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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분석(10)-십자가를 위해 칼을 버린 사람 시몬 이병수목사 201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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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마태복음 10:4

제목:제자분석(10)-십자가를 위해 칼을 버린 사람 시몬

오늘은 제자분석 열 번째 가나나인 시몬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시몬이라는 제자를 설명하는 단서는 오직 한 단어입니다. “가나나인”이라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 나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설명하는 단어가 “작은 야고보”라는 것과 같습니다. 시몬에 대한 설명도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가나나인”이라는 말은 각주에 보면 “아람어에서 온 말로 열심당원이란 뜻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에는 3개의 종교분파가 있었고, 2개의 정치 분파가 있었습니다. 3개의 종교분파는 ①바리새파 ②사두개파 ③엣세네파 이고,

2개의 정치 분파로는 ①헤롯당과 ②열심당입니다. 헤롯당은 헤롯왕과 그의 정권을 옹호하는 세력들이구요. 열심당은 A.D 1세기 로마에 대항해서 무력으로 유대 땅에서 로마 사람들을 몰아내고, 로마의 앞잡이를 하는 변절자들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세우는 목표를 가진 유대인들입니다. 열심당은 이 혁명을 이끄는 비밀결사대였습니다. 제자 시몬은 이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얼마나 시몬이 골수 열심당원이었으면 제자들을 소개할 때 가나나인이라고 소개하겠습니까? 헌데 열심당원인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의 사랑과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시몬은 곳곳에 나가 예수를 전하다가 리비야에서 톱에 켜져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열심당원 시몬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1.첫째로 열심당원 시몬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무장혁명세력인 시몬도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도 변화되지 않는 것은 마귀와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 뿐입니다. 우리들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표는 변화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이 거룩한 산제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한 산제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날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시몬은 원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도행전 1장 13절에 보면 시몬을 소개할 때, 셀롯인 시몬이라고 했습니다. 셀롯인이란 원어의 의미는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시몬은 평소에 품에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에서 제자 명단이 나오는데 그 때에 시몬을 셀롯인 시몬이라고 합니다. 셀롯이란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시몬은 예수를 따르면서도 여전히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칼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칼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칼로 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그가 변화된 것입니다.

(적용)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붙잡고 사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몬처럼 칼을 믿고 삽니다. 또 하나는 마태처럼 돈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칼이라는 권력, 돈이라는 재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칼과 돈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밀착관계에 있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단체든 나라든 칼의 전쟁이고, 돈의 전쟁입니다.

헌데 시몬도 마태도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변화되었습니다.

 

시몬이 변화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 있을까요?

(1)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친구 한 사람을 만나도 사람이 변합니다. 말투가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게 달라집니다. 꿈이 달라집니다.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집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내 마음 안에 모셨다면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헌데 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변화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교리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이 만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면...

①죄를 이기게 됩니다. 죄를 짓는 것이 지겨워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예화)다윗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허나 하나님을 실제로 느끼지 못할 때는 밧새바와 간음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뼈를 깍는 회개를 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실제로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절대로 성적인 죄를 짓지 않습니다. 신하들이 다윗이 늙었을 때에도 아비삭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처녀를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녀의 수발은 받았지만, 절대로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실제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내 마음 안에 와 계십니다. 이것이 진짜 믿어지는 사람은 성령님을 의식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므로 죄를 짓는 것이 불편해 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음란한 생각이 들면 순간 주님이 생각나서 그 생각을 멈추어야 합니다. 아직도 연약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죄송한 마음에 괴로워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거룩한 욕심이 생깁니다. 언제까지 내가 이런 생활을 할 것인가? “이제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고 싶다. 이제는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거룩한 열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의 유혹이 많지만,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②지금 내 모습에 대해서 거룩한 불만을 갖아야 합니다. 거룩한 불만을 갖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기독교는 회개를 강조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난 변화되어야 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룩한 욕심을 갖을 때 변화됩니다.

목사로서... 거룩한 불만을 갖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우리들이 자존심을 갖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로서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되자는 욕심을 갖아야 합니다.

③그리고 수용적이어야 합니다. 마귀가 역사하면 고집불통이 됩니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목이 곧은 사람이 됩니다. 도무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주의 종에 말씀에 수용적이어야 합니다. 잘 다듬어진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 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나니”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영접하는 자입니다. 수용하는 자입니다. 받아 들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왜 싫어하십니까? 수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죄를 지었지만, 세리와 죄인들은 수용성이 충만했습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고 자신을 변화시켰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변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면 가장 나에게 적용하시고, 나를 변화시키십시오. 그리고 변화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아름다운 변화의 열매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썩어질 열매를 맺지 마시고, 썩지 아니하고, 영원한 열매를 맺는 거룩한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셨다면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변화되셔야 합니다. 날마다 좋아지셔야 합니다.

 

2.둘째로 시몬은 칼 대신 십자가를 붙들고 살았습니다.

두 사람이 동행을 하려면... 최소한 뜻이 같아야 합니다. 가려는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한 사람은 부산으로 가려고 하고, 한 사람은 서울로 가려고 하면 절대로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뭘까요? 예수님과 뜻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보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을 우리도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고자 하시는 곳에 우리도 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서의 예화)

헌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과 뜻이 달랐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제자들 중에는 열심당과 같은 생각을 갖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찾아가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다른 제자들도 화를 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왜 화를 냈을까요? 예수가 왕이 될 때에 두 형제만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절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의 관심은 온통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주님이 제시하시는 길은 무엇입니까? 43절로 45절에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시면서 주님이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실 길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기대와 제자들의 기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서로 뜻이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하나가 있죠. 한 쪽에서 뜻을 굽히면 됩니다. 헌데 같은 열심당원이었던 가룟 유다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전혀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뜻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헌데 열심당원 시몬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붙들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칼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신 십자가를 붙들었습니다. 칼의 힘을 믿고 살던 사람이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살게 되었습니다.

시몬의 변화된 모습?

(1)세상 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2)우리가 대적하고 해방되어야 할 세력은 로마보다도 죄와 사탄의 세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싸움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마귀입니다.

(3)미움으로 가득하고 증오심으로 가득했던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칼이 없습니까? 남을 찌르고,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칼을 품고 살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깊은 상처가 있지는 않습니까? 십자가 밑으로 나가십시오. 십자가의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4)다른 사람들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려던 사람이, 자신이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내 욕심을 채우려고 남들에게 상처 주는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까? 살리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죽이는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까?

(5)열심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칼이나 돈을 위해서 열심히 살던 사람이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오셨습니까? 나 자신의 성공입니까? 세상의 성공입니까?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한 삶, 복음을 전하는 삶!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비전 중에 하나는 장년 성도들인 여러분들이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남은 인생길을 동행하는 자들이 되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면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함께 걷자고 하시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하시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중에 칼 바르트와 몰트만이란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우리들이 왜 예수님의 길은 어떤 길이었는가?를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무능함속에 숨어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십자가의 무능함 속에 숨겨 놓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힘으로 정복하려고 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통해서 저들을 멸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저들을 구원할 수 없기에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십자가에서 너무나 무능하게 죽으시는 것으로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셨다. 그러므로 강해지려고 하기 보다 사랑하려고 하라.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따르는 삶은 너무나 미련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칼이 아니라, 십자가로 세상을 정복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십자가가 능력임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일까요?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 뭘까요?

로마서 12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6장의 성경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11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이론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10절부터 보겠습니다.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 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 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 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힘들지만, 이 길을 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우리도 따라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칼 대신 십자가를 품고 세상을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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