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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분석(12)-끝까지 변화되지 않은 가룟 유다 | 이병수목사 | 2014-1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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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요한복음 12:1-8 제목:제자분석(12) - 끝까지 변화되지 않은 가룟 유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 분석 12번째로 가룟 유다에 대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가룟 유다하면 가장 저주 받은 이름입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랐으나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 2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 통한을 남기고 간 인생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고, 뼈아픈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첫째는 탐욕 때문입니다. 탐욕이란 국어사전에서 보면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입니다. 문제는 지나친 것입니다. 건강한 욕심은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허나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낳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해서 지나치게 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가룟 유다를 미화시킵니다. ‘가룟 유다는 열심당원이었다. 로마와 맞서 싸우려는 용감한 자였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애썻던 혁명가였다고 합니다. 왜 예수를 팔았느냐? 예수님이 코너에 몰리면서도 도무지 저들과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들에게 체포될 상황이 되면 주님이 분노하실 것이다. 진짜 팔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불을 지피기 위해서 팔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으면 예수님도 그래! 혁명하자고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더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님을 자극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성경은 분명하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판 것은 애국자라서도 아니고, 혁명가라서도 아닌 돈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돈을 훔쳐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여기에서 주어는 유다입니다. 보세요. 대제사장들이 가룟 유다를 매수한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자기 의지로 간 것입니다. 몸값을 흥정을 했습니다. 왜요? 그는 돈을 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예수를 팔았습니다. 그는 돈 앞에서는 스승도 없습니다. 이익 앞에서는 신의도 없습니다. 돈 앞에서는 구원도 사랑도 쓸데 없는 일일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 나옵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가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주님의 일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모습입니다.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라고 돈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돈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이시기에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 값진 것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현장에서도 가룟 유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위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결국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인생을 산 마리아를 공격한 이유도 돈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룟 유다가 우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돈을 참 좋아합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는 것이 지나쳐서 탐욕으로 가면 안됩니다. ①먼저 자신을 포장하지 마세요. 가룟 유다는 아닌척 했습니다. 실상은 자신을 멋지게 포장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척했습니다. 남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주님 앞에 물질에 대한 유혹에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약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남을 위하는 척하면서 정작 물질을 탐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제가 목회를 돈벌이로 하면 삯군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돈을 탐하기 시작하면 사심으로 목회를 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직장생활을 하든지, 섬기는 일을 하든지, 탐욕으로 하시면 안됩니다. ②그리고 성도들은 너무 인색하지 마십시오. 물질을 규모있게 사용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인색이란 일반적으로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체면이나 도리를 돌아보지 않고, 몹시 아끼는 것을 말한다. ③돈 때문에 인간관계가 깨진다면 가룟 유다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깨면서까지 돈을 사랑하지는 말라. (2)그러면 우리가 탐욕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①가장 먼저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남의 것을 부러워 하지 마십시오. 허영에 빠지지 마십시오. 분수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자족하십시오. 더 나아가 감사하십시오. ②탐욕에 빠지지 않는 안전장치로 주신 것이 십일조생활입니다. 십일조는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100%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헌데 하나님께서 청지기로서 90%는 우리에게 맡기시고, 10%는 하나님께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했습니다. 도저히 역부족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해서 전쟁에서 얻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 정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사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수입의 10%가 아니라, 심정적으로는 50%, 70%를 떼는 것과 같습니다. 십일조를 드려 보시면 알지만,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면서도 드려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바르게 갖어야 할 마음은 -십일조는 틀림없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탐욕을 이기는 길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들은 절대로 돈에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돈을 지배하는 주인이 됩니다. ③또한 탐욕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90% 가운데 작은 일부라도 나눔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화)우리가 창립주일에 발 맞추어 겨자씨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한달에 약 30만원 이상이 겨자씨 헌금으로 모아집니다. 지금은 한 분 독거노인을 돕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말 그대도 겨자씨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히 아껴도 늘 부족한 것이 탐욕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는 구제는 하나님에게 빌려주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모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누는 기쁨이 있습니다. 탐욕은 모으는 기쁨에서 나누는 기쁨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악한 마귀는 끊임없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평생을 모으는 일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은 모으는 기쁨을 넘어 나누는 기쁨을 누리시는 거룩한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탐욕으로 실패하지 않는 거룩한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돈 때문에 시험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2.가룟 유다가 실패한 두 번째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말입니다.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변화입니다. 회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변화되는 것이지요. 헌데 가룟유다는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12제자들의 수준은 다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11명의 제자들은 결국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헌데 가룟 유다만은 끝까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수 차례 경고해 주셨습니다. ①제일 첫 번째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예수님이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너를 씻겨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그러나 다는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②두 번째는 성찬식 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 이번에는 좀더 직설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서로 걱정이 되어 “저입니까?”하고 묻습니다. 그 때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도 물었습니다. “저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 헌데 다른 제자들은 자기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가룟 유다와 나눈 대화는 듣지를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만 들었습니다. 헌데 가룟 유다는 이 때에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③세 번째는 베드로가 사도 요한에게 누가 주님을 팔자냐고 물어보라고 눈짓을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묻자 예수님은 “내가 한 조각 떡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이번에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헌데 이때에도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 넣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가룟 유다는 이미 마귀에게 마음과 생각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번 돌아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경고하신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헌데 더 마음이 굳어지고, 좀 체로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변화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예배는 변화의 기회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여러분들의 삶을 점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을 변화의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의 당부와 간곡한 부탁을 사람의 말로 듣지 마시고, 주님의 경고로 듣고 돌이키신다면 그분은 복된 자일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을 보니까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속히 돌아서야 합니다. 주님은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으시시기에 기회를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또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회개의 기회를 붙들길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할 기회를 삼는 사람이 가장 복된 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 사람이었구나!해서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가룟 유다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그 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회개해도 늦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와서 회개했습니다. 그 때 하면 됩니다. 헌데 가룟 유다는 후회는 했는데 회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니까 자신이 받은 돈을 도로 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목매 달아 죽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악한 것입니다. 죄를 짓고 넘어지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것까지 자기 마음대로 죄를 해결하면 안됩니다.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오직 험한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회개의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십자가 밑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우리의 죄를 지워달라고 하면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 가운데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예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가장 잘못한 것은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수 많은 주님의 기적을 보고도,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끝까지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변화되는 것이 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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