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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이병수목사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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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2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3:1-3

제목: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마태복음 23장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성격이 온유하시고 겸손하며 부드럽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이 불같이 화를 내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8복을 말씀하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헌데 23장에서는 7화 선언을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하면서 불을 품어내시듯 심판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5장의 주님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허나 동시에 마태복음 23장의 주님이시도 합니다. 두려운 주님이십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에 마태복음 5장의 주님만 생각하시면서 안일함에 빠지면 안됩니다. 사랑의 주님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언제나 나에게는 복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반드시 마태복음 23장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들이 두려워 해야 할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마세요. 힘들고 외로울 때 위로하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을 누리십시오. 동시에 심판하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함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언제까지만 나의 게으름과 불신앙을 두고만 보시지 않는 분이심을 알고 돌아서야 합니다. 사랑의 주님이면서 우리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두려운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는 말은 행하고 지키라고 하십니다. 말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전부다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화 있을 진저라며 심판을 받고 공격을 받았지만, 주님은 그들의 말하는 바는 듣고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의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일 은혜 받기 힘든 사람들이 저의 아내와 두 아이들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과 교회에서의 목사의 모습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곳에서의 모습이 다르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구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때마다 부탁을 합니다. “아버지도 부족한 사람이다. 아버지를 보지 말고, 아버지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목사에게 상처 받을 수 있습니다.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축복기도도 받아야 합니다.

 

(예화)한 자매가 새로이 교회를 등록해서 세례를 다시 받고 싶어 한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에게 세례를 준 목사님이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목사님이어서 자신이 받은 세례는 효력이 없으니 다시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다시 받지 않아도 됩니다. 세례의 효력이 주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캐톨릭에 다니던 성도가 개신교로 와서 세례를 다시 받고 싶어 하는 경우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에도 캐톨릭이나 개신교나 모두 영세나 세례를 인정합니다. 영세나 세례를 주신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계속되는 논쟁 중에 하나가 인효론과 사효론, 신효론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이단에서 받은 세례가 유효한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베푼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세례의 효과가 좌우된다는 것이 '인효론'입니다. 인효론에 의하면 그 세례는 무효입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정당한 절차로 주어진 세례라면 세례를 집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보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므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사효론'입니다.

어거스틴도 "세례는 집례자가 주는 것이 아니므로 베드로가 주든 가룟 유다가 주든 그리스도께서 베푼 세례로 모두 정당하다."고 사효론을 옹호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로인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통로인 사람이 잘못하면 반드시 회개시켜야 하고, 징계도 해야 합니다. 또한 아무에게나 안수 받고, 기도 받아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두 가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는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이비나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진리의 영이 아닙니다. 거짓의 영입니다. 마귀의 영을 갖고 있기에 함께 하면 안됩니다. 예수의 영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결국은 누구를 높이는가? 예수님만을 높이고, 예수님만이 남는다면 옳습니다. 헌데 그 자리에 사람이 있고, 사람을 중요시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자랑하면 안됩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말이 성경적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수라고 해도 다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예화)이단들의 특징을 보세요. 특히 신천지의 추수전략을 보세요?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이야기 합니까? 성경에서 시작해서 성경으로 끝날 정도입니다. 비유풀이를 합니다. 허나 성경을 많이 인용한다고 해서 성경적인 것은 아닙니다. “성경적이라는 것은 성경전체에 흐르는 정신에 맞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도 성경적일 수 있습니다.

 

(예화)예를 들어서... 한 사람을 미혹하려고 접근을 합니다. 그 때에 모략이라고 해서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가족들에게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발각이 되면 가출을 하게 합니다. 이혼하게 합니다. 부모님들이 찾아와서 아무리 애원을 해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인용하는 성경이 나를 따르려거든 네 부모나 처자나 자식들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는 성경을 인용합니다. 허나 성경의 전체흐름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가정을 깨뜨리고, 분리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잘 분별을 해야 합니다. 이제 새 학기가 되어서 대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는데 조심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담임목사에게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에 문제가 없을 때는 세례를 받고, 기도를 받고, 설교를 들을 때에 능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설교를 하고 있지만 부족합니다. 저도 말한 대로 다 못삽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말은 듣고 행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실수하고 부족해도 그 말이 진리를 말하고, 성경을 말한다면 듣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받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그 축복의 말씀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으시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줍니다. 헌데 어떤 성도들은 능력 있는 목사를 찾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 기도를 받아야 신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해주는 그 사람이 아무리 신령해도 기도를 받는 내가 변화되고 내가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것이 사효론이라고 하며, 신효론이라고 합니다.

