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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 짝사랑이 되게 하지 맙시다 이병수목사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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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1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3:37-39

제목:하나님의 사랑이 짝사랑이 되게 하지 맙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슬픈 탄식입니다.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울면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돌아오라고 애타게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창세기 2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때는 단박에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잡아 드리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십니다. 이때는 긴박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독자 이삭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아브라함이 너무 고마워서 먹먹한 마음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310절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하나님이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한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아직 어립니다. 잠자리에 든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 어린 자녀를 부르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상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적용)하나님은 여러분을 어떻게 부르실 것 같습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부르실까요? 돌아오라고... 언제까지 내 사랑을 떠나서 살 것이냐고... 너무 안타까워서 마음이 아파서 부르실까요?

아니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시며 부르실까요? 네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고맙구나! 순종해 줘서 사랑해 줘서 너무나 대견하구나! 하시며 부르실까요?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와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 아버지!’하며 부르는 자녀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 하시면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불러 주실까요?

불러주신다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 형편에 따라서 주님이 부르시겠지만, 불러주신다는 것은 내 이름을 아시는 것이요 함께 하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삶에 의미가 없고 행복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까? 이유는 사랑하는 삶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을 닮게 만든 사람들도 사랑하며 살 때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입니다. 나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녀들도 부모들이 자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신 이유는 내가 사랑할 사람으로 붙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내를 사랑할 사람으로 날 붙여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들 되시는 분들은 자녀들을 사랑할 사람으로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교회도 주시고 목사도 붙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기 시작하면 행복해 집니다. 나를 위해 주고 섬겨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사랑할 사람 섬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왜 날 사랑해 주지 않나 늘 받으려고만 하면 불행합니다. 허나 사랑하기 시작하면 행복해집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예수 믿어서 좋은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쁨도 없고, 예수 믿어서 잘되는 것 같지도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데 왜 난 행복하지 않을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37-3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짝사랑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짝사랑을 해 보셨습니까?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힘든 일입니다. 사랑은 서로 해야 합니다. 헌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짝사랑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사랑을 짝사랑이 되게 하지 맙시다. 햇살을 등지고 있는 한 햇살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릇을 엎어 놓는 한 은혜를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밀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랑의 호소를 할 뿐입니다. 문 밖에서 두드릴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문을 열어주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설사 이미 들어와 계신다 해도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면 주님은 절대로 우리와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셨습니다.” 헌데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암탉은 독수리나 매가 공격하면 꼬!!!하면서 제 새끼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날개 아래에 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독수리와 싸워, 자신의 새끼들을 지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러 온 사람들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화)한번은 양계장에 화재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많은 닭들이 불에 타 죽게 되었습니다.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둘려보는데 한 마리 닭이 새까맣게 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둣발로 툭 찼는데 그 안에 병아리들이 살아 있더랍니다. 암탉은 자기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은 불에 타 죽는 한 이 있어도 새끼들을 품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들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J.D. 그리어 목사는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 빈곤 국가지도와 세계 선교국가 지도를 겹쳐서 보면 경제가 가장 낙후된 지역이 복음화가 가장 덜 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복음화가 덜 된 지역은 대개 선교사에게는 지독히 폐쇄적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사람이나 가정이나 나라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말씀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로마서 829-30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구원의 5 단계

1.첫째는 미리 아시고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그 어떤 노력이나 수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이셨던 예수님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헌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 우리들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예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의 예정론입니다. 바른 예정론은 구원받은 성도가 오늘 이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이었구나! 창세 전부터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정해 주신 것이었구나! 내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이고 은혜였구나!”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구원받은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무슨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 감사하구나!“라고 감격하고 예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그의 제자들이 예정론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마치 예정론을 예언처럼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구원받을 사람과 심판 받을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갈 명단과 지옥 갈 명단이 이미 창세전에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요 감격할 일입니다.

 

2.두번째 구원의 단계는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해주셨다 해도 하나님이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와 있을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 앉아 있다는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하나는 교회로의 부르심입니다.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서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종교를 자신이 선택할 여지도 없이 부모님들의 의해서 교회를 나와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뛰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은혜입니다.

헌데 문제는 교회까지는 왔는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2)그래서 예수님에게로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까지는 잘 오셨는데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마음의 문을 열기 바랍니다.

교회까지만 오시면 안됩니다.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내 죄를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까지 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해야 합니다. 허나 우리들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만 다니시면 안됩니다. 예수님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3.구원의 세 번째 단계는 의롭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838-3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4.구원의 네 단계가 성화의 단계이고 구원의 다섯 단계가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영화롭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은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성화의 과정을 지나서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변화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1)말이 달라집니다. 말이 달라지셨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말이 함부로 안됩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부정적인 말이 잘 안됩니다. 부담되고 불편합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후나 말이 거침없이 되신다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미워하기기 힘듭니다. 욕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2)예수님을 믿으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말이 달라진다는 것은 삶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말과 삶이 일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화)연변과학기술대학은 공산권 내에 있는 기독교 학교입니다. 교수들이 모두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헌데 중국공안당국은 두 가지를 금지시켰습니다. 절대로 전도하지 마라. 성경을 가르치지 마라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졸업할 때가 되면 학생들 70%이상이 예수를 믿고 학교를 떠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졌을까요? 교수들이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 전도를 못하니 행동으로 하자. 행동으로 사랑하자. 매사에 진실하자.” 교수들이지만 학생들과 같이 밥을 앉아서 먹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아픔을 들어주고, 섬겨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그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들에게는 뭔가가 있다. 우리에게 없는 뭔가가 저들에게는 있다. 그래서 강의시간에는 묻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교수님들에게 와서 묻는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뭔가를 알고 있다. 우리들이 모르는 뭔가가 무엇인지 가르쳐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말로 전도를 못하니까 삶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3)예수를 믿으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한 번 돌아보세요. 가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돌아보세요. 그리고 낯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식당에서 종업원들, 택배 기사들, 편의점 점원, 시장 아주머니들, 택시 기사, 경비원들 등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세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는데 감히 우리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이면서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모여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흩어져야 합니다. 흩어진 그곳이 선교지입니다. 우리들은 그곳에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따라서)나는 현장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입니다.” 가정으로 학교로 직장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얼굴표정은 전도지입니다. 보냄을 받은 그곳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다운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뜨겁게 붙여주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소원과 사랑을 짝사랑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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