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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이병수목사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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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11일 수요예배설교

성경:사도행전 26:9-18

제목:바울의 변명(3)-꽃들에게 희망을...

겉으로 보면 꿀벌들이 꽃들을 괴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벌들은 꽃들을 헤집고 다닙니다. 벌들은 꿀을 얻기 위해서 꽃들을 헤집고 다니지만 이것은 결국 꽃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안경알에 먼지가 잘 앉듯이 털로 뒤덮인 벌의 몸에는 꽃가루가 잘 달라 붙습니다. 꽃가루 배달부로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호박벌 한 마리가 나를 수 있는 꽃가루 알갱이만도 15000개에 이릅니다. 19세기에 영국에서 호박벌을 들여온 덕분에 현재 뉴질랜드에서는 광활한 들판에 클로버가 무성히 자라 가축의 중요한 먹이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꽃가루 배달부는 꿀벌입니다. 꿀벌은 주로 벌집 가까이에 많이 피어 있는 한 가지 꽃에서 화밀을 얻습니다. 벌들은 자신을 위해서 꽃을 헤집지만, 결국 그 일이 꽃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곤충학자인 크리스토퍼 오툴은 이렇게 추산합니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품 가운데 꿀벌이 해 주는 수분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30퍼센트에 이른다.” 아몬드, 사과, 자두, 체리, 키위와 같은 작물이 수분되려면 꿀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는 농장주들이 벌통 하나당 얼마씩 양봉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답니다.

 

벌들이 알고 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꽃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헌데 그 일은 결국 꽃들을 위한 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8-12절을 읽겠습니다. “ ”

바울은 몰랐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선교비전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바울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한 일입니다. 헌데 하나님은 전화위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사로 잡아 끌고오려고 갔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다메섹으로 오는 사도 바울을 사로 잡으시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정오가 되자 하나님은 강력한 빛을 쏘아 바울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만나주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것을 경험한 바울은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보세요. 사도 바울이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헌데 역사를 다스리시고 만나주시고,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은 바울을 만날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많습니다.

이삭 - 늘 당하기만 했지만, 하나님은 100배의 소출을 얻게 하셨다.

요셉 - 고통의 13년을 보냈지만, 인류를 구원하는 거룩한 사명을 이루셨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는 이런 일들이 수 없이 많다. 꿀벌들에게 당하는 것 같지만, 그 일은 도리어 꽃들을 위한 일이 된 것처럼 이런 일들은 많이 벌어집니다.

1 - 하나님이 선교비전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헌데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숨어서 지내게 됩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을 유대 땅과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핍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은 스데반을 죽인 일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예루살렘 교회에 엄청난 핍박이 있었습니다.

2절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겉으로 볼 때는 기독교가 유대인들과 로마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려는 마음으로 공격을 한 것입니다. 헌데 결과적으로는 기독교가 전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선교비전이 비로서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는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알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적용)우리들에게 당하는 일들을 겉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도 일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 지금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바울을 당장이라도 죽이려고 짐승처럼 성전 밖으로 짐승처럼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할 때에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보고가 됩니다. 천부장은 즉시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이끌고 달려 왔습니다. 천부장은 무리들에게 몰려 매를 맞고 있는 바울을 보호하고 바울을 잡아 쇠사슬로 단단히 묶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로 이 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헌데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므로 도저히 진상을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쇠사슬로 묶은 바울을 영내로 데리고 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바울은 자신의 발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군인들에게 들려서 영내로 옮겨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겉으로 볼 때는 바울의 온 몸이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쇠사슬에 묶이지 않았다면 바울은 흥분한 유대인들에 의해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헌데 천부장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바울을 쇠사슬로 묶는 바람에 유대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죄수처럼 쇠사슬에 단단히 묶이게 되었지만, 이 쇠사슬은 유대인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는 쇠사슬이었던 것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쇠사슬로 묶지 않았다면 바울은 유대인들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사건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묶인 쇠사슬은 바울을 또 다른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쇠사슬이었던 것입니다. 쇠사슬에 묶임으로 바울은 이제 로마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임으로 결국 바울은 로마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는 쇠사슬에 묶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고, 인도하심이었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지키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적용)우리들에게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쇠사슬에 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병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은 그 일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살아나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건강할 때는 귀를 기울이지 않던 사람이 질병의 쇠사슬에 묶이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받는 자녀로 묶이기 되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쇠사슬로 힘들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과 섭리하심이 있음을 믿을 때 감사의 쇠사슬이 되고, 은혜의 쇠사슬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쇠사슬에 묶여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내 영혼이 살고, 결국은 가정이 살고, 자녀가 사는 일들이 있습니다. 결국 고난은 변장하고 오는 축복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하나님 안에서 일어납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보지 마세요. 믿음의 눈으로 보세요.

내 삶에 벌어지는 어려움! 우리 교회 안에 벌어지는 어려움을 단순히 어려움으로만 보지 마세요. 대신 믿음의 눈으로 기대하세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를 기대하세요.

지금 힘든 것만 보지 마세요. 지금 괴로운 것만 보지 마세요. 하나님께 부르짖으세요.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지금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다른 쪽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만 보지 마세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준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 좋은 예가 아브라함입니다.

4 - 모리아산을 생각해 보세요.

산 정상에서 보면 양쪽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산 한쪽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올라옵니다. 땔감을 짊어지고 오르는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헌데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헌데 결과를 보세요.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이 숫양을 올리시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 숫양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믿으십시오. 기대하십시오. 우리들이 모르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쇠사슬에 매이는 고통을 겪을 수 있지만, 도리어 그것은 나를 보호하고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쇠사슬이요 / 기도하게 하고 주만 바라보게 하는 겸손케 하는 쇠사슬이요 /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는 응답의 쇠사슬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론)우리는 꽃들 같다.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헌데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사랑하신다. 때로는 벌들의 공격을 받게 하시지만, 그래도 승리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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