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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네 박자(새생명초청주일) 이병수목사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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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7일 추수감사, 새 생명 초청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누가복음 16:19-31

제목:네 박자 인생

오늘 본문의 말씀의 가치?

➀예수님만이 해 주실 수 있는 말씀이다. 왜 사후세계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어느 인간도 사후세계에 대한 말은 해줄 수 없다. 갔다 와야 해 줄 수 있는데, 갔다가 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긴 하다. 임사체험은 자기 죽음을 보는 경우인데,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오는 것은 아니다.

또 기도하는 중에 영혼이 잠시 육신을 떠나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오는 입신이라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허나 이것은 천국과 지옥을 극히 일부만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사후세계 즉 내세에 대한 말을 분명히 해줄 사람은 없다. 내세는 ‘올 내, 세상 세=앞으로 다가 올 세상, 혹은 올 내, 때 세=앞으로 다가올 시간이다.’ 어느 누가 앞으로 다가올 세상,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말할 수 있는가? 오직 예수님만이 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그곳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내세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해 주신 유일한 본문이다. ➁내세는 분명히 있다. 우리들이 아무리 내세가 없다고 주장해도 없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을 우리가 없다고 우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➂그래서 인생은 삼생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일생이다. 일생은 10개월 동안 어머니 태속에서 사는 시간이다. 일생은 이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일생에 살면서 이생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다. 허나 일생을 마칠 때가 되면 이 땅에 태어난다.

/그리고 이생을 산다. 이생의 삶은 100년의 세월이다. 헌데 우리는 이생에 살면서 이생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허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생의 삶은 영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헌데 이생에서는 영생의 세계를 상상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삼생의 삶이 있다. 삼생의 삶은 영원한 삶이다. 삼생의 삶이 내세이다. 내세의 삶이 종착역이다.

 

인생을 정의한다면, 이생에서 삼생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현세에서 내세를 향해 하는 삶이다. 헌데 성경은 내세는 두 세상이 있다고 한다. 천국과 지옥이다.

헌데 천국과 지옥은 현세에서 결정 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 기독교는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오직 한 가지 길 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천국에 갈 수 없다. 천국에 가지 못하면 지옥에 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초청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은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생리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명예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이름을 얻고 싶은 것이다. 유명해 지고 싶어 한다. 현세에 여러분의 이름이 유명(?)해 지길 바란다. 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유명해지길 바란다. 장차 심판 날에 예수님의 손에는 생명책이 들려져 있다. 그 책에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생명책에 이름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을 네 박자로 풀어 볼 수 있다.

❶첫째는 현세에 유명하게 살다가, 내세에도 유명하게 사는 사람이다. 이것이 제일 복받은 사람이다.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물질에 복도 받고, 나름 성공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죽어서도 예수를 믿었기에 구원받고 천국에서 유명한 자가 되는 사람이다. 저는 오늘 오신 모든 분들이 이 복을 받길 소원한다.

❷둘째는 정반대이다. 현세에서 무명한 자로 살다가, 내세에도 무명하게 사는 사람이다. 이 땅에서 예수도 믿지 않고, 이렇다 할 성공도 이루지 못하고, 힘들게만 살다가 죽는 사람이다. 헌데 내세에도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생명책에 이름이 없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다.

❸셋째는 현세에는 유명하게 살았는데, 내세에는 아무런 이름도 없이 무명으로 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름 없는 ‘한 부자’이다. 19절 말씀을 보세요.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이 사람은 아주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색옷은 그 사람의 부유함을, 속옷인 고운 베옷은 그의 권세를 말하는 것이다. 이 부자는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권세도 있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헌데 죽어서 지옥에 갔다. 내세에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이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부자라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특이한 것은 이 사람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되었다. 학자들은 이 사람들은 실존했던 인물들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자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헌데 구원받지 못했기에 주님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부자 집 담벼락에서 구걸하던 거지의 이름은 밝히는데, 부자의 이름은 없는 이유이다.

❹넷째는 거지 나사로이다. 나사로는 현세에는 비참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무명한 자였다. 병으로 고생했다. 거지였다. 가족들도 없었다. 누구하나 거들 떠 보지 않던 사람이다. 헌데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다. 내세에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유명한 자가 되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기 원한다.

1.내세에 유명한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면 첫 번째 사람처럼 사시길 바란다. 이 땅에서도 유명하고, 내세에서도 유명한 사람이 되면 가장 좋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유명한 자처럼 넉넉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내세에서도 주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 하시는 구원을 받기 바랍니다.

 

헌데 이 땅에서는 무명한 자로 살다가 내세에도 무명한 자로 사는 자는 정말 안타깝다. 또 한 부자처럼 이 땅에서는 유명한 자로 살았으나, 내세에는 무명한 자로 사는 것도 불쌍한 인생이다. 이 부자는 이 세상에서는 부러울 것이 없었다. 헌데 하나님이 없었다. 천국이 없었다.

 

나사로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마음에 모셨다. 그는 천국에서는 큰 자요 영광된 자요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현세에 다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현세는 길어야 100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세상에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화)인생은 여행과 같다.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5가지가 있어야 한다. ❶머니 머니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❷맛있는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❸좋은 숙소가 있어야 한다.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 ❹지도가 있어야 한다. ❺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여행만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불행한가? 돌아갈 집이 없이 여행만 한다면 얼마나 처량한가? 날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가정이 있을 때 여행도 행복하다.

