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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분석(6)-어떻게 주를 따를 것인가?를 보여준 도마 | 이병수목사 | 2014-09-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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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요한복음 11:15-16 / 20:24-28 제목:제자분석(6)-어떻게 주를 따를 것인가?를 보여준 도마 오늘은 여섯 번째 제자 도마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도마는 히브리어, 디두모는 헬라어입니다. 뜻은 똑같이 쌍둥이입니다. 요한복음에 도마에 대한 기록이 세 곳에 있다. 요한복음 11장, 14장, 20장입니다. 오늘은 두 곳만을 보겠습니다. 1.첫째로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도마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주님을 만류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대답하시길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다. 우리가 살리러 가자. 유대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 도마가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16절입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무슨 말이예요? 주님 홀로 가시게 할 수 있느냐? 우리도 함께 가자. 죽으면 죽자!고 한 것입니다. 헌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과 두 주 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도마도 함께 죽었습니까? 죽기는 커녕 도망쳤습니다.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싶었습니다. 헌데 입은 주를 부인하고 있었고, 발은 이미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 뒤 주님을 배신한 도마는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쳤던 자신이 줄행랑을 친 모습에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 실패한 모습 앞에서 도마는 깊은 근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적용)혹 우리 가운데도 자신에게 실망해 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더 잘 믿어보고 싶은데, 형편없는 자신의 믿음 때문에 괴로워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 말씀대로 살고 싶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맘대로 잘 안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 처음 믿었을 때에 감격은 다 사라지고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삶 속에서 성도답게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음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실망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저는 근심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근심하지도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 가운데 하는 성도들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근심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근심이 있습니다. 거룩한 근심은 하셔야 합니다. 주를 위한 근심, 교회를 위한 근심, 순종을 위한 근심, 죄를 위한 근심은 하셔야 합니다. 근심하는 것이 복입니다. (예화)우리가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잘못을 합니다. 그러면 나중이라도 근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왜 믿음 없는 말을 했을까?’ “내가 왜 그 때 거짓말을 했을까?” 후회가 되고 근심이 되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명자인데, 직분자인데, 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까? 근심이 되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을 살면서 성도들의 생각이 교회로 향해 있는 분들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자녀들 걱정, 세상 일에 대한 염려, 자기 자신의 즐거움에 마음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근심이 되십니까? 근심이 되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야 변화가 될 것 아닙니까? 잘못을 하고도 전혀 근심하지 않는다면 변화가 없습니다.
도마는 근심 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절망 중에, 실패 중에,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어떤 모습이든지 주님께로 나가는 한 주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근심 중에 진정으로 회개를 하십시오. 그리고 만나셔야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 도마는 결국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이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이 고백했던 대로 주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는 말대로 도마는 주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들도 실망을 딛고 일어나 주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다음 주일이면 우리 미래교회가 창립 7주년을 맞이합니다. 창립 7주년을 맞이하면서 성령께서 저에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이 목사!! 창립 7주년을 맞이하는 미래교회에는 너와 함께 나를 위해서 죽을 자가 몇이나 되는가? 목사인 네가 죽으러 갑시다하면 죽는 줄 알면서, 힘든 것을 알면서 불속에라도 뛰어들 사람이 있는가? 목사인 네가 죽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대신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내가 대신 짐을 지겠습니다 할 자가 몇이나 되는가?” 저는 당장 대답을 못했습니다.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올 때 아론과 훌처럼 오른편과 왼편에 서서 기도의 손을 잡아줄 동지가 있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다 안됩니다. 못합니다할 때에 주님의 뜻이면 주님이 기뻐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성도가 있는가? 지난 한 주간 동안 창립 주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로마서 16장을 보았습니다. 로마서 16장은 바울과 평생 함께 하며 동역한 하늘에 은하수와 같은 동역자들의 이름 37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추억할 때는 ‘저들은 나를 위해서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줄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인간 바울을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 놓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은 바울이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을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바울을 위해서 주님에게 하듯이 목이라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실패자요 지금은 부족하다고 해도 근심하십시오. 이러고도 내가 목사인가? 이러고도 내가 믿는 자인가? 우리 교회에는 예수를 믿는 신자는 있는데, 미래교회를 사랑하는 교인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신자를 넘어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군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주를 위해서 죽으러 가는 길을 가지 못해도 결국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죽으러 갈 수 있는 종들이 되길 바랍니다. 2.또 도마에 대한 야기는 요한복음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헌데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제자가 도마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그러자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우리들이 깨닫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1)첫째는 도마가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고난의 흔적이었습니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고난 받으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받으신 희생의 흔적, 상처의 흔적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적용)우리들이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날 사랑하시는 증거! 예수를 믿어 성령께 받은 선물들을 구하고 있습니까? 죄사함 받은 기쁨! 구원받은 확신! 영생을 갖은 자의 여유!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 세상이 줄 수도 뺏길 수도 없는 평안과 기쁨!!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마음!을 구하십시오.
(2)둘째는 주님이 도마에게 보여주신 흔적은 무엇입니까? 구한대로 고난의 흔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의 흔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27절을 보겠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3)그러면 우리들이 세상 앞에 무슨 흔적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흔적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보여줘야 할 흔적은 무엇입니까? (예화)이어령 교수의 고백 - 자신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당신이 고난 받으신 흔적을 보여주신 것처럼 누구든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당하셨던 고난의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보여 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십시오. 나는 그 교회 교인이 되기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헌데 이 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뭐예요? 자신의 딸 때문입니다. 딸 이민아 목사는 자폐아를 앓는 아들,,, 20살에 건강했던 아들을 한 순간에 잃는 고통, 이혼의 아픔, 망막손상으로 인해서 실명의 위기,,, 심지어는 암선고를 받고 난 후에도 예수를 사랑하는 흔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고통 중에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습,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청소년들을 섬기는 모습 속에서 아버지 이어령 교수는 주님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딸이 보여준 사랑의 흔적, 주님과 함께 하는 아픔의 흔적을 보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적용)우리들은 어떤 흔적을 보여 주고 계십니까? ⓐ교회에서 - 믿음으로 사랑하는 흔적이 있습니까? 희생과 봉사의 흔적들이 있습니까? 봉사하느라 쉬지 못하고, 새벽을 섬기느라 늘 피곤한 흔적이 있습니까?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까? ⓑ가정에서 - 어려운 일 생기면 근심하는 모습, 원망하는 모습만 보여주신다면 자녀들이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어려움 중에도 감사하는 흔적을 보여 주셔야지요. 큰 문제가 있지만, 기도로 해결해 가는 흔적을 보여 주셔야지요.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 예수를 믿는 흔적, 섬기는 흔적, 진실한 흔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학교에서 - 학생들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말투에서 표정에서 태도에서 예수님의 흔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보여 주셔서 주변 사람들이 의심하는 자가 되지 않고, 믿는 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 흔적, 예수를 사랑하는 흔적, 예수를 믿는 사람다운 흔적이 남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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