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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믿음의 실체를 정확히 알라! 이병수목사 201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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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가복음 10:46-52(20:29-34 / 18:35-43)

제목:내 믿음의 실체를 정확히 알라!

요한복음 2030절에는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헌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 저자들은 각자마다 저술목적에 따라 필요에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선택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4복음서를 연구해 보면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있고요. 마가나 누가나 요한에게만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헌데 오늘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세 명의 저자들이 다 기록했어요. 왜요? 그 만큼 중요한 사건이라는 증거이지요. 오늘은 마가복음을 본문으로 하고, 마태복음을 참조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주목하길 원하는 것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시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52절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소경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귀신들린 자나 정신질환자는 인격적으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주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날도 정신병자나 귀신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강권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에게는 반드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기적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그릇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믿음이 가장 좋습니다. 본인의 믿음으로 응답받아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분명히 알 수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믿음고백이 불가능할 때 부모의 믿음이나 주변사람들의 믿음을 통해서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바디매오가 가지고 있던 믿음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기적을 부르는 믿음, 응답을 얻는 믿음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내 믿음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46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바디매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 맹인 거지입니다. 맹인이라는 것과 거지라는 것입니다. 왜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셋이서 똑같이 맹인 거지 바디매오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는 걸까요?

말씀의 배열을 잘 봐야 합니다. 수난예고 후 두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바디매오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마태 마가 나구는 제자들의 믿음과 바디매오의 믿음을 비교하려는 의도가 있는 거예요.

제자들은 예수님은 3년간 공생애 사역을 하셨어요. 가르치시고, 설교하시고, 병을 고치셨어요. 헌데도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의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이지요?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좌편과 우편에 앉고 싶은 성공이예요. 더 높아지고 싶고, 더 대접받고 싶고, 더 유명해 지고 싶은 내 소원을 채워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어요. 이것이 제자들의 믿음의 실체예요!

  헌데 제자들에 비해서 겉으로 볼 때 천하디 천한 맹인이요 거지인 바디매오는 어때요? 47절에 보세요.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나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태복음 2030절에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제자들의 믿음과 비교해 보세요. 비록 맹인이요 거지이지만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 어떤가요? 예수여!” 주여!”입니다. “예수여!”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주여퀴리에입니다. 이 말은 예수가 메시야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지금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제자들과 바디매오의 믿음을 비교하면서 우리들의 믿음의 실체를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맹인인가? 누가 진짜 거지인가?”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1)누가 맹인입니까? 눈은 뜨고 본다고 하나,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이 맹인입니까? 질병으로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은 활짝 열려 바디매오가 맹인입니까? 진짜 맹인은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2)또 누가 거지입니까? 거지는 줄줄 모르고 달라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받으려만 하는 사람이 거지예요. 그러면 누가 진짜 거지입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하는 바디매오가 거지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께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만 하는 제자들이 거지입니까?”

(적용)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만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다 받았습니다. 헌데 예수님이 주신 사랑은 모르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가 소경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소경입니다.

혹 우리가 거지 아닙니까? 늘 달라고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르면 나와서 소원을 들어주는 힘 있는 지니 정도로 주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내 소원성취, 내 문제 해결사로 믿고 있다면 우상을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늘 달라고만 하는 영적 거지가 우리들은 아닙니까?

우리들의 믿음의 실체를 정직하게 봅시다. 바디매오처럼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주님이 내가 필요한 것을 모르십니까?

2.둘째로 바디매오의 믿음은 어떤 저항도 뚫어 버리는 간절한 믿음입니다.

48절을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더 크게 소리지르다늘 말은 크라제인입니다. 크라제인은 물러서지 않고 더 고래 고래 소리 지른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한 원리가 있습니다. 불변의 진리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저항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에 부딪히고 어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주저 앉을 것입니까? 낙심하고 포기할 것입니까? 아니면 바디매오처럼 저항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부르짖을 것입니까?

