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성전이다 | 이병수목사 | 2015-12-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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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1:12-17 제목:자기 이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성전이다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어 쫓으시고,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일명 성전청결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일을 하셨을까요? 먼저 중요한 것은 성전이 무엇인가?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사실 이것은 성전에 대한 일대 혁명적인 개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만을 절대시 하던 당시에 사도 바울은 성전에 대한 참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전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①첫째로 예수님을 믿는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옆사람과 인사-‘당신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②둘째로 내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와 계십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내 안에 자아만 있었습니다. 헌데 예수님을 내 마음 안에 모시면서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사시는 이는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③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예화)이따금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 마시는 것이 죄입니까?” “담배 피우는 것은 개인의 취향 아닙니까?” “성경 어디에 술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가 있습니까?” “캐톨릭 신부님들이나 성당을 다니시는 분들 중에도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기독교만 그럽니까?” 예, 한국교회 초창기 때는 술이나 담배를 교회 안에서 허용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년에 몇 차례씩 사경회를 했습니다. 사경회를 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삼삼오로 모여서 담배를 나눠 피웠습니다. 기도회를 하고 나서 막걸리 한잔씩을 했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주여! 주여! 통성기도 하고 나서 막걸리 한잔 한다? 성경공부 하다가 잘 안풀리면,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 다시 한다? 지금은 상상이 안가는 일이지요. 그 때는 그랬습니다. 헌데 점점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술·담배를 해서는 신앙생활을 도저히 건전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술독에 빠지고 담배를 피우고 도박을 하는 등 온 나라가 멍이 들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 믿는 사람까지도 술·담배를 하는 모습은 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지도자들이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901년에 장로교선교사공의회는 신앙생활 지침서를 만들어 금주·금연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신앙지침서에는 7대 강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을 반드시 암송하고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해야만 세례를 주었습니다. 7대 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예배출석을 철저히 할 것, 둘째는 성수주일 할 것, 셋째는 부모에게 효도할 것, 넷째는 일부일처를 지킬 것, 다섯째는 인가귀도 할 것, 즉 자기 가족을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근면성실 할 것, 일곱째는 금주·금연할 것. 이렇게 일곱 가지입니다. 그리고 몇 년 뒤인 1914년에는 담배를 하는 자는 절대로 장로로 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포했습니다. 술과 담배는 죄냐 아니냐로 풀면 안되고요? “내가 누구냐?”로 풀어야 합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술과 담배로 더럽히면 되겠습니까?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음란하게 살면 되겠는가? 내 마음 안에 성령님이 계신데, 음란한 생각을 품고,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성전인데 근심하고 걱정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불만을 쏟아낸다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송소리가 흘러 나오고, 감사하고, 섬기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용)주님이 우리 교회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요? 혹여 분노하시지는 않을까요? 난 이런 예배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둘러 엎으시지는 않을까요? / 주님이 목사인 나를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주님이 거하시기에 불편하시지는 않을까요? / 우리 사랑하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 청년들, 청소년 아들 딸들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주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전 된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나의 이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신 것입니까?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찾아 오면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세를 내야 합니다. 헌데 멀리에서부터 제물을 끌고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립니다. 헌데 짐승 값을 터무니 없이 많이요구하는 것입니다. 성전세를 내려면 반드시 유대인화폐로 내야 합니다. 당시 로마의 지배아래 있던 때라서 로마화폐를 사용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와서 환전을 해야 합니다. 그 때 환전수수료를 부풀려서 받았습니다. 원래는 멀리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즐거이 예배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헌데 타락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서로 짜고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구한 것입니다. 예배 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 ?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성전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전된 저와 여러분들이 내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툼이 왜 생깁니까? 나의 이익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손해를 보고 남을 배려하면 다툼이 사라질텐데 그렇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화1)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왜 싸웁니까? 자신의 이익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기에 싸웁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통큰 결정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 롯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배려를 합니다. 조카 롯에게 기꺼이 양보를 합니다. 보세요. 결국 하나님은 누구를 축복하십니까? 