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 이병수목사 | 2015-06-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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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마태복음 16:13-20 제목: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교회가 속한 장로교단의 신학의 토대를 놓은 분이 존 칼빈입니다. 칼빈이 27살에 “기독교강요”라는 신학서적을 발표합니다. “기독교 강요”는 복음의 진수가 담겨 있고, 기독교 신앙의 원리와 체계가 스며있으며, 종교개혁 이후에 나아가야 할 신학의 나침반이요 신앙의 길잡이 역할을 감당할 대작이라고 합니다. 이 기독교 강요 처음 1장이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면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1과의 제목이 "Without knowledge of self there is no knowledge of God" 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다는 것입니다. 2과에서는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없이는 나에 대한 지식도 없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려면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어디에서 물으셨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물으셨다. 로마황제 가이사와 헤롯 빌립왕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가 가이사랴 빌립보이다. 세상 한 복판이다. 불신자들이 있는 곳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주님은 알고 싶어 하신다. 듣고 싶어 하신다. 로마서 10장 9-10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에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은 시인되어야 한다.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예1)자녀들 - 주안이와 주영이 알고 싶다. 궁금하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부하기 전에 기도는 하는지? 공부하고 친구들과 노는 중에도 주님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예2)아내도 남편도 듣고 싶어한다. 알고 있지만 표현해 주길 바란다.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이다. (예3)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도 궁금하다.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수님을 정말 믿는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신앙고백의 삶을 사는지 궁금하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누구신지 궁금하다. 2.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베드로의 고백 - 16절이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21세기에도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 21세기에도 복음이다. ①복음이란? 죄-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죽-우리는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헌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십-그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영-이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영-잃어버렸던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또한 우리들을 홀로 두시지 않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동-성령님은 내 마음에 오셔서 영원토록 동행해 주시고 계십니다. ②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5가지를 믿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무엇을 가르쳤느냐?가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기독교에는 기독론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심 - 성육신 /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구원해 내고 말겠다. ⓑ십자가의 죽으심 /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부활하심 /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원하신다. ⓓ승천하심 /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신다. ⓔ재림하심 / 영원한 승리를 믿는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능력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예화)한 대학교 운동부 선수가 기말고사를 보기 위해서 강의실에 들어갔다. 운동부 선수는 공부를 안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보았다. 열심히 시험문제를 풀고 있는데 마지막 문제가 자신의 학교이름을 한문으로 쓰는 것이었다. 도무지 한문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헌데 다른 학생들은 자신을 보면서 키득키득 거렸다. 알고 보니 자신이 입은 운동복 등판에 학교이름이 한문으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지를 못해서 답을 쓰지 못했다. 생각해 보라. 정답은 갖고 있으면서도 쓰지 못하는 이 운동부 학생이 우리들은 아닌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능력을 맛보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2)예수님만을 구원자로 삼으라. 우리는 약하다. 그래서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화)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야이로의 외동딸이 병들었다. 야이로는 에수님을 모시고 가고 있었다. 헌데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자 때문에 지체되었다. 결국 야이로의 집에서 소식이 왔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그리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했다. 헌데 주님은 잔다고 하셨다.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우리들도 환경을 어떻게 보는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잔다고 생각하는가? 죽으면 아무런 가능성도 없다. 헌데 잔다고 할 때는 오셔서 깨워 주시면 된다. 주님이 오셔서 달리다굼하여 주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다. (3)살지도 못하면서 고백만 해서 되나? 된다. 베드로를 보라. 17 - 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놀라운 칭찬을 들었다. 축복을 받았다. 헌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넘어졌다. 고백한대로 살지 못했다. 계집종 앞에서도 넘어졌다. 그래도 베드로는 기도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결국 성령의 능력을 받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예수가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했다. 3.예수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나는 누구인가?를 분명히 안다. 내가 누구인가? 를 말할 때... 경제적인 것이 우선인 사람은 ‘저 사람은 부자다. 돈이 많은 사람이다. 잘 사는 사람이다, 못 사는 사람이다’라고 판단을 할 것이다. 경제력이 정말 나인가? 신분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하는 일이 뭐냐? 직업이 뭐냐?’로 판단할 것이다. 학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일류대를 나왔느냐? 학위가 있느냐?’로 판단한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예쁘냐? 멋지냐? 무슨 옷을 입었느냐?’에 관심을 갖을 것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은 예수를 믿는가? 안 믿는가?’에 관심을 갖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려면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1)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예)아빠, 엄마가 주는 힘이 있다. 주영이가 친구와 다투어서 학교 선생님에게 아들을 대신해서 혼이 난다. 주의를 듣는다. 아들을 대신해서 책임을 진다. 이것이 아빠요 엄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이시다. 우리의 아빠가 되어 주신다. (2)나는 하나님의 핏 값으로 구속받은 자이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대신 값을 치러준다. (3)나는 사랑받는 자다. (4)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를 따라가기로 한 자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5)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베드로의 또 하나의 고백 - 사랑합니다. 주님이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 중에는 내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그렇게 살고도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뻔뻔하게 말 할 수 있나?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겨자씨만한 사랑이 있어도 고백해야 한다.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고백해야 한다. 그 고백을 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주님이 들어오셔서 일하신다.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뼈아픈 마음만 있다면 주님은 받아 주신다. 상담사례 질문 - 저의 마음에는 기쁨과 참된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탓에 청년이 되면서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여전히 진실하지 못한 마음에 섬기면서도 회의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쁨과 감사로 섬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잠시 멈추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섬겨야 사랑일까요? 대답 ①먼저 사랑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자리에서 무조건 잘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박관념을 갖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기뻐하십니다. 1에서 10까지의 역량이 있다면 무조건 10이 되어야만 하나님이 사랑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역량이 1이면 1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사랑이요 충성입니다. ②사랑은 진실된 마음입니다. 지금의 마음을 공동체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목사님은? 부모님들은? 하나님은? 괴로우면 괴롭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 마음을 속이면 안된다. ③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 내가 풀어야 한다. 성령님은 영이시기에 내 마음안에 들어오신다. 내 마음안에 오신 성령님과 교제하면 힘을 주신다. ④고민하는 것이 사랑이다. 믿음이다. 우리는 다 완전하지 않다. 결론 - 이 고백을 갖고 성찬식에 참여하길 바란다. 예수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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