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는 눈물을 흘리고,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아내나 남편은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녀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존경하는 인물이 아브라함 링컨이래요. 김구선생님이래요. 소용없습니다. 가정에 아버지는 존경하지 않으면서 남들을 존경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은 사랑하기가 쉽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➁또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아래에 태어난 성도들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에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만나게 하신 성도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➂좀 더 넓은 의미로는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친구들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만나야 하고, 대하는 사람들이 형제입니다. 주님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한 번 자신들을 돌아보세요.

-부부간에 상대에 대해서 미움과 분노가 있지는 않습니까? 원망스럽고 화가 나고 밉살맞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부모 자식 간에도 사이가 안 좋습니까?

-돈 문제로 형제간에 의가 상하고, 서로 미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성도들 간에도 얼굴도 대하지 않고, 뒤에서 욕하고,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억하세요. 주님은 형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그렇다면 우리들이 잘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헌데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형제와 화목하는 것입니다.

(질문)지금 여러분의 삶이 정말 행복해 지려면 무엇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뭐가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으세요?

돈입니까? 돈이 더 넉넉히 채워지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돈이 주는 기쁨도 있지요. 그러나 돈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집이 내 집으로 한 채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남편이 승진하는 것입니까?

건강해 지면 행복해 질 같습니까?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해 질 것 같습니까?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성경은 우리들이 정말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화목”이라고 하십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으십니까? 좋은 집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 놓고 밥을 먹으면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꼴보기 싫어하는 것보다, 김치 한 가지를 놓고 밥을 먹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목한 것이 낫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물론 이왕이면 서로 간에 화목하면서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서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시겠지요? 그러면 최고지요?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면 알지만 그런 일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집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릴 여유와 돈을 모으려면, 가족 간에 화목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화)아주 사이가 좋은 형제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반짝 반짝하는 것을 형이 보았습니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갔는데,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동생이 얼른 금덩어리를 주웠습니다. 헌데 금덩어리를 주운 이후 둘의 사이가 어색해졌습니다. 동생은 혹시 형이 금덩어리를 나누자는 것은 아닐까? 나를 해하고 금덩어리를 혼자 차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강을 건너 가는데, 형이 동생에게 말합니다. ‘금덩어리를 한 번 만져봐도 되겠느냐? 동생은 이상했지만, 한 번 건네 주었습니다.’형은 금덩어리를 받아들자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놀란 동생이 왜 이렇게 하느냐?고 형에게 따집니다. 형은 “금덩어리가 없을 때는 우리 사이가 너무 좋았는데, 금덩어리가 생기면서 사이가 나빠졌단다. 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형제간에 우애가 아니겠느냐?”

주님은 우리들이 서로 화목하길 원하십니다. 예배에 춣석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해도 서로 화복하지 않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3.그러면 형제와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먼저 생각하라.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➀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형제가 나를 원망하게 만드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 자녀들이 여러분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 남편이나 아내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예화)한 아버지가 아들을 혼내면서 깨달았습니다. 나를 화나게 만든 자식만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들도 나 때문에 억울하고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아들에게 사과하리라! 아들과 관계가 잘 해결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아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닫고 아버지가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이들 뛰쳐 나갈까봐 걱정했는데, 감사하게도 아들이 아버지의 진심을 받아 준 것입니다. 무릎을 꿇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원망하게 만들어서 미안하구나.’‘화나게 만들어서 미안하구나.’

기억하세요. 원망하는 사람만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망할 만한 일을 만든 것도 잘못입니다.

➁또 내가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지 않은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남편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알게 모르게 교회 성도들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족들을 원망하고 기분 나빠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적용)날마다 돌아 보세요. 분노는 계속됩니다. 사울 왕은 늘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에 대해서 분노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다윗은 복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데 다윗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사울은 회개합니다. “다윗아! 네가 옳도다. 내가 다시는 너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리라”그리고 돌아갑니다. 헌데 살다보니까 또 불안해지고, 또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잡으려고 혈안이 됩니다. 보세요. 분노는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또 내가 지금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2)그렇다면 먼저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라”고 하십니다. 보세요. 참 예배가 뭐예요? 주일날 이 곳에 나온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헌금 준비해서 드리고 출석하는 것이 예배 드린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형제와 화목 하는 것이 아름다운 예배입니다. 아니 분노할 수 있습니다. 원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가 예배하기 전에 풀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화목제물이 되었다면 그가 참 예배자인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형제들과는 서로 다투고, 화내고, 비난하고, 원망하고 살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와서 예배를 드린다면 절대로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세요.

(3)화목한 삶을 위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요

➀성령께 도우심을 구하세요. 성령은 화평의 영이십니다. 성령이 임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과할 수 있습니다. 찾아 갈 용기가 생깁니다. 구하세요. ➁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세요. 십자가를 묵상하세요. 십자가를 붙드세요. ➂날마다 말씀으로 채우세요. 거룩한 것으로 마음을 채우라. ➃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뭘 원하시는 지 깊히 생각해 보시고, 나는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내 성질 내 자아 내 고집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정말 행복한 길은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리고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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