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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판보다 먼저 할 일 | 이병수목사 | 2014-0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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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마태복음 7:1-5 제목:비판하기 보다 먼저 할 일 산상설교 내용의 구조를 잠시 생각해 보자. 제일 먼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 있는 사람은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신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마음에 누구를 모시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왜요? 그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서 주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가장 복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그러면 복 있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것이다. 착한 행실로 선을 베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을 하는 사람은 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는데요? 오늘 본문에서는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비판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1)옳고 그름을 가려 평가하고 공정하게 판정한다. 2)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부정적으로 말한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비판은 비난을 말한다. 부정적인 뜻이다. 신약성서학자인 윌리암 바클레이는 오늘 본문을 주석하면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이유? ①첫째 우리는 그 사건 전체나 그 사람 전체를 절대로 모른다. 맞지요.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다 알수 없다. 우리의 지식은 한계가 있다. 유명한 랍비 힐렐은 “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될 때까지는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고 했다. (예화)미안한 적이 많다. 잘 알지 못하면서 판단한 적이 많다. 선입견을 갖고 대한 적도 많다. ②둘째 아무도 판단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공평할 수는 없다. 사람은 치우치게 되어 있다. 감정에 치우친다. 관계에 치우친다. 편견을 갖게 된다. ③셋째 아무도 남을 판단할 만큼 선하지가 않다.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절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제 눈에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고 한다. 비판이 좋은 거면 주님께서 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허나 비판도 염려와 같이 백해무익하다. 그러므로 비판보다 우리들이 먼저 할 일이 있다. 1.비판하기 보다 먼저 덮어주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내가 사람을 비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판하여 화를 자초하기 보다, 덮어 주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것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남들의 실수를 들춰 내는 것입니다. 연약함이나 실수에 대해서는 허물을 덮어 주셔야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영적 분별력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분별할 것은 분별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들춰내기 보다 덮어 주라는 것입니다. (예화1)노아의 아들들 - 땅에 정착한 노아 / 포도농사를 지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다. 노아는 포도주를 먹고 술에 취해서 잠에 들었다. 술에 취해 자다보니 더워 잠을 자다보니 하체가 다 드러났다. 이것을 둘째 아들 함이 보았다. 함은 밖으로 나가서 아버지 흉을 보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겉옷을 어깨에 두르고 뒷 걸음을 쳐 들어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고 덮어 드렸습니다. 술이 깬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자녀들을 예언하게 되는데, 함은 저주를 받습니다. 함이 저주를 받은 것은 아버지 개인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예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의 실수에 대해서 흉을 보고 비판한 것이 자신에게나남에게나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드러내서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판의 나쁜 점입니다. (적용)함의 길을 가지 마세요. 셈의 길을 가세요. 덮어주는 인생이 되세요. 기도해 주는 인생이 되세요. (예화2)초등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돈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반 전체 학생을 책상 위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가져간 학생이 나타날 때까지 벌을 주었습니다. 모두 눈을 감게 하고 가져간 학생만 손을 들도록 했습니다. 헌데 한 학생이 너무 긴장을 해서 오줌을 싼 것입니다. 마침 선생님이 그것을 보고 양동이를 갖다가 물을 확 끼어 얹으면서 “벌을 받으라 했더니 졸면 어떡해?”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덮어 주는 것입니다. 2.비판하기 보다 먼저 이해하라. 비판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해해 보려고 해 보세요. 사랑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해란? Under + Stand입니다. 남의 밑에 서 보는 것입니다. 이해 할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 알아야 한다. (예화1)아사다 마오를 참 미워했던 것 같다. 넘어지면 그렇게 고소해 했다. 우리 편이 이길 수 있어서 좋아했다. 그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한 번 들어보라. 어떤 마음이 드는지...
