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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한이 큰 사람인가? 이병수목사 20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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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4일 신년감사 주일예배 설교

성경:마태복음 11:7-12

제목:왜 요한이 큰 사람입니까?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돈이 많은 사람입니까?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입니까? 유명한 사람입니까? 주님은 세례 요한을 가르켜 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①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평생을 낙타 털옷을 입고 산 사람입니다. 지금도 네팔에 가면 양 털 옷을 입고 일년 내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털을 밖으로 나게 입고, 겨울에는 털을 안으로 나게 입고 일년을 삽니다. 아마 세례 요한도 낙타 털옷 하나로 평생을 산 가난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②요한은 높은 지위를 얻은 사람도 아닙니다. 한 때 유명하기는 했지만, 잠간이었고,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③큰 성공을 이룬 사람도 아닙니다.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도 아닙니다. 헌데 주님을 그를 향해서 큰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요한이 큰 사람일까요? 세례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1.첫째로 선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먼저 선지자는 길을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예화①)아버지와 어릴 적 나무를 하러 갈 때면...길을 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는 나무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곳으로 길을 만들며 가야 나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뒤에 따라서 오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미리 제거해 주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따라오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큰 사람이란 다음 사람들이 걸어 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 가지 않은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얼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우리 성도들은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두 길이 놓여 있습니다. 감사의 길이 있고, 원망의 길이 있습니다. 감사의 길은 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곳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미움이 가득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길이 되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쉽습니다. 길이 잘 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길, 의의 길, 생명의 길은 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래서 길이 험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는 것이 성도요 길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련을 만나면 세 가지 중에 하나의 반응을 합니다. 도망치든지, 자포자기 하든지, 맞서 싸우든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맞서 싸워야 합니다. 두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현실에 맞서 극복해 내야 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소망의 길을 만들어 내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②)부모님들도 믿음의 길을 내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내가 걸어간 믿음의 길을 우리 자녀들이 그대로 따라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 자녀들이 나처럼 예수를 믿었으면 좋겠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나처럼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으십니까?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내가 걸어간 길을 따라올 수 있도록 사셔야 합니다.

 

(2)또한 선지자는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광야 같이 삭막한 곳에서 들리는 좋은 소리였습니다. 사실 세례요한이 내는 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찌르는 소리였습니다. 회개하라는 아픈 소리였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된 것은 삶으로 내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입에서 나지 않고 삶에서 나는 것입니다.

종종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은 Person=Per+Sound입니다. 소리를 내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소리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나에게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말로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표정으로도 소리를 냅니다. 친절함으로도 소리를 냅니다. 삶으로 내는 소리가 가장 큰 울림이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리가 납니까?

 

(적용)좋은 소리를 내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2015년 우리 성도들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들어야 소리를 낼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듣고 싶다는 소원이 생깁니다. 헌데 나에게는 왜 말씀해 주시지 않나? 고민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헌데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예화)팔 다리가 없던 닉 부이치치는 묻고 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했나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겁니까?” 아무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헌데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떻게요?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때문입니까?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이 말씀을 보는 순간 눈이 열렸습니다. 내가 그토록 묻던 질문이 성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시려는 일이 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시려는 일을 반드시 드러내실 것이다.”

이 말씀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좌절했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주님께서 귓가에 속삭이듯 해 주시는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날 주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015년 한 해는 말씀으로 사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고 하면서도 전혀 노력도 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시다면 성경을 읽으세요. 반드시 깨닫게 될거예요. 2015년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십시오.

2.둘째로 전투하는 군인으로 살았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이 말씀은 세례 요한때부터 신앙은 전투적이라는 것입니다. 공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침노를 당하나니”라는 말은 ‘비아조’인데, 군인들이 적진을 공격해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전쟁용어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은 전투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여행가는 관광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전투함에 올라탄 것입니다. 전쟁하러 가는 군인인 것입니다.

한 시인은 인생을 소풍으로 비유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홀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사실 우리 인생길이 소풍과 같습니까? 돌아갈 하늘이 있다는 것은 맞지만, 이 땅에 사는 삶이 소풍을 즐기는 삶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성도들의 삶은 치열한 싸움의 현장입니다. “지상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대접받으려고 하지 마셔야 합니다. 교회는 구조선입니다. 전투선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무장하고 훈련시키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시련과 장애를 도피하려 들거나 방관하지 말고, 정면에서 담대하게 돌파하여 나가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부딪혀 나아갈 때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7장 7-8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은 우리들이 구해야 합니다. 찾아야 합니다. 두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병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전투하는 군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6장 13절에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수 없이 나옵니다. 헌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인들이 너무 약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입니까? 상처 받았다는 것입니다. 매일 상처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또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니어도 상처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우리들이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예화)어린 아이가 40kg 쌀가마니를 들고 뛰는 것은 못합니다. 약하니까요? 그러나 내가 강하면 얼마든지 들고 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영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조금 교회에서 무거운 짐을 지우면 힘들어 합니다.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명을 맡겨주시면 못합니다. 안합니다. 할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하나님께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주셨으니 능력도 달라고 구하시면 주실 것입니다.

/약점이나 과거, 상처에 대해서도 강해 지셔야 합니다. 약점만 건들면 큰 상처를 받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약점을 농담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치유받고, 자유로우십시오.

 

(강해지시기 위해서

①매일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시고, 매일 말씀을 읽으세요. 그리고 예배를 드리세요. 예배를 통해서 말씀으로 무장을 하세요.

매일 매일 기도한 다니엘, 매일 매일 찬송하고 기도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실력을 쌓았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 눕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매일 영적 훈련을 하세요. 그래서 강해지십시오.

②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세요. 전투적으로 하세요. 공격하는 자가 얻습니다. 사모하는 자가 얻습니다. 직분도 적극적으로 감당하세요. 축복받을 일에 전투적으로 임하세요. 헌신하는 자리, 희생하는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지 마세요. 앞으로 전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이르기를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39절에서는 다음 같이 일러줍니다. "우리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여기서 침륜에 빠진다는 말은 ‘슬럼프에 빠진다’, ‘자포자기한 상태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뒤로 물러나거나, 슬럼프에 빠지거나, 자포 자기한 상태에 빠져드는 것은 영적인 죽음을 뜻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느 경우에나 전진하는 사람들이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어려움을 담대함으로 정면 돌파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땅에서 큰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큰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께 큰 사람은 (1)길이 없는 곳에서도 길을 만다는 사람입니다. (2)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입니다. (3)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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