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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분석(9)-작지만 쓰임 받은 야고보 | 이병수목사 | 2014-1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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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가복음 15:33-41 제목:제자분석(9)-작지만 쓰임 받은 야고보 제자 분석 아홉 번째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사람이 세 사람 등장합니다. ①첫째 사람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사도 요한과 형제지간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헤롯 왕에게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한 제자입니다. ②둘째 사람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잘 알고 있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루살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무릎에 관절염이 걸릴 정도로 기도한 낙타무릎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③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오늘 본문 40절에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여자들 틈에서 예수님을 지켜 보았 던 제자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에서는 작은 야고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다는 말은? ①키가 작다. ②나이가 작다. ③영향력이 작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사도와 구별하기 위해서 작은 야고보라고 불린 것 같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작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키도 나이도 심지어는 영향력도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허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통해서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작아도 얼마든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작아도 쓰임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작아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까? 1.첫째로 작아도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화)발명왕 에디슨이 1878년에 설립한 에디슨 전기 조명 회사(Edison Electric Light Company)로 시작한 GE(General Electric Company)는 다각화된 사업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1896년 다우 존스(Dow Jones) 산업지수에 최초로 포함된 미국의 12개 우량기업 중 현재까지 118년 동안 생존하고 있는 유일한 상장 기업이기도 합니다. 현재 160여 개국에 진출해 사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GE는 연 매출액 이 156조 원에 이르고, 순수익만 18조원에 이르는 공룡기업입니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전 세계 기업 중에서 여덟 번 째로 큰 회사입니다. 이 기업의 총수 제프리 이멀트 회장의 연봉은 300억원입니다. 제프리 이멀트 회장이 최근 한국에 와서 내로라 하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이멀트 회장은 국가와 사회와 기업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열쇠는 오직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면 문제는 해결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허나 정말 그럴까요? 지금 한국 사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이 성장했습니까? 과거 50년 전보다 얼마나 잘 살게 되었습니까? 헌데 행복합니까? 50년 전 보다 더 감사하고 있습니까? 50년 전에 갖고 있었던 문제들이 다 해결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성장하면 할수록 행복지수는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장은 이루었지만, 그에 반해서 성숙은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커지는 것, 출세하는 것, 성공하는 것,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자기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에는 열심이었습니다. 성공에 목표를 두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더 사랑하고, 감사하고, 정직하고, 나누고, 절제하는 성숙한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 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더 문제는 많아 지게 되었습니다. (예화)아이들의 대화와 관심? 청주에서 어느 아파트가 가장 비싸냐? 어디 아파트에 사냐? 사는 집이 자기 집이냐? 전세냐? 월세냐? 아빠가 타는 차가 뭐냐? 아이들의 관심도 성공입니다. 성숙함이 없는 성장은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 일변도에 발 맞춰서 한국교회도 교회성장이라는 신드롬에 사로잡혀 더 커지는 것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커졌습니다. 헌데 교회성장 일변도가 교회의 성숙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많아졌는데, 정직하고, 거룩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성숙 없는 성장은 교회를 기업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건물을 짓고, 땅을 사고, 주차장을 넓히는 일은 열심히 했습니다. 헌데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일에는 열심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교회성장에 필수적인 요소가 교회건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상가 교회의 한계는 있습니다. 반듯한 교회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성장의 필수적인 요소는 성숙함입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예수가 되는 성숙함에 있습니다. 목사인 저나 우리 성도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한 우리 교회는 절대로 부흥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미래교회의 비전은 두 가지입니다. 영아 유아 유치 유년 초등 소년 청소년 청년들인 다음세대를 믿음으로 세우는 일, 그리고 장년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을 작은 예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화1)한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목사님, 저는 제 아들이 바울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은 순간 반가웠습니다. 아들을 선교사나 목회자로 드리겠다는 서원인 줄 알았습니다. 목사님은 “목회자의 길로 보내시려고요?” 그러나 권사님의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저는 제 아들이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이스라엘 최고 학부에서 공부하며 성경을 쓴 것처럼 세상에 위대?ㄴ 영향력을 주는 책을 남기는 사람이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순간 목사님은 너무나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배설물처럼 여긴 것을 금덩어리처럼 붙들고 있는 권사님의 모습 앞에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처럼 되고 싶다면... 바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간질도 있었다고 하던데... 그리고 성경은 많이 썼는지 모르겠지만, 설교는 정말 아니었다고 하던데... 오죽 했으면 설교 시간에 창가에서 졸던 사람이 떨어져 죽기까지 했었는데... 결국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는데... 그런 바울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하다가 회개했다고 합니다. 자 보세요.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성공에 목적을 두고 믿습니다. 내 자식만큼은 우리 가정만큼은 예수를 믿어서 성공하길 바랍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희생하고 고난을 받는 것은 마다하고, 성공하기만 바라는 모습이 우리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적용)우리 성도들 가운데...