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 이병수목사 | 2014-12-25 | |||
|
|||||
|
2014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설교 성경:누가복음 2:1-7 제목: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오늘 말씀에 보니 예수님이 머무실 방이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방문화입니다. 한옥을 보면 안방, 건넛방, 사랑방, 광 정도입니다. 헌데 요즘 집은 방이 참 많습니다. 또 방이 진화하였습니다.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산소방, 소주방 등등이 있습니다. 오늘 날 왜 이렇게 많은 방들이 생겨날까? 학자들에 의하면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심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자기 만의 방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헌데 놀라운 것은 방이 많아지면서 자살률도 높아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좁은 방에서 여럿이 뒤섞여 살 때는 나쁜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헌데 혼자 방에 있으면서 혼자 자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서 지내다 보니 마음이 우울해 지고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나만의 방을 갖고 싶어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만을 위한 방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위한 방은 마음의 방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방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머무실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머무신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계실만한 방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은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주님이 기쁘시게 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첫째로 하나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가이사 아구스도가 왜 하필 이 때에 호적하라고 했을까요? 가이사 황제는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호적하라고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 미가 선지자는 예언하였습니다. 미가서 5장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가이사 황제는 몰랐지만, 그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이 때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이들이 황제의 명령을 따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임신 중입니다. 먼 길을 여행하기에는 위험합니다.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허나 호적하러 가는 이 길이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는 길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베들레헴에 도착을 했지만, 만삭인 마리아가 머물 방이 없었습니다. 해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몸을 풀 방 하나가 없어서 결국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았습니다. (예화)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면 평생 바가지를 긁었을 일입니다. 여성들은 임신하고 출산할 때 서운한 것은 평생을 잊지 않습니다. 헌데 아이를 낳는 산모를 마굿간에 눕혀 놓았으니 기가 막힌 노릇 아닙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마리아가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했을 것입니다. 산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친정 엄마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상황을 주시나? 이해되지 않는 일을 보면서 힘들어 했을 수도 있습니다. 허나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수고, 힘든 여행, 고생, 쉴 곳 하나 없는 서러움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더욱 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당장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해도 금방 판단하지 말자. 인내함으로 가보자! 분명 나는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계실 것이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자!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은 이루어 질 것이다.”
(적용)가이사 황제의 명령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권세자들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사의 말이 옳고, 어른들의 말이 옳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말이라면 거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고난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손해를 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지켜 주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펼쳐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을 두려워 하기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역사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화)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준비하십니다. 헌데 모세가 태어날 때 애굽의 바로 왕은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에게 남자 아이를 낳으면 그 자리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히브리인들이 많아지면 내란을 일으킬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의 명령을 어기면 산파들이 죽습니다. 대부분의 히브리 산파들은 바로 왕의 명령을 두려워 해서 따랐습니다. 그러나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들은 달랐습니다. 출애굽기 1장 16-17절에서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보세요.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는 누구를 더 두려워 했습니까? 애굽왕도 두려웠지만,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매 순간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2.둘째로 목적 있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요셉과 마리아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이들의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요셉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구원자가 태어날 곳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향이기에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일찍이 베들레헴이 고향인 요셉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고향까지도 아시고, 그를 선택하셨고, 마리아가 임신하여 만삭이 되었을 때, 가이사 황제를 통해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보십시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올라 가게 된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어쩔 수 없이 환경에 끌려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우리인생의 목적은 주님만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화) 작년 4월에 영국 동북부 선더랜드에서 마라톤 경기가 열렸습니다. 헌데 마라톤 경기결과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1등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참가 선수 모두가 실격처리 되었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5천명에 달했습니다.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완주하고도 5천명이 넘는 선수들이 모두 탈락했습니다. 이유인즉 1등과 상당한 격차를 두고 달리던 2등 선수가, 실수로 경로를 잘못 접어들자 3등과 그 뒤를 따르는 선수들이 앞 선수만 따라가느라 모두 경로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2등 선수가 다행히 정규코스를 찾아서 골인지점까지 들어 왔습니다. 그 뒤로 모든 선수들이 골인지점까지 들어왔지만, 마라톤 정류코스 거리에 260m를 미치지 못해서 모두가 탈락하고 만 것입니다. 실격처리된 5천명이 넘는 선수들은 오직 앞에 가는 사람만 보고 달린 것입니다. 헌데 보세요.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간들 천국 문 앞에서는 모두가 실격처리 되는 것입니다.
헌데 1등인 선수는 정규 코스의 깃발과 앞에 가는 선도 차량을 바르게 따라갔습니다. 정규 코스에 걸려 있는 깃발과 길을 아는 선도차량을 바로 따랐기에 영예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렸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달려야 합니다. ①정규코스에 걸린 깃발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제대로 달려야 합니다. ②그리고 앞서 가는 선도 차량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를 따라가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왜 다윗이 날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외쳤겠습니까? 오직 말씀과 예수님을 따를 때 하나님은 목적지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따르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셋째로 예수를 마음에 모시고 평생을 살아 가십시오. 5절의 말씀을 보세요.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우리는 마리아가 잉태되는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먼저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습니다. 처녀인 자신이 임신한다는 말이 믿어지겠습니까? 그것도 성령으로 잉태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을 수 있습니까? 헌데 마리아는 결국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순종하기로 하고 예수를 품었습니다. 동시에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에게도 나타났습니다.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그녀가 잉태한 자는 성령으로 된 자니라.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마리아를 받아들입니다. 마리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님의 뜻을 마음에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방에는 누가 계십니까? (예화)이번 주간에 닉 부이치치의 허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닉은 태어나면서부터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세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10살 때 너무나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절망으로 너무 우울했다고 합니다. 하루 하루 더 산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직장도 갈 수 없다. 결혼도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아 줄 수도 없다. 자식들이 태어난다 해도 안아 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급할 때 난 도와 줄 수 없다. 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들이 가득하자 두려움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자살하려는 순간 따뜻한 닉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닉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 닉!!! 널 사랑한다. 아들아! 인생을 포기하지 마라. 지금은 하나님이 널 왜 이런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셨는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아야 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15살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달라졌습니다. 마음 속에 주님을 모셨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마음의 방에 모시고 난 이후, 닉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모신 닉의 마음? -마음먹기에 얼마든지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면이 문제다. -팔 다리가 업다? 절망도 없다. -난 몸이 약한 것이지 마음이 병든 것은 아니다. 주님이 마음을 만져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태도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닉은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보드 스케이트를 타고, 수영하고, 다이빙을 하고, 윈드 서핑을 하고, 축구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길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전세계를 다니면서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닉은 늘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헌데 주님을 모시고 난 후 최선을 다한 결과 자신이 기적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 않고, 자기 자신이 기적이 되어 있게 하셨습니다. 책에서 이렇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난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다. 지금 나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을 즐기고 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린 이런 감격과 기쁨을 갖고 살지 못한다. 늘 불만족하고, 불평하고, 우울해 한다. 왜 그런가?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닉 부이치치가 절망을 이긴 힘은 자신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해서 다얻는다고 한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기에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사랑을 느끼며, 살기에 결코 포기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주님을 마음속에 잉태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마음의 방을 주님만을 위한 방으로 만드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책임지실 것입니다. 주님이 계실 마음의 방을 준비하시는 거룩한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