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줄 아시면서 왜 다르게 살라고 하시나? | 이병수목사 | 2013-11-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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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4일 주일 낮 2부 예배 설교 성경:마태복음 5:38-48 제목:힘든 줄 아시면서 왜 다르게 살라고 하시나? 오늘 본문은 두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38-42절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3-48절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제목만 들어도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이렇게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 와! 어렵다? 정말 힘들다?는 반응일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악한 자를 대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원수는 미워할 대상이지 어떻게 사랑을 합니까? 헌데 주님은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모르실까요? 아시면서도 왜 이렇게 살라고 하실까요? 1.원래 구약의 율법은 어떻습니까? 38절과 43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또 43절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것이 사람의 본성 아닙니까? 나와 친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1)헌데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보복하라!’는 말씀은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어떻게 자비의 하나님이 이런 율법을 명령하실 수 있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자비를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복수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차원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예화)생각해 보세요. 내 사랑하는 자녀를 못된 아이들이 때려서 이빨을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화가 납니다. 평정심을 잃어 버린 상태에서 복수를 하면 당한만큼만 공평하게 돌려줄까요? 아니요?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받은 것보다 몇 곱절로 더 복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나친 복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렇게 법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복수의 감정은 당한 것의 수십 수 백 배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은 눈, 이는 이로만 갚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율법은 절대로 사적으로 복수하는 법이 아닙니다. 눈을 당했으니 내가 갚는다고 사적으로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법정에서 재판관의 판결을 받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복수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법은 실제로는 한번도 실행된 적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합의해서 물질로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눈이 하나 상했다고 그 사람의 눈을 하나 뽑아 버리는 식으로 복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상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2)43절의 율법도 그렇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이 법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교묘하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각색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원수를 갚지 말며 네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헌데 종교지도자들은 교묘하게, 자기 편리한대로, 사람들이 듣기 좋게 말씀을 편집 한 것입니다. 이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네 몸과 같이’를 빼 버렸습니다. 사랑을 막연하게 만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잔인하신 분이 아닙니다. 복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2.그러면 예수님이 주시는 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새로운 법은 39절과 4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39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➀악한 자가 누구일까요? 우리는 악한 자라고 하면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흉악한 사람들만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서 악한 자란 ‘내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살다보면 내 친구가 원수일 때가 있습니다. 내 남편이나 아내가, 자식들이, 형제들이 원수일 때가 있습니다. (예)동업하던 친구 / 친목계를 하던 친구가 돈을 갖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 친구들이 내게 악한 자입니다. / 부모의 재산을 갖고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이 돈을 더 갖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형제가 있다면 그 형제가 악한 자입니다. / 늙으신 부모를 버린 자식, 마땅히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마저 내 팽겨쳐 버린 부모들,,, 이 자식과 부모가 악한 자입니다.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악한 자입니다. 주님은 그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적하지 말라는 것은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를 드셨습니다. (예❶)“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맞춰 보실래요? ‘내가 오른쪽 뺨을 맞았다면 상대방은 어떤 손으로 때린 것일까요?’ 예!! 왼손으로 때렸다는 말이죠? / 또 한 경우는 오른손 손등으로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두 사람씩 실습을 해 볼까요? 하하 이 두 경우는 상대방을 가장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오른 뺨을 맞았다는 말은 모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살다가 모욕을 받았느냐? 남들이 널 무시하더냐? 깔 보더냐? 그래서 원수를 갚아야 겠느냐? 참으면 안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❷)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겉옷도 주라는 말씀입니다. 손해 볼 일이 생기면 손해를 보라는 것입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겉옷은 한 벌이었습니다. 밤에는 이불로 대신 사용하는 것입니다. 헌데 가난한 사람도 속옷은 두 벌 정도 있었습니다. 헌데 속옷은 값비싼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누가 속옷 정도의 피해를 입혔다면, 용서해 주면 안되겠니?라는 것입니다. (예❸)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너희들은 그 사람과 십리를 가 주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법에는 로마 시민에게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지배를 당하는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무거운 짐을 나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무리한 심부름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로미시민으로 유대인들에게 강요 할 수 있는 법적인 거리가 오리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오리 인생’이 되지 말고, ‘십리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누가 오리를 가라고 요구하면, 억지로 마지 못해서 억울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기쁘게, 즐거이 오리를 더 가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오리인생이 되지 마세요. 직장생활을 할 때도 오리를 가는 것처럼 하지 마세요. 할 수 없이... 하루 하루 버티듯이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는 믿음으로 섬기세요. 자원하여 신바람나게 일을 하세요. 십리 인생이 되세요.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십리인생이 되세요. 즐거운 마음으로 섬겨 주세요.