남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예화2)설교 준비를 하다가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불현 듯 떠올랐습니다.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책 중에 하나인데, “바보 청년의사 안수현”이라는 책입니다. 안수현씨는 고려대 의예과 91학번입니다. 공부를 잘 했던 사람이지요.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내과 전문의를 취득했습니다. 안수현은 안타깝게도 33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까운 청년 하나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락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헌데 장례식에 손님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왔습니다. 영락교회에서 장례식을 한 이래에 한경직 목사님 이후 가장 많은 조문객들이 왔다고 합니다. 장례식에 찾아온 손님들이 4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잘 산 인생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내가 죽고 난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느가를 보면 압니다. 종종 장례식에 가보면 손님이 너무 없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33년의 짧은 인생을 산 사람이 어떻게 4000명의 조문객이 올 수 있었을까요? /병원 앞에서 구두를 닦던 한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안수현의사 선생님은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늘 자신에게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손을 잡아주면서 춥지 않으세요? 웃으며 인사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병원 빨래를 하시는 아주머니는 안선생님은 의사인데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와서 웃으면서 ‘식사는 하셨어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인사를 건네주고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환자들이 퇴원한 후에도 찾아가 건강은 어떤지 살피고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간호사의 실수로 비싼 약병들을 깨뜨렸습니다. 그 일로 간호사는 징계를 받을 위기였습니다. 헌데 바보 청년의사는 자신이 실수로 그렇게 했다고 하며, 알바진료를 하면서 다 갚았다고 합니다. /이 청년의사가 죽고 난 후에 수간호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간호사는 간호사들의 대장이입니다. 파워가 굉장합니다. 의사들도 함부로 못합니다. 헌데 그 수간호사가 레지던트 의사의 따뜻하고 거룩한 삶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정말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따뜻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이 사람은 바보입니다. 누가 진짜 바보입니까? 세상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33년 밖에 살지 못했다고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았느냐입니다. 33년을 살아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나의 이익이 아닌 남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들이 살아야 삶입니다. (예화3)우리들의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내 자식만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마시고, 내 자식으로 인해서 친구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내 가정으로 인해서 교회가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내 남편이 장로요 집사요 내 아내가 권사요 집사인데 내 남편과 아내로 인해서 우리 미래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내 남편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내 남편으로 인해서 남편 직장 동료들이 행복하고,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한 번 구해 보세요. (적용)성탄의 기쁨을 나누기 원해요. 성탄절 헌금 일부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알고 계신 분들 중에서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겨울 잠바라도 사드렸으면 좋겠는 분, 쌀한 포대라도 갖다 드릴 분, 연탄이나 등유기름을 나눠 드렸으면 하시는 분들을 알고 계시다면 추천해 주십시오. 문자나 메일로 알려 주세요. 선별하여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많지 않지만 조금이나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쓰임받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추천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면 동사무소를 통해서 성탄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결론)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동영상 하나를 보았습니다. 수능을 마친 고3교실을 찾아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먼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시간이 일 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당신의 꼭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과 5억 원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 거의 대부분의 고 3아이들은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자신의 꿈을 위해 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5억 원 돈이 있어야 뭐하느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가고 싶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실의 조명이 꺼지면서 화면에 고 3 아이들의 아버지들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들에게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아버지들은 선택했습니다. 뭘 선택했을까요? 5억원이었습니다.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내 꿈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얼마든지 꿈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요? 남겨진 가족들 살아갈 수 있는 종자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고 3 아이들과 아버지들의 차이가 뭐죠? 고 3 아이들은 자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직 어리니까요? 그러나 아버지들은 자기 보다 가족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성전을 정의하실 때 “내 집”이라는 말이 너무나 좋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집입니다. 집에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자신의 꿈보다 가족들을 위해서 5억 원을 선택하는 희생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곳이 가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내 주셨습니다. 5억 원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도 사랑을 받은 자답게 사랑하며 살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집이 되길 바랍니다. 집은 용서가 있는 곳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마음에 안 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이니까 사랑하길 원합니다.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아름다운 집이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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