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와 다르시다 | 이병수목사 | 2015-05-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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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14:13-21 제목:주님은 나와 다르시다 오병이어로 장정만 오천명을 먹인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남녀노소를 합하면 적어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배불리 먹인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사건은 오병이어 사건이 유일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 만큼 이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1.첫째로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믿게 하기 위함일까요?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한결 같이 오병이어 사건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예화)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기적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은 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서로 눈치 보며 음식을 꺼내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헌데 한 어린 아이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꺼내 놓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 하면서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꺼내 놓은 도시락을 나누어 먹게 되자, 다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훗날 제자들이 멋있게 보이려고 주님이 하신 것처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 이해가 잘되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준으로 이해되는 예수님이라면 믿을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서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 세상도, 우리들도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와서 예수님을 위해서 살다가,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믿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 구원자이시니 얼마든지 오병이어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시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어린 아이가 드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이유는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임을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만나를 예로 드셨습니다.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만나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육신의 배를 채우는 떡이었다. 만나를 먹는다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생명의 떡으로 하늘에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8-5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 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3-57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흘려주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게 하시려고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화)작년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사고는 전 국민들을 슬프게 한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세월호 사고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선내 방송이었습니다. 배가 중심을 잃고 바다에 침몰되는 순간에도 선원들은 선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방송을 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한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한 선내에서 대기하라고 한 것입니다. 솔직하게 구명조끼를 입고 빨리 배 밖으로 나와서 살 길을 찾으라고 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배 밖에는 구조헬기가 와 있었습니다. 인근에서 고기를 잡던 배들이 구조하려고 몰려 와 있었습니다. 의경들이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나오기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선원들의 거짓된 말!에 속은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속아서 죽어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전해주는 안내 방송에 속아서 안전한 줄 알고, 행복한 줄 알고, 이 세상이 영원한 줄 알고 살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 푹 빠져서 육신의 생명만을 위해서 살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말씀대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이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둘째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실 때 동역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제자들과 어린 아이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마태복음보다 요한복음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먼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빌립의 지혜를 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님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당신의 계획을 갖고 계셨지만, 빌립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빌립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물으신 것입니다. 빌립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이라는 제자는 비관적 합리주의자입니다. 부정적인 계산주의자였습니다. 빌립의 말은 현실입니다. 들판에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겠습니까? 돈도 없거니와 돈이 있다고 한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 빵을 구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대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크시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들은 불가능해도 하나님은 가능하시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계산, 현실, 환경을 넘어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만명이 넘는 대중을 앞에 놓고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이라도 성자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면 자신들의 생각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무슨 계획이 있지 않을까? 주님에게는 무슨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믿어드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안되면 주님도 안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 앞에 계신 분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자신들과는 다른 계산, 다른 방법을 갖고 계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한 제자 안드레는 어떻게 합니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반대하고만 있지 않고 사람들 중에 먹을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한 어린 아이가 갖고 있는 오병이어를 발견했습니다. 오병이어를 갖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주님 앞으로 갔습니다. 요한복음 6장 9절에 보면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나이까?” 안드레는 아무리 생각해도 오병이어가 1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잘 한 것은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시도는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긍정적 신뢰주의자였습니다. 간절한 믿음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빌립이나 안드레나 회의적이고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안드레가 어린 아이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 간 것은, 단 한가지 이유였습니다. 주님은 나와 다른 분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빌립은 내가 볼 때 안되니 주님도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나는 안되나 주님은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주님이 나와 똑같은 분은 아니지 않나?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나와 주님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간단한 것 같지만,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사실입니다. 내 계산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여도 주님의 계산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병이어를 놓고 축사하신 후에 떼어 주며 나누어줄 때 신비스러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떡과 생선이 다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들이 왜 예수를 믿습니까? 나와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나 빌립처럼 하지 마세요. 나도 못하니 주님도 못하실거라고 생각하고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은 큰 불신입니다. 안드레처럼 나는 못하나, 주님은 다르지 않을까? 주님이시라면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이 믿음을 갖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하십시오. 나지 아니할까 염려하며 애탈지라도 씨를 열심히 뿌립시다. 뿌린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1만 명에게 오병이어는 정말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게 있는 오병이어를 드립시다.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순종을 하십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쓰실 것입니다. 주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와 다른 주님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믿음주의자가 되어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교회는 오병이어와 같이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도 한 분 한 분이 주님께 순종을 드린다면, 마음을 드린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님이 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주님에게는 방법이 있습니다. 혼자서 힘들어 하지 마시고, 주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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