 

그럼으로 내세를 준비해야 한다. 내세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을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밝혀 주고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만 믿는 것이 아니라, 집이 함께 믿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을 초청한 것이다. 나만 믿고 천국에 갈 수 없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기에 초청한 것이다.

 

2.둘째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22절을 보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거지도 죽는다. 부자도 죽는다.

부자를 생각해 보라. 좋은 음식으로 늘 배를 불렸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었다. 헌데 결국 죽었다. 아마 부자의 장례식은 대단히 화려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의 슬픔을 애도했을 것이다. 좋은 수의를 입혔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상여와 관에 실려 갔을 것이다. 헌데 지옥으로 내려갔다.

거지도 죽었다. 먹지도 못하고,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 불쌍하게 살다가 죽었다. 거지의 장례식은 어땠을까? 쓰레기 치우듯 골짜기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슬퍼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이 볼 때 나사로의 죽음은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헌데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천국에 들어갔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 말씀대로이다. 모든 사람은 한 번은 다 죽는다. 헌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1)죽음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그러면 남은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다 안다고 한다. 헌데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그래서 죽음을 내다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죽을 줄 알면 사람은 달라진다. 죽을 줄 알면 욕심이 달라진다.

죽는 마당에 미워할 것이 뭔가 있나?

죽을 사람이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죽음의 눈이 열리면 애착도, 가치관도 달라진다. 소중한 것이 달라진다.

(2)또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가 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면 지금 다르게 살 수 있다. 기독교의 바른 신앙관은 내세가 있기에 현세를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육신을 갖고 하는 일들은, 천국가면 다시 못할 일들이다. 주님도 말씀하셨다. 천국에 가면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가?

맛있는 음식!!! 음식을 하나 먹는 것도 열심히 먹어야 한다.

운동을 하는 것, 산책을 하는 것, 가을을 누리는 것 천국가면 하지 못할 일이다. 천국에서는 하지 못할 일이니 마음대로 죄짓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천국가면 공부 안한다. 이 땅에서만 하는 것이다. 오 이 공부! 감사하며 해 보자. 천국에서는 다시 아픈 일이 없다.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면 인내해 보자. 아픔 중에도 주님께 영광을 돌려 보자.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너무나 귀한 일이다.

기도!!! 찬양!!!

저는 천국에서는 다시 할 수 없는 것이 설교이기에 열심히 즐겁게 해야 한다. 주님 앞에 가서 설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로 가족이 된 것,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 아내와 손을 잡고, 입 맞추는 것 / 얼마나 황홀한가? 천국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 그러니 이 땅을 사는 동안 열심히 살아야 한다. 즐겁게 살아야 한다.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3.셋째로 부자의 탄식을 들어야 한다.

부자가 뭐라고 소리치는가? 이 부자의 탄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

(1)24절이다. “불러 이르되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지옥은 고통과 괴로움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다. 지옥은 어떤 자비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물 한 방울의 자비도 없다. (예화)어떤 사람은 심지어 목사 가운데서도,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어 놓을 리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은 이 땅에서 흘러 넘치는 것이다. 끝까지 예수를 거절하고 믿지 않는 자는 결국 은혜의 문이 닫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상 받을 자에게 상을 주시고, 벌 받을 자에게 벌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래서 지금 믿어야 한다.

 

(2)두번째 부자의 탄식을 들어보라. 28절이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말라”고 부르짖고 있다. “제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마세요.”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가? 우리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걱정한다. ‘죽은 사람만 불쌍해!!!’

헌데 그렇지 않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걱정한다. 생각해 보라. 예수를 믿지 않고 떠난 여러분의 가족들이 지옥에서 걱정할 것이다. 제발 이 고통 받는 곳으로 오지 마라!!!

또 천국에 간 가족들은 말할 것이다. 예수님을 바로 믿어라. 예수를 믿고 너희들도 이곳으로 꼭 오너라. 너무 좋아! 제발 예수를 믿고 천국으로 오너라! 이렇게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3)셋째로 “교회의 말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부자는 부탁을 합니다. 자기에게 다섯 형제가 아직 살아 있는데, 그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이 곳에 제발 오지 말라고 전해달라는 것이다. 헌데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들을지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고 저들이 믿을 것 같으냐?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절대로 안듣는다.

그럼 오늘 날 모세와 선지자의 소리는 뭐예요? 교회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를 들으라는 것이다. 교인들이 전해주는 복음을 들으라는 것이다. 오늘 오신 분들을 초청하신 분들은 이 심정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과 판단과 짧은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면 안 되겠는가?

 

결론

1.인생은 네 박자이다.

첫 번째와 네 번째처럼 이 땅에서 유명하든지 무명으로 살든지 더 중요한 것은 내세에 유명해 지는 것이다.

➀유명 - 유명 ➁무명 - 무명 ➂유명 - 무명 ➃무명 - 유명

 

2.또한 모든 인생은 한 번은 다 죽는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땅에서 예수를 영접하라. 예수가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그 예수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라.

 

3.예수를 믿고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의 삶을 절대로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기독교는 절대로 현실을 외면하는 종교가 아니다. 천국에 갈 사람들이기에 더 열심히 더 감사하게 더 즐겁게 살아야 한다.

 

4.지옥에서 울부짖는 부자의 소리를 들어라.

이 고통받는 곳에 절대로 오지 마세요.

교회의 소리를 들으세요. 예수를 믿으세요. 목사의 설교를 잘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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