바디매오가 큰 저항에 부딪혔을 때에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간절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대에 부딪히고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내 간절함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데도 계속할래? 이렇게 어려운데도 믿을래? 이래도 포기안해?’하는 시험입니다. 이런 방해물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은 간절함뿐입니다. 너무 간절하니까 내 고통을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니까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적용)저는 성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기도하다가 낙심합니까? 포기합니까? 그렇게 힘들다면서도 왜 주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새벽에 나와 기도하지 못합니까? 피곤해서요? 바빠서요? 간절함이 없어서는 아닙니까? 아직 살만하다고 생각하시니까 매달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반대와 저항도 뚫어버릴 만큼의 간절함을 갖어 본적이 있으십니까? 이 간절함이 믿음입니다.

방해하는 사람들, 힘들게 하는 사람들 원망하지 마세요. 바디매오가 사람들 원망했습니까? 당신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불평했나요? 아니예요. 그러면 자책했나요? 난 불구자지! 난 가난뱅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난 실패자야!하지 않았어요. 주님을 만나야 하는 간절함 하나가 모든 한계를 뚫어버렸어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뒤로 물러서지 않았어요.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나는 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디매오처럼 주님께 더 부르짖는 것입니다. 왜요? 간절하니까요?

(예화)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딸이 당시 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사상교육을 받고 데모에 깊히 참여를 합니다. 아버지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집안 망하게 할 일 있느냐?”며 노발대발을 합니다. 엄마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라! 다시는 안한다고 해라!”해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결국 사복경찰에 잡히게 됩니다. 딸이 경찰에게 붙잡히는 것을 엄마가 봅니다. 쓰고 있던 우산을 던지고 쫓아와 딸 앞을 가로막습니다. “우리 딸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한 딸인지 아십니까? 부모 고생 안시킨다고 법대갈 수 있는 아인데, 장학금 받으려고 사범대를 갔습니다. 이리 착한 딸을 잡아가면 안됩니다.”하며 창피한 것도 모르고 달려듭니다. 그러면서 딸의 멘트가 나옵니다. “왜 엄마는 자존심도 없느냐고... 다른 엄마처럼 고상하게 행동하지 않느냐고... 정말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헌데 엄마에게는 자신보다 더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우리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엄마는 자존심을 버린다. 자신의 고상함보다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기에 창피함도 무릅쓴다. 난 이제는 안다. 자존심을 꺽지 못하는 것은 아직 간절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사랑하면 자존심도 다 버린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이제는 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존심을 꺽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데 내 생각과 자존심이 뭐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이 생깁니다. 힘든 일이 생깁니다. 어떤 저항도 뚫어 버리셔야 합니다.

 

3.셋째로 내게 있는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만 생각합니다. 없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해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고 합니다. 가진 것까지 능력을 다 부인합니다. 우리는 없는 것도 있지만,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바디매오는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디매오는 눈은 없지만 귀와 입이 있습니다. 두 발과 손이 있습니다. 그것을 갖고 주님께 나갑니다. 말할 수 있어서 부르짖습니다.“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합니다. 들을 수 있어서 오라는 말을 듣습니다. 걸을 수 있어 용수철처럼 뛰어 일어나 달려갑니다. 있는 것을 활용했습니다. 있는 것으로 주님께 나갔습니다.

(1)구족화가들을 보세요. 손이 없으니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립니다. 발가락에 붓을 끼고 그림을 그립니다. 있는 것을 사용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2)예화 - 일급 뇌성마비로 몸도 가누기 힘든 송명희 시인의 라는 찬양을 아시지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것 깨달았네

뭘 깨달은 것입니까?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던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시를 짓습니다. 노래를 합니다. 기도를 합니다.

 

(적용)우리들도 노래할 수 있잖아요. 사랑할 수 있잖아요. 용서할 수 있잖아요. 기도할 수 있잖아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십시오. 음식을 잘 만들면 맛있는 음식을 나누세요. 설거지를 잘하면 주방을 섬기세요. 말을 잘하면 전도를 하세요. 아이들을 좋아하면 교사를 하세요.

있는 것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부터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하나 믿음입니다.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1)나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지? 달라고만 하기 보다 어떻게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믿음인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2)또한 반대가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저항이 있다해도 뚫어버리는 간절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으로 낙심하지 마세요. 주님이 이미 주신 것, 내게 있는 것으로 시작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주님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시고, 없는 것을 채워 주시는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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