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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사의 입인가? 닛시의 손인가? 이병수목사 201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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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7일 주일 낮 예배설교(추석주간)

성경:출애굽기 17:1-16

제목:맛사의 입인가? 닛시의 손인가?

왜 하나님은 구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바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하나님은 광야 르비딤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8장 2-3절에서 그 이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5절에서도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들을 단번에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광야와 같은 이 땅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입니다. 사람의 본심은 어려움을 만날 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우리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고 싶어하십니다. ②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③셋째는 우리를 낮추셔서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이것이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광야 르비딤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장막을 쳤으나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공격해 왔습니다. 안 밖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적용)우리 성도들도 살아가다보면 르비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을 만납니다. 이와 같을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첫째는 르비딤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첫째는 므리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므리바란 다투다는 뜻입니다.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를 원망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왜요?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르비딤으로 가게 하신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요. 그래도 므리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 사람이란 존재가요? 풍성하고 만족스러울 때는 감사하고 기뻐하지 않아요? 마치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된 것인양 감사하기 보다는 자랑하를 합니다. 헌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로 다툽니다.

(예화)톨스토이가 어렸을 때, 그의 집에는 매우 좋은 도자기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 도자기들을 아끼며 소중히 여겼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그 도자기들 중에서도 가장 예쁜 것을 달라고 아버지에게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을 선뜻 딸에게 내어 줄 리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또다시 아버지에게 그 도자기를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주루주룩 흘리는 것이었다.

 

이쯤되자 아버지는,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니 가지렴." 여동생은 그 도자기를 손에 꼭 움켜쥐었다. 오빠에게 보여주고 자랑도 하며 또 약을 올려주려고 오빠 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방을 향해서 뛰던 여동생은 그만 문턱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그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났다.

여동생은 깨져 조각난 도자기를 바라보면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우리집을 지은 사람이 누구예요?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지어서 저를 넘어지게 했단 말이예요?" 제 잘못, 제 실수는 탓하지 않고, 그렇게 좋은 집을 지은 건축자를 탓하고 원망하는 이 여동생을 기억하며 후일에 톨스토이는 <집 지은 사람의 잘못일까?> 라는 글을 썼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요?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족들에게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적용)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을 므리바가 되지 않게 하세요. 절대로 불평하고, 원망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2)둘째로 르비딤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맛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맛사란 ‘하나님을 시험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면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마실 물이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맞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왜 마실 물이 없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생겨?

이들의 문제가 뭐예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나? 하시지 않나?를 뭘로 판단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나?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가?“를 뭘로 판단하고 있는 거예요? 환경이예요.

순탄하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나봐? 하나님은 살아계셔? 어려움이 생기고, 힘들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사랑부터 의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원망하는 것이 맛사입니다.

기억하세요 -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래도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될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대로라면 성경대로 살았는데... 순종해서 왔는데,,, 믿고 왔는데,,, 왜 물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물이 없어도 조금 인내해야 합니다. 당장 어렵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 하나님이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나? 무슨 뜻이 계신가?를 물어야 합니다.

-나를 낮추시려는 계획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떡에만 매여 살지는 않았나?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은 없나? 깨달아야 합니다.

-마침내 복을 주려 함이라는 말씀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마침내’를 봐야 합니다. 광야는 과정입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사실 광야 길은 다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출애굽 했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만나를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하나님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헌데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르비딤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므리바의 입이 되면 안됩니다. 맛사의 입이 되시면 안됩니다.

 

2.그러면 르비딤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임마누엘을 믿으라.

마실 물이 없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고, 서로 다투며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5-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반석 앞에 서게 했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로 그 반석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 반석에서 물이 세차게 흘러 나왔습니다.

훗 날에 바울은 그 반석을 그리스도로 해석했습니다. 당신의 몸을 깨뜨려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반석을 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는 것입니다.

반석이신 예수님이 갖고 오신 이름이 뭐예요?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마실 물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물이 터진 그 반석은 그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아주 잘 설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화)병원심방이나 장례식에서 위로의 말씀으로 많이 선포되는 말씀이 시편 23편입니다. 시편 23편은 서로 아주 다른 두 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상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주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때로는 아름답고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행복하고 기쁜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원수들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분위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대비가 됩니다.

헌데 하나님을 말할 때 사용하는 인칭대명사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상황에서는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하나님을 3인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인칭은 거리감이 있는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 너무나 순탄할 때, 좋은 일들이 생길 때는 하나님이 좀 멀어 보입니다. 잘 생각이 안납니다. 헌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원수의 목전에서 큰 위기를 만날 때는 하나님이 3인칭이 아니라, 2인칭으로 바뀌면서, 하나님이 내 곁에 가까이 와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에 주라는 말은 NIV성경에 보면 당신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당신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십니다. 당신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십니다.

우리들이 정말 비극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속에 처하든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힘들 때, 더 고통스러울 때, 더 아플 때 주님은 더 내 곁에 가까이 와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임마누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반석에서 물을 터뜨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심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2)둘째로 르비담에서 해야 할 일은 닛시의 손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르비딤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적용)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므리바, 맛사로 사셨다 해도 이제는, 그곳 르비딤을 닛시로 바꾸어야 합니다. 결국은 닛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르비딤을 므리바나 맛사가 아니라, 닛시가 되게 하는 능력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손입니다.

르비딤에서 또 하나의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의 혼란을 틈타 아말렉이 공격해 왔습니다. 아말렉은 호전적인 부족이요. 후미에서 약한 자들을 공격해서 사기를 떨어뜨리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아말렉을 상대하기 위한 모세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9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들이 깨닫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⓵먼저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전력을 다해서 싸우라고 합니다.

⓶그리고 모세는 산 위로 올라가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 싸움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11절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우리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③싸움의 승패는 여호수아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잘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모세에게 달려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싸움의 승패는 기도의 손입니다.

헌데 우리들은 착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실력이 좋아서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수아와 모세가 따로지만 오늘 날 현실 속에서는 여호수아와 모세의 삶을 동시에 내가 사는 것입니다. 먼저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뭘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물론 기도만 하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노력 플러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어려움이 생기시더라도 므리바, 맛사의 입이 되지 마세요.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기도의 손을 드세요. 손이 피곤하여 내려오지 않도록 합심하여 기도하세요. 창립 주일 맞이 특새에 오셔서 기도하세요. 기도의 손을 들면 이길 것입니다. 기도하시면 르비딤이 맛사가 아니라, 닛시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므리바로 사셨습니까? 맛사로 사셨습니까? 조금만 힘들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로 다투고, 하나님도 부정하시며 사셨습니까? 이제는 잠잠히 기도의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게 항복하세요. 추석을 맞아 성도들에게 멀티문제를 보내면서 제목을 행복하소서라고 했어야 하는데, 항복하소서라고 보냈습니다. 헌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행복하려면 주님 앞에 항복해야 합니다. 항복의 뜻으로 기도의 손을 들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르비딤과 같은 삶의 자리에서 절대로 므리바, 맛사하지 마십시오. 르비딤에서도 닛시의 은혜를 경험하려면 임마누엘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조금 어렵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아울러 기도의 손을 드십시오. 기도 없이 하지 마십시오. 기도의 손을 들 때 닛시의 은혜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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