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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애태우심 | 이병수목사 | 2015-0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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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마태복음 11:20-24 제목:주님의 애태우심!!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이 뭘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첫째는 관계입니다. 타종교는 믿음의 대상인 신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신과 인간은 주종관계입니다. 허나 기독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예화)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 한 사람이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계시구나!”이 감격에 목회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타종교는 신의 힘을 빌어 내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섬기는 목적입니다. 허나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사랑의 관계를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화)이름만 대어도 누구나 아는 유명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헌데 외도로 인해서 아내와 별거 중이었습니다. 체면과 사회지명도가 있어서 이혼은 할 수 없고, 별거중인 아내를 찾아갑니다. 너스레를 떨면서 이 말 저 말을 합니다. 헌데 아내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한 참 듣고 있던 아내는 남편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난 다른 것 바라는 것 없다. 행복하고 싶어. 날 행복하게 해 줘봐!” 그러자 그동안 저자세였던 남편이 태도를 바꾸어 화를 냅니다. “행복하게 해달라고...당신이 행복하지 않은게 뭔데!! 부자 남편 만나서 뭐가 부족한데... 별장이 몇 채야? 부리는 종이 몇 명이야? 신발이 몇 켤레야? 뭐가 부족해서 불행하데?” 남편의 말을 다 듣고 있던 아내는 “그래! 좋아! 별장 당신 다 갖어! 돈 당신 다 갖어! 집도 당신 갖어! 대신 내가 바라는 것 하나만 줘!” “그게 뭔데?” “당신 마음을 줘! 나를 향한 당신의 진심을 한 번 줘봐!”그러자 남편은 “다른 건 다 줘도 그건 못 줘! 내 마음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라고 하더랍니다. 어떠세요? 다른 것은 다 주어도 마음만은 못준다고 하면 살 수 있습니까? 못삽니다. 보세요. 사람의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절대로 돈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왜요? 사람은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안 좋으면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내면적 존재이기에 사랑을 받아야 하고, 마음을 나누어야 비로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받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고, 인생길을 동행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입니다. 2.둘째는 성육신입니다. 타종교는 죄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허나 기독교는 죄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룹니다. 어느 종교가 신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은 종교가 있습니까?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타종교는 신을 위해서 사람이 죽습니다. 허나 기독교는 주님이 죽어 나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죽을 테니, 네가 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살자!”하면 안됩니다. “나를 밟고 너가 올라서라! 내가 죽어, 너 살아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입니다. 저나 우리 성도들이나 이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들지만 그러나 주님이 가신 길, 가치있는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3.셋째로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것은 죄문제입니다. 어느 종교의 창시자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참된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성숙할 때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 때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뭐예요? 진선미를 추구하는 거예요. 인간만아 아름다움을 추구해요. 헌데 현실은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이 많아요. 자기 자신을 봐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는 거예요. 그래서 죄책감을 갖게 되요. 헌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예요. (예화)개들을 좋아하는 데요? 주인을 문 개가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셨어요. 사람만 그래요. 헌데 오늘날 점점 죄책감이 없어져요. 죄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어요. 왜 죄에 대해서 무뎌질까요?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들이 지금 서로 연합을 하고 있습니다. 헌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뿔뿔히예요. 성경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짓는 죄악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라고 했어요. 요즘 보세요. 동성애를 동정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동성애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허나 연구결과가 나왔어요.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도 유전적인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동성애는 죄요 질병이기에 치유받아야 하는 거예요. 헌데 이들이 힘을 갖으면서 뭐라고 해요. 취향이라고 해요. 문화라고 해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나는 어린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취향이라고 하면 되는 거예요? 나는 동물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내 취향입니다’라고 하면 그것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건가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연합을 해서 힘을 갖으면 그것이 문화가 되는 시대가 된 거예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니, 죄책감이 없으니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죄책감을 갖는 것이 은혜예요. 예수님 앞에 나가면 모든 죄 사함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예요. 우리 기독교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4.넷째로 기독교는 인생의 본질적인 답을 주고 있습니다.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분명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5.마지막으로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은 회개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타종교는 신의 비위를 잘 맞추어 내 소원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신을 움직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부담으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의 부탁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관계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말씀이기에 그냥 넘어갈까 생각했습니다. 