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헌금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음 주일에 헌신을 결단할 텐데, 즐거이 헌신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리인생처럼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자원하여, 감사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마음으로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길이 뭔지 아세요? 십리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2)다음 주님의 법은 44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이 쉽지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며,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❶우리가 하지도 못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할 수 있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❷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주님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❸저에게도 원수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내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가 되기는커녕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화가 났습니다.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갈등을 했습니다. 헌데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힘들었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주님의 기대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싶은데... 안되는 날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는 순간 기도하게 되더라구요? 용서하게 되더라구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서 기도하게 되더라구요. 3.결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르게 살아야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주님은 힘들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다르게 살라고 요구하십니까? (1)첫째로 우리는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45절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세상의 아들이라면 세상이 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허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같이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는 말씀은 “너희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리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호랑이는 호랑이처럼 만드셨습니다. 토끼는 토끼처럼 만드셨습니다. 개는 개처럼 만드셨습니다. 헌데 사람만은 누구처럼 만드셨습니까? 예! 하나님처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땅에서는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우리 생각에 북한 김정은이 있는 곳에는 해를 비춰주지 마시지, 왜 그곳에도 따뜻한 햇살을 비추어 주시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는 곳에만 따뜻한 햇살을 비추어 주시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텐데 왜 그렇게 안하시나? / 그리스도인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벼락을 내리시고, 폭우를 주시지... 왜 그들에게는 단비를 주시나? 우리는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헌데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➀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지옥가길 원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바라시며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➁그러면 이 땅에서 신자된 특권은 전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특별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일반은총은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다 받습니다. 일반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시는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 끼 밥을 먹고, 별 탈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일반은총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연법칙 속에서 무수한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 예수 믿으면 건강해 진다’고 합니다. 허나 부나 건강은 일반은총입니다. 무리하면 피곤하고, 밥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신자나 불신자나 병들고, 신자 중에도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 중에도 부자로 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연법칙 안에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똑같습니다. 이것이 일반은총입니다. 허나 신자만 받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은총입니다. - 특별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입니다. 날마다 생각하세요. 내가 예수를 믿어서 좋은 게 뭔가? 예수를 믿어서 받은 복이 무엇인가? 특히 주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를 점검하세요. 동행의 복 / 평안의 복 / 자족의 복 / 소망의 복 46-46절을 마지막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주님은 힘든 줄 아시면서도 다르게 살라고 하십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2)둘째로 주님이 따라 오라는 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쉽지 않습니다. ❶그 때 주님이 어떤 길을 가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도 뺨을 맞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온갖 모욕과 수치와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헌데 주님은 그들을 위해서 ‘아버지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하시지 않았습니까? 고통 속에서 숨이 멎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한 편 강도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❷주님 말씀에 순종하기기 쉽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순종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기 전에 베드로에 마지막으로 묻지 않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십자가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지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자원하여 지고 가면 좋지만, 안되면 억지로라도 지고 가면 되지요. 로마 법에 따라 유월절에 리비아에서 예루살렘에 온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오리 법이지요. 헌데 성경은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의 집안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됩니다. 후에 마가는 구레네 시몬을 소개할 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해요. 무슨 뜻이예요. 초대교회 지도자로 알렉산더와 루포가 유명해 진거예요. 그래서 루포의 아버지가 예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갔지!!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루포의 어머니도 훌륭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할 만큼 영광된 자가 되었습니다. 헌데 일가족이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된 것은 아버지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지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힘드시더라도 주님이 말씀하시니 순종해야 합니다. 헌데 너무 힘드시면 억지로라도 순종해 보시면 안되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한 우리가 불행하기에 주님이 이렇게 명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뻔하게 살지 마십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는 주님을 따라가는 자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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