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자 | 이병수목사 | 2015-11-08 | |||
|
|||||
2015년 11월 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7:32 제목: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헌데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를 끝까지 홀로 지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시고 넘어지셨습니다. 밤새도록 채찍에 맞음으로 예수님은 지칠대로 지쳐 계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셨습니다. 한 발작도 더 가실 수 없으셨습니다. 육중한 십자가에 깔려 마치 죽은 시체처럼 예수님은 쓰러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예화)1세기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250만명이 모였다고한다. 1.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리비야 지역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당시 구레네 지역에는 집단 이주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도 유월절이 되어 자녀들과 함께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헌데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온 예루살렘에 퍼진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구경하기 위해서 나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나가다가” - 예루살렘 성지를 둘러보고 예수를 구경하기 위해서 나간 것입니다. 헌데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시몬이 멀리 있었다면 로마병사가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시몬은 처음엔 구경꾼으로 예수를 따라간 것입니다. 헌데 결국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주님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누가 져야 합니까? 제자들이 져야 합니다. 아니 베드로가 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네가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마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헌데 예수님이 붙잡혀 수난을 받으실 때 가까이에서 따르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에 보면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멀찍이”라는 한 마디에 예수님과 베드로의 영적 거리감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적용)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헌데 가까이에서 따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멀찍이에서 주를 따르는 자도 있습니다. “멀찍이”에서 예수님을 따르면 반드시 틈이 생깁니다. 사랑이 흔들리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십자가만 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쉽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헌데 오늘 날에는 성도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퇴준비를 열심히 합니다. 은퇴 후에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노후준비를 합니다. 헌데 노후 후에 천국에 갈 준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돈 벌기위해서 정말 열심히 삽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갖 수모를 다 참아 냅니다. 헌데 주님 위해서는 얼마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천국에 보화를 쌓는 일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관심이 온통 땅에 것에 있습니다. 하늘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절 부절을 합니다. 헌데 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은 까마득히 잊고 살아갑니다. 십자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실 때에 가까이에서 주를 따르십시오. 주님을 가까이에서 따르는 방법은 ①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결정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면 절대로 안됩니다. ②예배의 자리를 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주님과 멀어질 수 없습니다. ③늘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주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지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기꺼이 십자가를 지면 그 십자가가 내게 복이 됩니다. 2.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였지만, 결국 큰 복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에 대한 기록이 오늘 본문 외에 한 곳에 더 나옵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 마가는 좀 더 구레네 시몬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을 소개할 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훗날 마가가 이 사건을 기록할 당시 알렉산더와 루포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시는 길에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져야 하는 십자가였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시몬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믿음이 그 아들들에게도 전해져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알만한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16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들의 동역자들를 밝히고 있습니다. 13절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학자들 중에는 루포는 동명이인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학자들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는 곧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며, 아내였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알렉산더 루포 두 아들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와 아들들은 초대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들이 되었고, 사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들로서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예화)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12아들을 차례로 축복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읽어 보면 12아들이 똑같이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두 아들이 축복을 집중하여 많이 받습니다. 한 사람은 요셉입니다. 헌데 요셉보다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 유다입니다. 아버지가 축복한 대로 역사속에서 실제로 유다와 유다자손들은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유다가 이렇게 큰 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정신으로 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남을 살리려는 십자가 정신을 갖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예①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르우벤은 피를 보지 말자! 대신 구덩이에 집어 넣어 버리자! 그래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유다는 장사군들에게 팔자고 합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살리기 위함입니다. 형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요셉을 살리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②가나안 땅에 기근이 너무 심할 때에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가야 합니다. 헌데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헌데 아버지가 절대로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 때 유다가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한 마디로 베냐민이 죽을 일이 있으면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베냐민을 살리고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주목하신 이유는 이것입니다. 유다가 복을 받은 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④후에 사사기에 보면 가나안과 전쟁을 치룰 때에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이 유다지파입니다. 선봉에 선다는 것은 가장 많이 죽을 확률이 많은 것입니다. 헌데 인구조사를 하면 늘 후손들의 수가 많아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모세 - 차라리 내 이름을 지워 주옵소서 십자가는 지는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 삽니다. (적용)유다 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자 이스라엘 전체가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한 사람만 가정에 있어도 그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한 사람이 교회에 있으면 교회는 평안하고, 부흥을 합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3.오늘 날에도 예수님은 십자가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의 정신이 희미해 지는 것 같아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교회의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기 전 마지막으로 산정현 교회에서 설교하신 설교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이다음 주님께서 ‘너는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너는 내가 네게 맡긴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십자가를 질 사람이 필요합니다. 2016년도에 십자가를질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음 주일에는 2016년도 교회 봉사와 기도/전도의 짐을 지는 작정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교회를 부담 없이 다니시면 편안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영적 신비를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행복을 맛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주님이 주신 십자가라 믿고 감당하는 사람들은 힘은 들지만, 영적으로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는 고생을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시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