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은 실패자다. 나는 왜 이리 작을까? 맘도 스케일도 꿈도 하는 일도 이렇게 작을까? 열등감에 사로잡힌 분들이 있습니까? 깊히 생각하기 원합니다. 작으면 실패한 인생입니까? 작은 것은 나쁜 것입니까? 세상은 온통 성장, 성공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이, 더 높이, 더 더 더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서의 예화) 길을 오는 길에 서로 누가 크냐는 싸움이 제자들 간에 벌어졌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이른 제자들 사이에서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보여주신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남보다 더 커지려는 제자들, 성공을 인생의 목적으로 두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높고 높으신 주님께서 가장 낮은 태도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섬기셨습니다. 사랑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큰 자가 어떤 자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성공하는 것이 인생이 목적이었는데, 주님은 성숙함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작아도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길, 작더라도 열등감에 사로 잡히지 않고 잘 사는 길은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삶은 십자가를 바로 알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본문-작은 야고보는 멀리서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절규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작은 야고보는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의 목적이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삶, 희생하는 삶, 섬기는 삶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제프리 이멀트 회장은 더 성장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스스로 낮아 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섬김이셨습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내가 낮아 지는 것입니다. 내가 대야에 물을 떠다가 발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미래교회가 작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대단한 분들이 아니라 해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한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은 성장이 아니라, 성숙함입니다. 예수를 닮는 삶입니다. 정말 예수를 사랑하고 잘 믿는 것은요? 예수를 믿어서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서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작다고 열등감에 빠지지 마시고,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둘째는 작아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은 충성하면 됩니다. 작더라도 중요한 존재가 되면 됩니다. 작더라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됩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달란트 비유에서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다섯달란트를 받아서 다섯 달란트를 남기는 사람을 제일 부러워 합니다. 그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칭찬이 똑 같습니다. 정말 주님이 보시는 것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성공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삶의 태도였습니다.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착하냐? 악하냐? / 그리고 충성되냐? 게으르냐? 였습니다. (예1)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전문인 선교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전문인 선교회답게 대단한 스펙을 갖은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강남의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다가 중앙아시아의 선교지로 가는 사람, 세무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동남아시아 대학에 교수선교사로 가는 사람, 카이스트에서 원자력 공학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아시아 대학의 교수선교사로 가는 사람 등등 이력이 화려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에 등장한 한 사람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수더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눌한 입술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모두를 회개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여러분, 저도 나름대로 전문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헌데 다른 선교사님들을 보니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 고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학도 나오지 못한 소위 공돌이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전략 같은 것보다는 평생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구호 하나만 붙들고 기름땀을 흘리며 사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가 무슨 전략을 나눌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어서 그것만 나누고 들어가겠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생각하다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공산권이든, 이슬람권이든, 십자 드라이버와 멍키스패너가 안 들어가는 나라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단했습니다. ‘하나님, 십자드라이버와 멍키스패너 뒤에 십자가를 품고 어디든 들어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며 섬기겠습니다. 십자드라이버나 멍키스패너가 필요 업는 곳이면 걸레질이라도 하며 섬기겠습니다.’ 저는 잘하는 것은 없어도 부모를 닮아서 성실한 것 하나는 남들이 알아준답니다. 어디든 가서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를 하나님이 써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선교사의 짧은 메시지에 다들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올라온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박사학위와 전문의 자격증을 사용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형제를 통해서 성령님이 우리를 도전하셨습니다. ‘다 내려 놓으라. 다 내려 놓으라. 네 젊은 날의 수고와 땀이 담긴 귀한 것이라도 다 내려 놓아야 한다면 내려 놓으라. 삽을 들라면 삽을 들고, 걸레질을 하라면 걸레질을 할 준비를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더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스펙을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성실함, 정직함, 충성스러움, 겸손을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마태복음 10장 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디모데후서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을 준비함이 되리라” 작아도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작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인생의 목적을 성공에 두지 마시고, 거룩함, 성숙함에 두고 사십시오. 작아도 충성하시면 됩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했느냐? 얼마를 남겼느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직 마음과 태도를 보십니다. 충성되냐? 착하냐? 깨끗하냐?를 보십니다. 작아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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