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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병수목사 20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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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6:9

제목:주기도(1)-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 셋(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부터 모세와 엘리야가 왔습니다.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너무나 황홀하고 좋아서 ‘우리가 이곳에서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산 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산 위에서는 그야 말로 영광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헌데 산 아래에는 귀신들려 고생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아이를 붙잡고 고치려고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고치지 못했습니다. 때 마침 산위에 올라가셨던 예수님이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는 예수님께 호소합니다.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땅 아래에서의 상황은 변화산 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세계입니다. 땅 아래에는 하늘의 영광이 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귀신을 향하여 명령해도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뒤 산 아래로 내려 오신 예수님은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되시는데 왜 우리는 안될까? 조용할 때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 땅의 문제와 하늘의 능력이 만나게 하는 길이 뭐예요? 기도예요. 기도는 땅의 문제와 하늘의 능력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헌데 우리는 땅의 문제를 땅의 방법으로만 풀려고 해요. 땅만 바라보고 삽니다. 땅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하늘의 능력을 맛보는 길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1)산 아래에서 사실 때 - 매일 새벽에도 기도하시고, 하루 일을 마치시며 저녁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산 아래에 사셨지만, 늘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셨습니다. 주님은 땅에서 살지만, 하늘과 늘 연결된 삶을 사셨습니다. 땅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능력으로 사셨습니다. 땅에서 하늘과 연결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2)또 구원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계신 주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로마서 8장 34절에서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왜 주님은 하늘에서도 기도하십니까? 하늘에서 땅과 연결되기 위함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땅에서 하늘과, 하늘에서 땅과 기도로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생전에 강조하시는 것 가운데 하나는 기도입니다. 왜요? 기도만이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이 땅의 문제를 푸는 길은 하늘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하늘의 능력이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길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기도’라고 합니다. 주기도는 주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귀합니다.

1.먼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제일 중요한 말씀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기도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잘못 구하느니 기도하지 않는 게 낫다! 예! 맞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본심은 우리들이 기도에 대해서 염려하고, 잘못 구하는 것은 아닐까? / 이루어질까? 하는 의심을 갖고 기도하지 않지는 않을까? / 마귀의 유혹을 받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는 않을까? 싶어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이요 능력이요 복입니다. 헌데 그 특권과 복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하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에 대해서 성도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기도의 사람 E. M 바운즈의 <기도의 불병거>라는 책의 소제목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목만 들어도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찔림을 갖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 지도자가 되시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장로가 되려면 기도하는 자가 되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항존 직분자 보다, 기도하는 주일학교 학생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 낫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사명자다.’ 앞으로 각 부장되시는 분들과 교회 발전위원회로 모입니다. 모여서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심도있게 협의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헌데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발언을 하려면 기도하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기도하시고, 내 의견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듯,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생활은 직업처럼 해야 합니다. 직장은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 것이 아니지요. 반드시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기도도 직장처럼 반드시 해야 합니다.

덧붙여 봉사도 그렇습니다. 교사든, 예배위원이든, 어떤 봉사를 하시든지 직장생활하는 것처럼 하셔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다고 직장생활을 안합니까? 내가 사정 있다고 직장을 빠집니까? 직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시듯이, 주님께 하는 봉사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뜨거운 기도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큰 뜻을 좌절시키는 것은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도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등록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직책을 갖은 사람들도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등록한 사람들이 기도를 배우지 못한다.’

‘기도 없이 일을 추진하면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나, 나중에는 실패로 끝난다.’

‘모든 것은 우리 기도에 달려 있다.’

도전을 받으십니까? 자극이 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하라”

2.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가장 먼저 하나님을 부르라!는 것입니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차례대로 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먼저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멀리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①땅의 아버지들, 육신의 아버지들과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고 하면 반감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 물론 아버지!하면 육신의 아버지가 오버랩 되면서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땅의 아버지와는 차원이 다르십니다.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②둘째로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절대적인 권능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습니다. 허나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시면서, 절대적인 권능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③또한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편재하신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편재하시다는 말은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할 곳은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디에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켜 보고 계심을 믿기에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2)“우리”

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너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위대함입니다.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신자들만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받길 바라시고, 예수를 믿기 바라십니다.

(예1)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믿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타락이 뭐예요? 오직 나와 내 가정, 내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경계가 너무 좁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만을 위해서 기도하면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입니다. 허나 믿음으로 나라는 이기적인 지평을 넘어서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많은 사람들을 기도로 품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3)아버지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칭은 많습니다. 헌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 능력이신 하나님! 존귀영광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 등등 하나님을 부를 이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①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헌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시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실 때 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하실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거두소서”예수님은 늘 “하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허나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우리는 사탄에게 종노릇하던 멸망의 자녀였습니다. 헌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나아갈 수 없는 범죄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실 수 있도록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아세요? 예수님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은 자리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죽으시는 십자가 위에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무슨 말입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바로 이 때는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으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이 진노의 자녀 자리에서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시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려고 ,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진노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 위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말씀하셨습니다. 땅 위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신 위대한 가르침은 ‘이제부터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너희의 아버지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노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참히 찢겨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들이 짊어져야 하는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성탄하셨구나! /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구나! / 내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때,,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이시구나!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감동이 되는 말씀은 탕자 이야기입니다. 탕자 이야기에 나타난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주님 앞에 나오기가 부끄럽습니까? 탕자처럼 잘못을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달려와 입을 맞춰 주십니다.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아버지여!‘라고 부를 때마다 이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②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 딸이다.’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답게! 하나님의 딸 답게! 살리라!’결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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