아버지는 쇼호스트바 운영, 엄마는 화류계 출신이었다. 딸 때문에 호스트바를 접었다. 어머니는 간암, 간이식이 필요했다. 헌데 유전형질이 맞아야 했다. 아사다 마오의 것이 정확히 맞았다. 헌데 엄마가 거부했다. 운동선수가 간이식을 하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딸의 간이식을 받지 않았다. 다른 이식자를 찾았지만 없었다. 결국 엄마가 2011년 죽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나? 이번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엄마의 무덤에 가서 엄마에게 꼭 금메달을 선물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인터뷰 중에도 아사다 마오는 메달을 따서 엄마 앞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헌데 큰 경기때마다 넘어진다. 징크스가 있었다. 이번에도 순위에 들지 못했다. 아사다 마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어떤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랬구나! 측은한 마음도 든다. 미운 마음보다는 이해하는 마음이 더 든다. 알고 나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관심이고,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다. (예화2)사랑은 자기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그 때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다니엘이고, 또 한 사람은 에스겔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궁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편안한 여건 속에서 살았습니다. 반면에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끌려온 이스라엘 포로들과 함께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전혀 상반된 상황속에 있었습니다. 에스겔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다니엘을 비방할 수 있었습니다. “네가 정말 민족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우리 민족을 포로로 잡아 온 바벨론의 왕궁에서 녹을 먹으며 살 수 있느냐?” 다니엘 역시 에스겔을 비난할 수 있었습니다. “너처럼 해서는 조국의 독립을 가져올 수 없다.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는 어림도 없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를 비방하고 비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과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상대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 사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각각 다른 자리에 세우심으로써 당신의 선한 역사를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왕궁에서 끊임없이 왕들에게 선한 영?을 미친 결과, 마침내 고레스 왕 때 이스라엘 포로들이 해방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왕궁에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일에 기여한 것입니다. 서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서로를 비난할 것이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몰라요? 그러므로 비판하기 보다 이해하려고 하십시오. 서로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3.비판하기 보다 먼저 회개하라 비판이 왜 나쁜 것입니까? 어느 사람도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을 보세요.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비판이 왜 나쁜 것입니까? 내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헌데 이 잣대는 아주 주관적입니다. 들쑥 날쑥합니다. 보세요. 내 아이가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하고, 남의 아이가 음악을 하겠다고 하면 허영이라고 합니다. / 내가 승진을 하면 내 노력, 내 실력이라고 하고, 남이 승진을 하면 줄을 잘 서서라고 합니다. / 내가 여행을 하면 견물을 넓히는 것이라고 하고, 남이 여행을 하면 면세점 쇼핑한다고 합니다. /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식입니다. (예화)택시를 종종 타고 가다보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택시 앞으로 끼어들기를 하는 차가 있으면 욕을 퍼붓습니다. 입에 담기 힘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자기도 끼어들기를 합니다. 그리고 양보를 안해 주면 또 비난을 합니다. 보세요. 이것이 무슨 잣대입니까?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온갖 비난을 퍼붓는 것은 악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단 한번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판하지 말라고 해서 영적 분별력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진리를 분별해야 합니다. 사실도 분별해야 합니다. 허나 우리는 사실을 다 알 수 없기에, 누군가를 비판할 만큼 내가 거룩하지 않기에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둘러싼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들을 향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뭐입니까? “너희 중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무슨 말입니까? 왜 네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티만을 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17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은 뭐하고 계시나? 로마서 8장 34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니라” 주님은 비판하려고 하시지 않는다. 주님도 우리를 비판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 비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비판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아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비판하는 이유는 고소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으니까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비판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실패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들의 실패, 아픔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화)부부간에도... 가족 간에도... 비판하는 것은 정말 나쁜 것이다. 왜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비판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있지. 얼마나 힘드니까 그랬겠나! 이해하게 됩니다.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예수 믿는 표가 무엇일까요? 내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판의 열매를 맺지 마시고, 격려와 위로의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한 번 자신을 돌아 보세요. 내가 있음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 나는가? 절망을 딛고 비극을 이기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가? 무슨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게로 달려와 기도를 부탁하는가? 누군가에게 나는 힘이 되는 사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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