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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 이병수목사 | 2014-11-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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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9일 새 생명 초청주일 한 주 전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누가복음 19:1-10 제목: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말씀은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어떤 말보다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은 기쁘셨을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의 인카네이션, 예수님의 성육신,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복음입니다. 이 말씀을 깊히 묵상해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못하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난 너 죽는 꼴은 못 봐!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너를 구원하고 말거야!”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17절의 말씀은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성경 66권이 다 없어져도 이 말씀만 기억하고 있다면 기독교는 절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래서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하시고 싶은 말씀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오늘 삭개오의 설교를 준비한 것도 속보이는 이유이지만, 다음 주일에 “오늘 구원이 미래교회에 이르렀다”는 주님의 말씀이 있기를 바래서입니다. 다음 주일에 모시고 오신 분들에게 “오늘 구원이 누구에게 이르렀다”는 선포가 있기를 바래서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삭개오를 통해서 참된 구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우리들은 종종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내 모습에 실망스러울 때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 또 정반대로 내가 구원받은 자인가?에 대한 고민을 전혀 않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더 심각합니다. 오늘 이 시간 한 번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①나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②구원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삭개오가 구원 받은 증거는 1.첫째로 영안이 열렸습니다. 사람은 육신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입니다. 육신의 눈이 있습니다. ①육안이라고 합니다. 혼은 생각과 마음입니다. 혼에도 눈이 있습니다. ②혼안이라고도 하고, 심안 즉 마음의 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의 눈이 있지요 ③영안입니다. 헌데 이것들이 각각이 아니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보다 영안이 밝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잘 사는 것은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에 평안하고, 감사하고 자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헌데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육신의 눈만 뜨면 돈에만 관심을 갖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돈으로 포장하려고 성공에 혈안이 된 사람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성공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성공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자신이 꿈꾸던 대로 육신의 성공은 거두었습니다. 세리장으로 로마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높은 지위를 얻었습니다. 또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헌데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없었습니다. 삶의 기쁨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착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으면 편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마음의 평안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갖고도 마음이 외롭고, 불안해하고, 기쁨이 없어서 헤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과 성공은 오히려 우리의 영의 눈을 멀게 합니다.
헌데 그런 삭개오가 영의 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영의 눈이 열리는 첫 단계는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인생! 돈만을 위해서 살아온 인생! 이 땅만 바라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살아온 인생!인 삭개오는 다른 차원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한 번 보고 싶다.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기독교인들은 뭘 믿고 있는 것인가? 교회는 왜 가나?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뭘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적용)인생을 살아가시면서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데 난 정말 구원받은 자인가? 난 구원받은 자 답게 살고 있는 것인가? 이대로 좋은가?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갖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영적으로 반드시 점검을 해야 합니다. (예1)여러분 자신을 점검해 보세요.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나? 믿음으로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결정을 하는가? 하나님을 믿기에 담대한가? 하나님을 믿고 살기에 평안한가? 자신을 점검해 보세요. 아니라면 회개해야 합니다. (예2)또 내 안에 예수가 계시다는 의식하며 사는가? 하루에 단 1분도 예수님이 생각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혹 나는 버림 받은 자 일 수 있습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한 10분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우리들의 영안이 열리는 데 대단히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하루 영안을 열기 위해서 30분은 투자를 하자는 것입니다. ①하나는 십자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1440분을 살면서 10분도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에 10분도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그대로 살지 않는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②또 내 영혼을 위해서 죽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의 브레이크가 되셔야 합니다. 남을 짓밟고라도 올라서려는 여러분의 삶에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바랍니다. 늘 분노하고, 욕심내고, 비교하고, 그래서 불평 하는 인생에 내 인생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는 브레이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내가 손해 보고 말지. 내가 먼저 사랑해야지가 되는 성도들이 되셔야 영안이 열린 사람들입니다. ③셋째로 내 영혼을 위해서 죽음 너머에 영원한 세계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70년 80년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그렇게 투자하고, 신경을 쓰고, 병원을 찾으시면서 왜 영원히 살 천국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는 것입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과 기쁨은 왜 놓치고 사십니까?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아야 합니다. (적용)진단해 보세요. 영적인 눈이 열리셨습니까?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안은 멀어 있고, 육신의 눈만 뜨고 살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점검하셔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영안이 열린 자입니다. 2.둘째로 삭개오가 구원받은 증거는 삶이 확실히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증거는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변화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구원받은 것은 말을 안해도 주변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야 정상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가까운 가족들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보면 아는 것입니다. 왜요? 쉽게 말하면 구원받으면 평소에 안하던 짓(?), 짓이라고 하니 어감이 센데요 기억하기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안하던 행동을 합니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삭개오를 볼까요? 삭개오가 안하던 짓을 하지요? (1)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렵다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갔습니다. 헌데 주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4절을 보세요.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나무(이것도 번역이 맘에 안들어요. 뽕나무라고 하면 훨씬 좋은데... 아니면 감나무라고 하던지)에 올라가니” 이것이 평소 삭개오가 하던 행동은 아닙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얼굴을 먼 발치에서라도 볼려고 이렇게 한 이유가 뭐예요? 사람이 많고, 키가 작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기에는 걸림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습니까? 아무 걸림돌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수 많은 걸림돌들이 주님을 온전히 믿는데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걸림돌 예1)직장이나 가정에서 성도답게 살려면 걸림돌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있습니다. 상사들의 반대가 있습니다. 직장 문화나 유행에 거센 저항이 있습니다. (걸림돌 예2)요즘 젊은이들이 예수를 믿기에 세상의 유혹이 너무 강하고, 즐길 것이 너무 많고, 재미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걸림돌이 많은 시대라고 해서 주님을 향한 마음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보세요. 삭개오는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너무 많다. 난 키가 작다.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가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할 수 없다. 그래서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뽕나무에 기어 올라갔습니다. 걸림돌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온갖 저항을 이겨낸다는 것입니다. 승리는 저항을 이길 때 얻는 것입니다. 걸림돌 앞에서 퍽퍽 쓰러지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삭개오가 구원을 받아서 안하던 짓을 한 것은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8절을 보세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것은 파격 그 자체입니다. 돈이 주인이었던 사람입니다. 돈 밖에 모르던 사람입니다. 돈이 전부인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완전히 변화되지 않앗습니까? 이런 삶의 열매를 맺는데 삭개오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적용)이 부분에서 걸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은 좋은데,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고, 갚는데 쓴다면 너무 힘들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이렇게 한 것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돈보다 주님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내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돈을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소원을 갖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습니다. 헌데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물질관하나 변화되지 않는다면 내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점검해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뭐가 달라졌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 어떤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살아가십니까?”
3.셋째로 삭개오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부모님들이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일 것입니다. 헌데 이름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죄인의 대명사, 나쁜 사람의 대명사인 세리였습니다. 그것도 세리장으로 살았습니다. 헌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음으로 그는 세리장으로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증인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변화된 삭개오는 ①베드로의 동역자가 후원자, 동역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②또 가이사랴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③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가 삭개오가 아닐까?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변화되었다믄 것이며, 구원받은 자로서 평생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평생 뭘 간증했을까요? 삭개오는 날 봐라! 우리 가정을 봐라! 난 이런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이런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새 인생이 되었다고 전했을 것입니다. (적용)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증인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내가 구원받은 증거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이 내가 보고 내가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전하시고, 다음 주일에 모시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결론 -참 구원은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참 구원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참 구원은 평생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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