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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임하는 예배 이병수목사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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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24일 주일 낮 설교

성경:왕상 1830-40

제목:불이 임하는 예배

모든 분야에서 기본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기본기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가 신앙의 기본이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불이 임하는 예배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갈멜산에서 영적인 큰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들 간에 영적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결한 이유는 어떤 신이 참 하나님인가? 어떤 신이 살아 있는 하나님인가?를 결판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대결종목은? 제단을 쌓고 짐승을 잡아 놓고 불이 내리게 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입니다.

바알선지자들의 예배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헌데 엘리야가 예배하자 불이 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엘리야의 예배에 여호와의 불이 임했다면 우리들의 예배에도 불이 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예배에도 이런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화)고려신학대학의 이상규 교수가 쓴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란 글에서 1907년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예배의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양선이라는 분이 기록한 현장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죄는 거의 다 고백되었다. 사람의 체면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이때까지 자기들이 배반하던 예수를 향하여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울부짖을 뿐이다. 국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든가 또 바로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이것이 불이 임하는 예배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이 임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내 예배에는 불이 있는가? 불이 임하는가? 불이 임한다면...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최근에 은혜 받은 예배가 있는가? 예배 중에 참회의 경험이 있었는가? 찬송 중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이 있는가? 말씀을 듣는 중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는가?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하고 변화된 행동들이 있는가?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혹시 우리들의 예배제단이 무너지지 않았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예배제단이 무너지면 예배가 지루하고 지겨워지게 됩니다.

어떤 분은 예배 끝나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예배가 지루해서 끝나는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하면 예배를 왜 드립니까?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들도 지겨워 하는 예배는 하나님도 받지 않으십니다.

(2)지각하는 것도 제단이 무너진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마음이 어수선해 합니다.

예배시간에 맞춰 오느라고 애를 쓰신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들이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서 늦은 거 압니다.

(예화)분당우리교회는 예배 시간 15분이 지나면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오해도 공격도 많았다고 합니다. 15분 늦더라도 예배를 안 드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헌데 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가?

헌데 목사님은 생각했습니다. 510분 한 번 두 번 늦다보면 습관이 되어 평생 지각하는 예배자가 된다면 어떻게 하나? 당장은 서운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자가 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나님에게 해서 되겠나? 싶어서 아프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3)아직도 내 안에 죄가 있는가? 아직도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가?

내 안에 제단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지겨워 하는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111-17(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1.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말라기 16-10(표준새번역)

6.“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주인이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7. 너희는 내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8.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 만군의 주가 말한다.

9.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가 하나님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여 보아라. 이것이 너희가 으레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좋게 보시겠느냐?"

10.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가운데서라도 누가 성전 문을 닫아 걸어서, 너희들이 내 제단 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이 싫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도 이제 나는 받지 않겠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지겨워 하자 실제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어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가 되어 강제노역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었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는 아픔에 울었습니다.

(적용)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우리들이 그렇게 지겨워하고 드리기 싫어하는 예배를 더 이상 드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에야 후회하면 안됩니다.

하나님도 받지 않으시는 예배를 드리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무너진 제단을 보수해야 불이 임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2.불이 임하는 예배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왜 엘리야는 도랑을 파고 물을 세 번이나 제단에 부으라고 했을까?

다른 말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로 상태가 되게 한 것입니다. 어떤 빌미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화)신앙생활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주도성의 문제입니다.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의 문제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나의 삶은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우리 가정은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이 문제는 계속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예화)회사를 이끄는 회장님이 창립식을 가졌습니다. 이분은 장로였습니다.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국회의원들, 기관장들, 지역유지들, 내빈들이 방문했습니다. 성대하게 잘 마쳤습니다. 헌데 기도하면서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창립감사에서 정작 사람들만 모시고 신경 쓰느라 하나님을 높여 드리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인사하고 누가 왔나? 안 왔나? 얼마나 왔나? 신경 쓰느라 정작 하나님은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회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인데, 성대한 창립식에 하나님이 주인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닫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삶의 주도권, 삶의 결정권을 내가 쥐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부흥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하고 탄원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우리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화)저는 최근 이 부분에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목요일 저녁마다 새가족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새가족 교육을 하면서 제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분이 그런 고백을 하세요. 차를 타고 부부가 교회를 오면서 당신 목사님에게 내 이야기 했어요? 어떻게 목사님이 아시고 내 얘기를 말씀하시지?” 이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주일날과 목요일에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 꼭 내가 고민하는 문제, 내 처지에 맞는 말씀을 꼭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서 남편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면 성령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순종하면 복이 됩니다.’

 

어느 목사가 꼭 집어 들으라고 설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본문의 말씀에 충실해서 말씀을 전합니다. 헌데 설교자의 입에서 나간 말씀을 성령님께서 사용하셔서 청중인 성도들에게 합당하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찔림을 받는다면 성령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지치고 마음이 상한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위로의 말씀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 갈등하는 성도들에게는 길을... 비쳐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두 분의 고백을 들으면서 이것이 불이 임하는 예배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말씀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어려운 내용입니다. 헌데 그렇게 꿀송이 처럼 듣습니다. 말씀이 너무나 재밌고, 좋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반응을 보면서 저는 회개를 했습니다. 복음과 말씀은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능력인데... 하나님이 주도하시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이미 제 마음속에서 이 말씀은 어렵겠지! 지루하게 생각하겠지! 이 말씀을 듣는다고 변화될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인데... 내 마음에서부터 당당하지 못했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내가 걱정하고, 내가 염려하고, 내가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설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전하라는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면 되는데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에 민감합니다. 누가 오고 안오고에 민감합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이도 하나님이고, 가정을 세우시는 이도 하나님이고, 사람을 살리는 주도권도 하나님에게 있는데 내가 염려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가장 암울할 때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가두었습니다. 드러내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라는 긴 가뭄으로 자식을 잡아 먹는 끔찍한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마음들이 다 메말라 있었습니다. 정말 예배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850:1인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화)찬송가운데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하나님은 유아부실에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힘들게 예배하는 것을 아십니다.

마음이 상하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와서 예배하고 있는 여러분을 아시니다. / 걱정되고 힘든 일도 많지만, 예배를 포기할 수 없기에 오셔서 예배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 일주일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십시오. 오늘 예배를 드릴 때도 하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하는 자가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박국 317-19절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힘드니까 예배해야 합니다. 마음이 상했으니까 예배해야 합니다. 걱정 근심이 많으니까 예배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불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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