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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뭐라해도 사랑이 답입니다. 이병수목사 201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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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15:21-28

제목:아무리 뭘라해도 사랑이 답입니다

오늘 본문은 귀신들린 딸을 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2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My daughter is demon possessed(홀려있다. 사로잡혀 있다. 꽉 붙잡혀 있다) and suffering terribly"

오늘 날 사람들을 보세요. 무엇에 다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무엇엔가에 홀린 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귀신들렸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귀신들렸다는 것은 귀신의 영향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예화1)얼마 전에 터키에서 실종된 고등학생 김군에 대한 보도로 온 나라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IS에 납치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입한 것으로 밝혀 졌습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데로 IS는 SNS 등을 통해서 자신들은 많은 월급에, 집도 공짜~ 먹을 것도 풍성하게 공급되며, 전기료 & 수도세 모두 무료라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쁜 여자도 만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김군은 출국하기 전부터 IS에 관련된 자료를 찾고, 복지와 급여에 대해 문의를 하며 IS와 접촉을 하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김군은 한국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습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헌데 김군은 누구의 영향을 받으며 살았습니까?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IS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IS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IS에 가담한 김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미혹에 빠져 가입했다가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까요? 후회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가족들을 버리고 떠난 삶이 정말 행복할까요?

누구의 영향을 받고 사느냐?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1)갈라디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과 귀신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비교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귀신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즐거움, 자기 만족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허나 성령의 영향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나”라고 하는 이기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이웃의 기쁨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귀신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이것은 하나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특히 불신자들이 많이 맺는 열매들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귀신의 영향을 받는 죄가 무엇입니까?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날 아이들을 보세요. 무엇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친구의 영향을 받고, 세상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삽니다. 게임, 스마트폰, 음란에 꽉 사로잡혀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도 지금 교회에 와 앉아 있지만,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어도 주님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마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질에 영향을 받음으로 주님을 배신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일반 예화2-사진을 한 장 보여 주면서...)

사진을 한 장 보여 드리겠습니다. 인터넷상으로 보신 분들도 있을텐데요. 이 사진은 한 초등학생이 지은 잔혹 동시라고 합니다. 제목은 “학원 가기 싫은 날”입니다. 그 내용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학원 가고 싶지 않을 때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그림은 피를 흘리며 아이 옆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엄마입니다. 엄마의 장기를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10대 아이에게서 이런 잔혹함이 나온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학원가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면 이정도 일까? 싶기도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잔혹시를 모아서 동시집으로 출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잔혹동시집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지요? 귀신에게 흉악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예화3)

아이들만 그렇습니까? 심심찮게 발생하는 군부대 총기사고, 이번에 서울 한 예비군 훈련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를 보십시오. 겉모습은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신은 혼미하고 우울하고 황폐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살벌한 경쟁사회 속에서 마음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의 절규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온통 세상이 뒤죽박죽 되어가고 있는 때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귀신들린 딸을 두고 있는 이 여인을 통해서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아무리 뭐라 해도 사랑이 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도움을 구하는 어머니의 말을 잘 보세요. “주 다윗의 자손이여” 그 다음 말씀이 무엇이지요?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이 맞습니다. 귀신들린 딸도 힘들겠지만, 더 힘든 것은 귀신들린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입니다. 산다는 것은 고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려면 세 가지 반지를 끼어야 한다고 합니다. ①Engagement Ring - 약혼반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약속반지를 끼어야 합니다. 서로간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②또 Wedding Ring - 결혼반지를 끼어야 합니다. ③또 하나는 Suffering을 끼어야 합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기에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예화3)결혼한 중년 부부들에게 물었습니다.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대답하길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그 무덤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뭐예요? 귀신이겠네요?

점 더 넓은 의미로 제가 생각할 때 살아가려면 세 가지 반지를 반드시 끼어야 합니다. ①하나는 Nurturing - 매일 자라가야 합니다. 키도 지식도 지혜도 자라가야 합니다. ②둘째는 Maturing - 성숙해 져야 합니다. 키만 자라면 안되고 속이 영글어야 합니다. 철이 들어야 합니다. ③셋째가 Suffering입니다. 사는 것은 고통입니다. 아픔입니다. Suffering을 끼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어머니를 통해서 아주 중요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아무리 삶이 고통스럽고 현실이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사랑이 답이라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은 “가치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가치가 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자신을 우습게 여기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죽이시면서까지 날 구원하신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헌데 세상은 온통 경제논리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경제논리로 본다면 귀신들린 사람이 사람입니까? 짐승입니까? 귀신들린 딸이 뭘 할 수 있습니까? 이 딸이 살아 있는 한 어머니에게는 고통입니다. 학교를 다닐 수 있습니까? 함께 시장을 갈 수 있습니까?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습니까? 귀신들린 딸이 미래가 있길 합니까?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치로 따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헌데 이 어머니는 이 딸을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님! 딸이니 사랑한 거지요 예! 맞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부터 사랑하기 원합니다. 믿음의 가족인 교인들을 서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성경예화2)

그러나 한 백부장의 믿음을 아시지요. 예수님이 내가 이런 위대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 있지요. 왜 이 사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나요? 이 백부장이 주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길 “사랑하는 내 종이 병들었나이다. 말씀만 하여 주사 내 하인을 고쳐 주옵소서” 이 사람이 사랑하기로 한 대상은 가족을 넘어 병든 하인입니다. 노예제도가 버젓이 살아 있던 시대에 병든 노예는 폐기처분 해야 할 대상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하인!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나 사랑하기로 한 이상, 책임지기로 한 이상, 사랑합니다.

(적용)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 사랑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행복한 것입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이 여인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러운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①포기가 없습니다. 사랑의 열정이 있는 것이 부럽습니다. 사랑에 포기가 없어요. 여인이 소리치며 도와달라고 해도 주님이 철저하게 무시하세요. 물론 주님이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요. 사랑한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 인생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내 가족들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②또 자신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아요. 숨기려고 하지 않아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이 말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헌데 숨기지 않아요. 포장하지 않아요.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요. 남들이 나의 힘듬, 연약함, 문제를 알면 어떻습니까? 주님께 나가지 않는 것이 문제지... 남들이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③또 이 여인은 밝아요. 주님이 냉혹하게 시험을 하세요.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왔지 너 같은 이방인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 인종차별적인 말씀을 하세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니까 이번에는 인격모독의 말씀을 하세요. 자녀들에게 줄 빵을 개들에게 주는 일은 없다. 그래도 이 여인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여인의 반응을 보세요. 이 여인이 하는 말을 보세요. 이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에서는 “말을 잘해서 구원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하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헌데 후에 기록한 마태는 ‘말’이라는 단어를 ‘믿음’이라고 바뀌었습니다. 이 여인의 말이 곧 믿음이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했지요.

①먼저 “주여”라고 불렀다. “퀴리오스”이 호칭은 로마 황제에게 붙이는 말입니다. 헌데 이 여인이 주님을 그렇게 부릅니다. 이 여인에게는 주님이 “퀴리오스”였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랍비여!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헌데 이 여인은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②또 개취급을 하시는 인격모독을 하시자 뭐라고 말합니까? “주여 옳소이다마는”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말은 “마는”입니다. “예! 옳습니다.” 하고 돌아갔다면... 기분 나빠서 돌아가든지... 상처 받고 돌아가든지 했다면... 헌데 이 여인은 “옳습니다마는”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다 맞지만 그래도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요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주님은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 부끄러운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 모습을 보면 이 여인은 참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결론)우리들이 정말 회복해야 할 것이 뭘까요? 이 삭막하고 혼미하고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믿음, 소망,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 사랑!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사랑만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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