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하며 삽시다 | 이병수목사 | 2015-09-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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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마태복음 18:10-14 제목:사랑만 하며 삽시다 마하트마 간디가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것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디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교회를 찾아갑니다. 헌데 유색인이라고 영국인들이 교회출입을 막더랍니다. 이 때 간디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르게 살고 있구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따랐지만,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인들의 삶이 너무나 다르기에 사람들이 실망을 합니다. 우리들을 돌아 보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는 관심은 뒷전이고, 예수님을 복 주시는 분, 내 소원 이뤄주시는 분으로만 믿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진짜 목적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헌데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이 내 소원을 이뤄주는 분으로만 믿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섬기러 왔다. 그리고 나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우리는 섬기려고 하지는 않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싸우면 용서 안해요. 화해 안해요. 평생 원수처럼 살아요! /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해요. /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일 때가 있어요.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좋은데 기독교인들은 싫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도 좋고 기독교인들도 좋다는 생각을 갖도록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살아내야 할 주님의 뜻은 뭘까요? 1.첫째로 누구를 대하든 주님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10절이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작은 자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을 주님이라 생각하고 대해라. 사람으로 여기면 사랑하기 힘들지요? 헌데 사람에게 하는 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영생과 영벌에 들어갈 자를 나누시는데 기준이 두 가지입니다. 믿음과 사랑입니다. ①영생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②헌데 예수님은 또 한 가지를 더 보십니다. 사랑입니다. 얼마나 사랑했느냐?를 보십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사랑의 행위를 보시는 건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당연히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사랑의 삶을 살았는가?를 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의 이야기) 아내의 신장을 이식 받은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불신자입니다. 아내와 딸 세 식구가 살았는데, 오랜 투병생활로 가정이 깨졌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가장 역할을 못하니 가정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딸은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장이식을 받았으니 얼마를 더 살지 모르겠습니다. 53세의 나이에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남들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도 미지수입니다. 더욱이 예수를 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순간 헛된 일을 한 건 아닌가?하는 마음이 듭니다. 신장 하나를 떼어 주었는데, 그가 멋지게 살아줘야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건강을 얻어서 잘못 살면 안 준 것만 못하지 않습니까? 그 분이 잘 못 살아서 아내의 희생이 헛되게 되면 어떻게 하나?하는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니다. 그 때 주님께서 금방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신장을 하나 떼어 준 것은 그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나에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믿음이 생기니까 감사가 생겼습니다.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한 걸까?하는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적용)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서 사도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에게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아시니 된 것입니다. 주님에게 한 것이니 섭섭할 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예1)나이드신 부모님들! 내게 남겨주실 것이 없다해도 잘 섬겨야 합니다. 부모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2)부부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늘 뜨겁지 않습니다. 50-60이 되어서도 보면 두근거리고, 손만 만져도 전기가 통하면 죽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전기를 끄신 것입니다. 늘 사랑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이라 믿고, 주님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힘듭니다.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속상합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당신은 뭐냐?며 화가 납니다. 주님에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사랑하십시오. (예3)사람들은 계산이 빠릅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인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누구를 대하든지 주님에게 하듯 하면 사람을 업신여길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아시면 됩니다. (예4)원수라도 주님에게 하듯 하십시오. 다윗이 좋은 예입니다. 다윗의 원수는 집안 식구였습니다. 장인인 사울왕과 아들인 압살롬이었습니다. 헌데 다윗은 이들을 원수로 대하지 않습니다. 사울 왕에게 두 번이나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데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이유는 사울을 하나님을 대하듯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사람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존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존경해서 용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사랑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2.둘째로 사랑만 하며 삽시다. (1)누가복음 10장에서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다시 물으셨습니다. 율법학자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정답이다. 그렇게 살아라” 우리 성도들의 관심! 성도들의 고민! 우리의 열심!이 사랑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잃은 양 한 마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느가입니다. 양 백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 버리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예화)캐나다의 페드스톤이라는 믿음의 자매가 혀암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혀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혀를 절단하기 전에 의사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잠시 후 당신의 혀를 절단하게 되어 말을 못하게 됩니다. 혀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라면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그 때 그녀는 말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도 이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잘 산 인생입니다. 믿음의 승리를 한 인생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아니 오늘 하루 하루의 삶을 마감할 때 진심으로 “주님 사랑합니다.” 또한 주님이 붙여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구원받은 인생입니다. (2)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동물과 전혀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흙으로 육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숨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만 영을 불어 넣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들도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영은 영으로만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사람과 교제하셨지 동물들과 교제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을 우리들이 사랑하지만,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②또한 하나님이 영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사랑입니다. 사랑의 성품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들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이 뭘까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7-11절입니다. 392면입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3)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신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초라하게 인색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저는 교인들 중에서 큰 교회 다니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자신이 큰 교회 다닌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합니다. 서울에 가면 사랑의 교회 교인이다. 온누리 교회 교인이다. 명성교회 교인이다. 우리 교회는 매 주일 몇 명이 모인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허나 이것은 전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큰 교회를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지만, 내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우리들의 진짜 자랑은 얼마나 사랑하느냐?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느냐? 얼마나 졌느냐? 얼마나 양보했느냐? 얼마나 용서했느냐? 얼마나 섬겼느냐?여야 합니다. 헌데 우리는 헛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이지만,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의 목적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면 우리 교회는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5)4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질문이 무엇입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주님이 떠나가시면서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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