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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청년과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이병수목사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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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0:1-16

제목:부자청년과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오늘 본문은 포도원 품군의 비유입니다. 오늘 본문은 19장과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부자청년과 베드로가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총평으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질문이 무엇이지요?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베드로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즉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내용설명)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포도 수확철이 되었습니다. 많은 일손이 필요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장터로 나가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하고 사람들을 포도원에 들여 보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을 일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 오전 6시에 나가 사람들을 포도원에 들여 보냈습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제 삼시 즉 오전 9시에도 장터로 갑니다. 그것 끝이 아닙니다. 12시에도, 오후 세 시에도 나가서 사람들을 포도원으로 들여 보냅니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제 십일 시 즉 오후 5시에도 나가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은 한 시간 밖에 일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포도원에 들여 보냅니다.

정말 이상한 주인입니다. 일을 다 마치고 난 다음에 가장 늦게 온 사람부터 임금을 주기 시작하는데,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 품삯을 줍니다.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 하루 품삯을 받는 것을 보고, 이른 아침부터 와서 수고한 사람들은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헌데 한 데나리온 밖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주인을 원망합니다.

우리 같아도 주인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헌데 원망을 들은 주인이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너와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지 않았느냐? 내가 나중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은 내 뜻이니라. 내가 선한 일을 했거늘, 네가 왜 악하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깨닫기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1.첫째로 포도원 주인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는 어떤 답을 주는 거예요? 부자청년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지요. 그러나 구원은, 영생은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기 실력으로 들어 왔습니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주인이 불러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포도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 은혜였습니다.

 

부자청년을 생각해 보세요. 세상적으로 볼 때 완벽한 사람 아닙니까? 참 부러운 사람입니다. 다 갖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헌데 이 사람에게 없는 것이 있어요? 내가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몰라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은혜였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은혜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눈을 열고 보면 내 삶을 감싸고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가 나를 덮어 주셨기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은혜가 임할 것을 확신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또 포도원 주인은 우리 주님이세요.

(1)포도원 주인을 보면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뭐예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을 보세요. 포도원 주인은 돈을 벌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벌게 해 주려는 사람 같습니다. 포도원이 목적이 아닌 분입니다. 자기 포도원을 위하여 일꾼을 고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꾼들을 위하여 포도원을 운영하는 사람 같습니다. 포도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으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전 9시에도 12시에도 오후 3시에도 심지어 오후 5시에도 장터로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입니다.

(적용)저는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무결석주일과 내년도 기도/전도대행진을 앞두고 구원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라도 교회로 들여보내기 위해서 수고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포도원 주인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마음에 걸린 것입니다. 일하지 못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그 식솔들은 그날 다 굶어야 합니다. 빈손으로 돌아갈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적용)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십시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살리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너무 우리들이 빡빡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예배를 통해서 덧입으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베푸십시오.

 

2.둘째로 먼저 온 사람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이른 아침 식솔들을 생각하면서 장터로 나갔을 것입니다. 장터에 있는데 한 사람이 오더니 우리 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일찍부터 써 주시는 사람이 있으니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힘들지 않게 일을 했을 것입니다. 헌데 이 사람이 언제부터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합니까?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시선을 주인 되신 주님에게 두었을 때는 감사할 것 뿐이었습니다. 헌데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자 원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주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2)주님이 먼저 온 사람에게 바라시는 것은 뭘까요? 따뜻한 마음을 갖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나중 온 사람이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주인을 원망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주인 훌륭하다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이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허나 그리스도인이란 이웃이 밭을 사도 배가 아프면 안됩니다. 이웃이 밭을 사면 오히려 기뻐하고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화)우리 교회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저는 부족하지만, 지금도 주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 교회들도 부흥하게 해 달라고... 그들에게도 일군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제가 잘나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마음이기에 본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에게도 식속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3)베드로의 질문은 뭐였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으니 무슨 복을 주시겠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헌신했으니 무슨 보상을 해 주시겠습니까?’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면 무슨 상이 있습니까?’

이 질문을 잘 생각해 보세요. 이런 질문이 가능할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결혼하면 어떻게 해 주겠느냐?

-부모가 내가 널 키워주면 나중에 보상이 뭐냐?

이 질문이 잘못된 이유가 뭐지요?

! 사랑한 것이 보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산 것이 기쁨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살았으니 다른 보상을 바라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자체가 영광인 것이지요. 엄마라 불리는 것이 보상이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체가 복이지요. 예수를 믿은 것이 이미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것이 공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서 수고할 수 있는 것이 이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몰랐어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것이 이미 복을 받은 것인데... 보상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먼저 온 사람은 아침 일찍 선택받아서 포도원에 와서 섬기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이 기쁨이고 감사고 보상인 것입니다.

(적용)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먼저 와서 수고한 자가 있고, 나중 온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와서 수고했다고 해서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은 먼저 불러 주시고, 써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 수고한 것이 복입니다.

우리들이 맛봐야 할 기쁨은 무엇입니까?

하인들이 맛본 기쁨입니다.

갈릴리 혼인 잔치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누구일까?

탁자에 앉아서 좋은 포도주를 먹으면서 대접받는 사람일까요? 세상은 이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맛있는 포도주 먹으면서 대접받으니 성공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주는 기쁨을 위해서 살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정말 누려야 할 기쁨은 하인들이 맛본 기쁨입니다.’ 하인들이 맛본 기쁨이 뭐예요? 예수님의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본 것입니다. 수고하는 자들이었지만,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비밀을 갖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있으십니까?

우리들의 행복은요? 자리 깔고 앉아서 맛있는 포도주 먹으면서 대접받는 것이 아니구요? 일어나 소매 거두고 섬길 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음식 해 먹이는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적용)섬김의 본을 보여 주세요.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성도들이 되어 주세요.

 

3.셋째로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후 다섯 시!가 갖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떤 소망도 기대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오후 다섯 시에 나왔을 때 그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용)우리 주님은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후 다섯 시에도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지금 몇 시입니까?

오늘도 써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대하는 오전 9시 같은 인생입니까? 그렇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 그러나 우리 중에는 오후 다섯 시 같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오후 다섯 시 인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인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내 신앙도 깔아질 때로 깔아진 오후 다섯 시 같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들이 포기하지 않길 바라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은 오후 다섯 시에도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 오후 다섯 시 같은 인생을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깊은 절망속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을 때 찾아오셔서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1)<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송병주 목사는 말합니다. 사탄은 성도를 평지에서 믿어 넘어뜨리지 않는다. 사탄은 벼랑 끝에서 밀어 떨어 뜨린다. 그러나 성도들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여호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망을 놓치 마라는 것입니다.”

송병주 목사님은 부모가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유학을 갔지만, 한국으로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길이 막혔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자폐아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때 든 마음이 내가 오후 다섯 시 같은 인생이구나!” 내가 일어설 수 있을까? 내 삶에 빛이 비출 수 있을까? 그 때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길이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헌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오후 다섯 시 같은 자신에게 찾아오셨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품군들 중에 누가 주인되시는 주님께 감격하고, 뜨겁게 사랑했을까요?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일 것입니다. 신앙생활한지 얼마나 되었느냐? 연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누가 먼저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주인되시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어떠냐? 주님을 향한 감격과 감사가 있느냐? 그래서 섬기고 사랑하는 따뜻함이 있느냐? 바로 그 사람이 먼저 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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