심판의 말씀이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심판의 말씀은 우리 잘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회복하자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끝내시겠다는 뜻이 아니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큰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큰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어디입니까? (1)고라신입니다. (2)벳새다입니다. (3)가버나움입니다. 이 지역들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고을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지역에서 대부분 공생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헌데 가장 무관심하고 회개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 세 지역에서 행한 능력을 두로와 시돈과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고, 결코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로와 시돈과 소돔은 구약의 도시입니다. 구약시대에 가장 악하고 죄가 많은 도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은 도시들이었습니다. 헌데 예수님은 이 도시에서 내가 권능을 행했다면 벌써 그들은 회개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헌데 가버나움과 벳새다와 고라신은 그 많은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기에 내가 책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이 뭘 말씀하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도 많이 받고도 감사하지 않는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내지 않는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도 받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구나! -하나님을 체험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구나! -하나님께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충성하지 않는구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으면서도 도무지 용서하지 않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낙심하고 절망하는구나! 이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낮은 목소리로 또박 또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못써! 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나의 사랑을 받지 않은 사람도 아니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회개하지 않느냐?”주님이 우리 각자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신 곳이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이었다면, 오늘 날 예수님의 가장 큰 사랑과 권능을 받은 민족은 어디일까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 우리 대한민국이구요. 한국교회이구요. 바로 나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는 13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짧은 역사입니다. ①헌데 130년 만에 전체 인구의 20-25%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교회가 없는 마을들이 거의 없습니다. ②130년 전 1884년에 선교사들이 와서 병원과 학교를 세워서 우리 나라를 도와 주었습니다. 고아원을 세워 불쌍한 아이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도움 받는 나라였습니다. 헌데 지금은 전 세계에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③매년 미국은 400만부의 성경책을 찍어 냅니다. 헌데 우리 나라는 매년 600만부의 성경을 찍어내는 나라입니다. ④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는 교회는 한국교회가 유일합니다. ⑤하루 종일 TV와 인터넷, 모바일로 기독교 방송이 서비스 되는 나라입니다. 한국 땅에 개신교가 들어온 130년 동안 한국역사는 파란만장한 역사였습니다. 일제치하 속에서 36년간 종살이를 했습니다. 10대 젊은 여학생들이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당하고 살았습니다. 1950년에는 6.25 전쟁이 이 땅에 벌어졌습니다. 이 땅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 50년 만에 한국은 놀라운 경제 부흥을 가져 왔습니다. 88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2002 월드컵을 개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이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정상회의 G20 의장국이 되었습니다. 세계 경제 13위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하나님의 은혜 많이 받은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국교회처럼 복을 받은 나라를 찾아 보기 힘듭니다. 헌데 현재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회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한국교회와 한국교회를 이루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신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①우리는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보신 분들은 아시지 않습니까?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천하보다 나 한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고도 감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②내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 준 사람들의 은혜로 잊지 못해서 감사하고, 그 은혜를 보답하려고 살면서,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도, 도무지 감사하지도 감격하지도 않고 냉냉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내가 죽고 너 살아!하신 주님이 얼마나 애통하시겠습니까? ③그동안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은사를 체험하고, 기도를 응답받고, 사랑을 느끼며 살아오셨으면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고 살아가신다면 주님이 얼마나 애통해 하시겠습니까? ④믿고 사명과 직분을 맡겨 주셨는데, 열심히 충성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세요. 예수님의 권능과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향해서 주님은 “화 있을진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애통입니다. 미워서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안타까워서 애통하시는 것입니다.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애타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으신다면 그 뒤에는 멸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받기 전에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간청입니다. 외면하시면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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