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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인가? 중심인가? 이병수목사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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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4:36-45

제목:공간인가? 중심인가?

성경은 이해 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어야 할 책입니다. 성경 말씀은 이해하려면 할수록 더 어려운 책입니다. 허나 하나님을 믿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저는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만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지 않은가?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이라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궁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또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질문을 던져서 우리를 곤란하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밀에 붙여 놓으신 것을 억지로 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20-21절에서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또 베드로후서 316절에서는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씀은 사람의 지혜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헌데 그것을 억지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듣도 보고 못한 해석을 한다? 너무 신선하고 신기하더라!’고 합니다. 허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기독교 2000년 역사 동안에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성경을 풀어 왔습니다. 우리들이 신학에 도움을 얻는 것은 2000년의 성서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새로운 해석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원받기에는 충분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겸손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밝히 아는 말씀은 절대 순종하고, 비밀에 붙여주신 말씀은 절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과 주님이 재림하실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36절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아버지만 아시는 일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비밀에 붙여주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유익되다면 하나님은 알려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만 아시는 것을 보면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기에 비밀에 붙여두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대신 주님은 말세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일러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는 어떠했습니까? 38-39절입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지금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은 뭘까요?

(1)지금은 유예기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도 유예기간을 120년 주셨습니다. 헌데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둔하여져 갔습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되면서 무뎌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이 다시 오시마 약속하시고 100년이 지났습니다. 1000년이 지났습니다. 2000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무감각해졌습니다. 보세요. 지금 종말신앙, 천국신앙은 너무나 희박해졌습니다.

(예화)북한에서 넘어온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헌데 그는 한국교회에 실망을 하고 지금은 북한 선교를 위해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냐면 남한의 교회에 와서 보니 생명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탈북성도의 눈으로 볼 때 교인들이 진리에 대한 확신도... 진리의 말씀대로 살기위한 순교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YesYes이고, NoNo이지!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살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다하면 그런 줄 알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비록 북한에 있을 때에는 목숨에 위협을 느끼며 신앙을 지켰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에 행복했고 기뻤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방해 받지 않고, 시설도 좋고 프로그램 좋은데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긱도 없고, 복종도 없고, 희생이 없고,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탈북성도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노아의 때와 같이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반 아이들이 37명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다고 합니다. 헌데 34명이 동성애는 개성이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3명만이 동성애는 잘못이라는데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너는 손을 들었니?”라고 물었더니 들었다고 했습니다. 동성애는 죄라고 대답한 3명의 아이들이 모두 모태신앙인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생각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져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바울이 선교한 유럽 땅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동성애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자 짐승과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여성은 수컷 개와 결혼을 하겠다고 가족들을 초청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유치, 어린 아이들과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동성애는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기준입니다. 점점 우리 한국사회도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들도 3명의 아이들처럼 동성애는 죄입니다라고 손을 들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생명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노아가 소리치지 않았겠습니까? 120년간 부르짖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노아의 때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일에 빠져서 주님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그렇지 않습니까?

(적용)교회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내가 해야 할 충성이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권사회 / 전도회 / 기도회 모임을 할 때 열심히 참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협조 안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기 볼일로 분주하여 참석을 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래도 힘들어 하지는 마세요. 노아의 때와 같은 것입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기쁘게 기도하고, 충성하고, 즐거워 하면 됩니다. 오지 않은 사람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충성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도 주님이 만져주시길 기도하면서 오신 분들과 함께 즐거이 헌신하면 됩니다.

 

(2)지금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4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으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깨어 있는 목적이 주님이어야 합니다.

오늘 날은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깨어 있습니다. 밤에 깨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벽에 깨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TV를 보느라 깨어 있지 않습니까? 인터넷 게임을 하느라 깨어 있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걱정하고 근심하느라 깨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잠 못들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깨어 있는 목적이 무엇 때문이냐?를 점검해야 합니다.

공부하느라 깨어 있을 때도 공부를 왜 하는가? 공부하는 목적을 생각해 보세요. 주님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일하느라 깨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헌데 그 일을 하는 목적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하는데 잘 안되어서 주님 앞에 자신을 내려 놓으면서 고민을 한다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뭘 하든지 목적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먹는 것, 마시는 음료 한잔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디에 가고,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주님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이 아파도 끊어내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44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25명입니다. 허나 우리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가 암입니다. 그리고 2, 3위가 혈관계통의 질병입니다. 4위가 자살입니다. 9위가 교통사고입니다. 죽음이 우리 주변에 늘 있지만, 우리는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우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장례식에 가면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죽는다. 나도 언젠가는 냉동고에 내 시신이 보관되겠지... 그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떨까? 나를 뭐라고 할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난 후회 없이 잘 하고 있나? 생각해야 합니다.

(2)죄로 넘어진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넘어질 수 있다. 하루 아침에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죄는 잠복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밧새바와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헌데 한 순간에 간음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에 음욕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는 넉넉히 이깁니다. 헌데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마음에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 있을 때 밧새바를 보고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요즘 악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공금을 횡령하고, 성추행을 저지르고, 살인을 행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안에 죄가 잠복되어 있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지지 않으려면 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자꾸 심란한 생각이 듭니까?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까? 누군가가 밉습니까? 그렇다면 위기라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 나가 보혈의 능력을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마음을 잘 살피고 준비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넘어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40-41그 때에 그 때는 주님이 재림 하실 때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두 남자는 다 밭이라는 공간에 있었습니다. 두 여자도 부엌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헌데 한 사람은 구원받고, 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중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교회라는 공간 안에 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모시고 있는 자라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화)가인과 아벨이 동시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헌데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드렸어야 했습니다. 가인은 피의 제물이 없었습니다.

허나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가인과 아벨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예화)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사울을 대신해서 이새의 아들가운데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장자 엘리압이 오는 것을 보자 이 사람이구나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구나헌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들판에 있던 막내아들 다윗을 불러왔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들어오자 사무엘에게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헌데 여러분 다윗이 언제 하나님 마음에 들었는지 아세요?

부모도 형제들도 다윗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리고 막내이고 내세울 것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헌데 하나님만을 다윗을 주목했습니다. 홀로 들판에 남겨져 양떼를 돌볼 때 불만을 갖고 신경질내지 않는 것!! 기쁘게 순종하는 모습!! 형들 양떼도 정성껏 돌보는 마음!! 그늘 아래 앉아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셨어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세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마음이예요. 주님은 내 마음을 보세요. 내 마음을 드리세요.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리세요. 주님이 받아주실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간을 바꾸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바꾸는 기도여야 합니다. 기도를 잘 보세요. 환경을 바꿔달라는 기도인지 아닌지? 기도할 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해달라고... 내 사랑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기도하세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다른 것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것은 다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사세요.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초가삼간이면 어떻습니까?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내 마음이 천국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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