(예화)사효론=신효론의 대표적인 사건이 한나 사건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멋진 신앙의 노하우를 배우기 바랍니다.

한나는 서원한대로 젖을 떼고 난 뒤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무엘을 엘리제사장에게 데려다 맡깁니다. 헌데 엘리제사장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나가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신음하듯 기도하는데, 와서 한다는 말이 언제까지 술을 먹겠느냐? 술을 끊으라!고 합니다. 얼마나 상처가 될 말입니까? 실족할 일이지요? 영분별을 못해도 이렇게 못할 수 있습니까? 엘리제사장의 영성은 수준 이하였습니다.

헌데 한나는 예의있게 말합니다. 제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가 없어 마음이 너무 괴로워 하나님께 내 마음을 쏟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제사장은 평안히 돌아가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은 믿음으로 한 말도 아닙니다. 헌데 하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남편과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됩니다.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보세요. 한나가 사무엘을 낳게 된 것은 엘리 제사장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한나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한나는 엘리제사장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젖을 뗀 어린 아이 사무엘을 기꺼이 엘리제사장이 있는 곳에 맡긴 것입니다. 엘리제사장도 두 아들들도 영성이 엉망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전중심의 삶을 살기 원한 것입니다. 대신 자신이 철저히 기도하고, 매년마다 올라가 돌보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적용)신앙생활에서 응답을 받고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여러분이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목회자가 좋은 말씀을 전하고, 간절함으로 축복기도를 해 주어도 여러분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채워주십니다. 엘리사가 가난한 과부에게 말합니다. 가서 힘껏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합니다. 너무 가난하여 두 아들들을 종으로 뺏길 위기에 있던 선지자 아내에게 엘리사가 한 말입니다. 그러자 과부는 동네 방네 다니면서 빈 그릇을 준비합니다. 빈그릇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채우시기 시작합니다. 헌데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 끝났습니까? 빈 그릇이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뭘까요? 빈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갈급함을 갖는 것입니다. 채우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빈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빈그릇을 자꾸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잘못 구하더라도 구해야 합니다. 기대해야 합니다. 뭐라도 구해야 합니다.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8110절에서 아삽은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은 할 수 있는 한 크게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예화)이어령 교수가 어린 초등학교 시절에 과학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제비 어미는 어떻게 입을 활짝 열고 벌레를 달라고 하는 새끼 제비들을 구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방금 먹은 새끼 제비와 먹지 않은 제비 새끼를 어떻게 아느냐?고 여쭈었습니다. “너 나와! 하고 맞았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인데... 벌레를 먹은 제비는 아무리 입을 넓게 열어도 먹지 않은 제비보다는 작게 입을 연다는 것입니다. 어미 제비는 입을 더 크고 넓게 벌린 새끼 제비에게 벌레를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입을 넓게 열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크게 입을 벌리고 기대하고 구할 때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신앙의 원리요 비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작은 그릇이든 큰 그릇이든 준비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입니다.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알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고 하였습니다.

 

그뿐 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

주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은 구하고 무엇은 구하지 말라는 제한이 없습니다. 죄 짓기 위해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4:2)라는 책망을 듣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할 때였는데,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우는 것을 듣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여쭙기를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고기를 주어 먹게 할 터인데,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모세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세와 같은 신앙인도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잠시 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의 생각을 고치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큰 기대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리했더니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90센 치쯤 되게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나가서 메추라기를 잡아서 원이 없도록 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결론)

다른 것을 탓하지 마세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세요. 교회나 목회자를 탓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믿음입니다. 내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 믿음이 작아서입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해서가 아닙니다. 한나는 엘리제사장의 축복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짧아지지 않았습니다. 짧아진 것은 우리들이 믿음입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고,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그렇게 공격하면서도 그들의 말은 듣고 행하라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깨달아 복을 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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