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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삶(3) -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혀라 이병수목사 20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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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10:32-37

제목:제자의 삶(3) -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혀라!

제자의 삶 ①첫 번째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②두 번째는 “끝까지 견뎌라.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양으로 어떻게든지 살아 남아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제자의 삶 ③세 번째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이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고 사는 것입니다. 32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예화)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영화한편을 찾아 보았습니다. 1981년 작품입니다. 아주 오래되었지요.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에서 영국 단거리 선수인 에릭 리들이 금메달을 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현재 30회 올림픽을 했으니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지요. 에릭 리들은 육상 100m 영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을 했습니다. 에릭 리들은 강력한 우승후보였습니다. 헌데 육상 100m 예선 경기가 일요일에 있다는 것을 알고 경기출전을 포기합니다. 이유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발칵 뒤집혔지요. 영국 왕자와 올림픽 준비위원장, 선수단장, IOC위원인 네델란드 공작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합니다. 이 대책회의에 에릭 리들을 불러 권면을 합니다. 헌데 놀라운 것은 설득은 해도 비난은 하지 않더라구요. 이 모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설득하고 논쟁을 할 수는 있지만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영국 왕자가 “자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 그러나 마음을 바꿔 줄 수는없겠나? 국민과 조국을 위해서 뛰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리들은 “안식일에 출전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국민을 사랑하고, 조국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왕도 조국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지키겠습니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 에릭 리들이 못마땅한 올림픽 준비위인 한 공작은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군!!! 우리 때에는 조국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신이었지!” 그 때 리들은 “믿음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더 무례한 것 아닙니까?”

물론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에 주일에 올림픽 경기에 나갔다고 해서 에릭 리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특별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리고, 경기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믿음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리들이라고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3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했습니다. 금메달을 따면 인기와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뛰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것과도 주님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100m 경기를 포기한 에릭 리들에게 평일에 있는 400m 경기에 나가도록 제안을 합니다. 100m선수에게 400m를 뛰라는 것은 골프선수에게 야구를 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100m 뛰는 기술과 체력이 따로 있고, 400m 뛰는 체력과 기술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헌데 에릭 리들은 400m 경기에 나갑니다. 400m 경기를 하려고 할 때, 한 동료 선수가 쪽지를 전해줍니다. 그 쪽지 안에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 10장 32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에릭 리들은 결국 한번도 뛰어보지 않은 400m 경기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영화나 드라마 보다 더 극적인 실화가 펼쳐지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시인한다는 말은 헬라어 호몰로게세이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법정인 단어입니다. 재판관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헌데 부인한다는 말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숨기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부끄러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쉽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당당히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에릭 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때, 하나님은 그를 사람들 앞에서 높여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예수 믿지 않는다고 밝히는 것이 더 어렵지요. 헌데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나, 학교에서,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내가 섣불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밝혔다가 오히려 예수님 영광 가리고, 교회에 누가 되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밝히지 말고 조용히 살자’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변명일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그에 맞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맞지, 그렇게 살기 힘드니 밝히지 않겠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사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습니까? 시인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훨씬 더 정직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면 가족 간에 불화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살려면 집안 식구와 불화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사문제를 보세요. 예수를 믿기에 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도하겠습니다하면 미움을 받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조상들을 기억하며 예배로 드리겠습니다하면 원수가 됩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도 여러분들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일 지키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켜야 하기에 모임에도 갈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하루 종일 산다고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주일에 애경사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혀야 합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도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하십니다.

전 불의전차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고 은혜를 받은 장면이 있습니다. 영국 왕자와 선수단장과 올림픽 위원장과 공작 앞에서 당당히 하나님을 시인하는 에릭 리들을 뒤로하고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우리는 조국의 위신만 생각한 우리가 부끄럽다. 하나님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 멋진데... 자기 신앙이 분명한 젊은이가 흔치 않은데...”

당당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저들이 미워하면서도 두려워 합니다. 결국은 인정합니다.

 

(예화)제 목회를 돌아보면서 부끄럽고 후회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①하나는 심방을 가거나 성도들을 권면하거나 할 때에 당당하게 예수를 전하지 못하지 않았나?하는 후회입니다. 몸이 아프고, 힘든 일을 만난 분들에게 다른 것으로 위로하려고 하지 말고, 담대하게 예수를 전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도록 굳게 세워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이 됩니다.

②또 하나는 강단에서 다른 말 하지 말고, 성도들이 듣기 좋은 말,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오직 복음만을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난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반성해 봅니다.

(예화)무명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①헌금을 하실 때도 무명으로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무명으로 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이름을 당당히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헌금을 드릴 때 그 이름이 생명책에도 기록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한 헌금이나 헌신이 무명으로 기록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단 돈 천원을 드리더라도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드리세요. 그것도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②무명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마세요.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신앙생활을 하세요. 당당히 내 이름을 헌신자의 이름에 올려 놓고 헌신하세요. 장로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집사, 권사, 교사, 임원, 부장으로 이름을 올렸으면 그 이름 값을 하셔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실 때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무명으로 교회 다니지 마세요. 헌금할 일 있을 때, 당당히 내 이름으로 헌금도 하고, 헌신도 해야 주님 손에 들려진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적용1)내가 목사요 그리스도인이라고 시인을 해야 하고, 했다면 삶과 행실이 엉망이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가족들에게 욕먹을 일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말과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같은 교인들 앞에서, 그리고 불신자들 앞에서도 인정을 받으셔야 합니다.

금요성령집회 시간에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은 붉은 용 마귀와 마귀가 부리는 두 짐승이 교회와 믿는 자들을 공격하고, 미혹하고, 유혹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마귀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마귀의 공격을 당당히 이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린 양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광경이 나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탄의 공격과 유혹속에서도 자신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시인하여 승리한 자들입니다.

 

이 세상은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요한계시록 14장의 자리에 참여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의 무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세상에서 당당히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이들이 무엇으로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냈나요? ①여자와 더럽히지 아니한 순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순결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영도 절대로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시 잖아요!

비둘기 같은 순결이란 뭐예요?

-비둘기는 까마귀와 대조를 이룹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때 노아는 가장 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냅니다. 헌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왜요? 땅에 널려진 사구들을 파먹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 앞에 놓인 욕심을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비둘기는 다시 방주로 돌아 왔습니다. 비둘기가 다시 돌아온 것은 머물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른 땅이 없었습니다. 온갖 시체들로 가득한 곳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지만, 늘 마음이 주께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 치열한 삶을 살다가도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일 주일 뒤에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이 때 비둘기는 감람나무 잎새 하나를 물고 다시 돌아옵니다.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봅니다. 너무 감동이 되지 않습니까? 죽음이 가득한 땅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결국 생명을 찾아 물고 오는 비둘기입니다. (적용)올 한 해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받은 사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힘들다고, 협조를 안한다고, 갈들이 있다고 피하지는 않았습니까? 비둘기처럼 여기 저기를 다니면 생명을 찾아 오지 않습니까? 상황이 힘들지만 내가 감람나무 잎새 하나를 찾아 물고 오듯이 충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비둘기 같이 순결한 것입니다.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②또한 승리자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따라갔습니다. 내가 보기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 해도 어린 양 예수를 믿고 따라갔습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하나님을 시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③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절대로 입에 거짓말이 없어야 합니다. 말에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말에 거짓이 없도록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다운 말과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주를 시인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32-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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