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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배신한 사람 | 이병수목사 | 2016-07-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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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6:47-56 제목:사랑을 배신한 사람!! ‘배신’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으로 보면 “신의를 저버리고 관계를 끊고 돌아서다”라는 뜻입니다. (1)배신 당해 보셨나요? 배신 당하는 것이 왜 괴로운 가요?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사랑했는데 마음을 줬는데 버림을 받았기에 힘든 거예요. /어린 친구들도 친구들에게 배신 당해 본 적 있나요?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따돌림을 받은 적이 있나요? /외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아요? /요셉도 배신을 당해 봤어요. 그것도 형들에게 배신을 당했어요. /삼손은 사랑하는 여인 드릴라에게 배신을 당했어요. (2)그러면 혹시 배신 해 본 적이 있나요?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배신하는 거지요. 사람을 만나거나 안지 얼마 안되면 좀 더 지켜 보세요. 처음에는 뜨겁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냉냉하게 식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3년은 가만히 지켜 봐야 해요. /믿음을 저버리는 것도 배신이지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다른 데 가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말로 한 약속들을 손바닥 뒤집듯이 얼마나 많이 뒤집었나요? 오늘 본문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기록하고 있어요. 가룟 유다의 배신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 원해요. 그리고 우리들은 “신의를 저버리고 관계를 끊고 돌아서는 일은 없길 바래요.” 1.첫째로 가룟 유다의 배신은 마음의 배신입니다. 49절입니다.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유다의 모습을 보세요. 주님과 정말 친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인사를 하죠?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그리고 입을 맞춥니다. 너무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한 사이처럼 보여요. 헌데 마음은 전혀 아니예요. 마음을 속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 같아요. 요한복음에 보면 이미 사탄이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 넣었다고 했어요. 보세요. 가룟 유다의 마음은 이미 사탄에게 점령을 당했어요. 헌데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행동을 해요. 마음은 전혀 아닌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입을 맞춰요. 얼마나 끔찍해요. 마음엔 미움과 증오와 거짓이 가득하면서 행동은 전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예요. 마음으로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품고 있으면서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예요. (예1)겉으로는 목사예요. 헌데 마음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자신이 설교하는 내용을 의심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예요. 나도 믿지 못하는 말씀을 믿는 것처럼 전한다면 그것처럼 큰 배신이 어디에 있겠어요. (예2)겉모습은 직분자고 교사예요. 헌데 마음에 거짓, 음란, 미움이 들어 있다면 주님과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이지요. 마음을 날마다 점검해야 해요. 마음의 배신을 극복하는 길은 정직한 거예요. 정직하게 인정하는 거예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룟 유다처럼 살지 말아요. 마음을 속이는 행동은 하지 말아요. 날마다 마음과 행동이 점점 가까워 지도록 주님께 기도하길 바래요. 2.둘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신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을 사랑하셨어요. 주님은 항상 진심이었어요. 헌데 바로 이어서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주님의 진심과 가룟 유다의 진심은 너무나 차이가 있어요.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고 기대하셨어요. 가룟 유다의 발까지 닦아 주셨어요. 예수님은 끝까지 기대해 주신 거예요. 헌데 예수님의 기대를 저버렸어요. 예수님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뛰쳐 나갔어요.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왔어요. 배신은 사랑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50절을 보아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친구여”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예수님의 마음이 잘 전달이 안되요. 헌데 헬라어로 친구는 두 개의 단어가 있어요. ①필로스-필로스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사용하는 말이예요. 예1-마태복음 11장 19절 “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예2-요한복음 11장 11절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예3-요한복음 15장 14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4-요한복음 15장 15절 “종이라 하지 않고 이제는 친구라 하였노니” 이것은 좋은 뜻의 말이다. ②헌데 친구라는 말은 헤타이레라는 말도 있다. 헤타이레는 사무적인 관계를 말한다. 마태복음에서만 세 번 사용되었다. 예1-마태복음 20장 13절 포도원 품군 중에 먼저 와서 일을 한 품군이 불평할 때... 주님이 “친구여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느냐? 약속한 것을 주었느니라” 원망 불평이 가득한 사람에게 주님은 헤타이레라고 하셨다. 예2-마태복음 22장 12절에서 혼인잔치 비유가 나온다. 헌데 왕이 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왕이 하는 말이다. “친구여 어찌 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나님이 주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의의 옷을 입지 않은 것이다. / 예수를 믿음으로 입는 양자의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주님이 입혀주시는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한다. 예3-마태복음 26장 50절 오늘 본문에 가룟 유다에게 한 말이다. 내가 그렇게 믿었는데. 끝내 돌아서지 못했구나! 왜 이렇게 하느냐? 이것이 최선이냐? 참 마음이 아프구나!라는 뜻입니다. (적용)예수님은 필로스가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친구를 위하여 죽는 자가 있다고 하셨어요. 친구된 우리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어요. 헤타이레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3.셋째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신한 것입니다. (1)성경에 배신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1-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인 주인 아주머니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갑니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2년 동안 잊혀집니다. 헌데 배신당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배신당하는 아픔을 갖고 선을 이루셨습니다. 예2-다윗이 아히도벨과 알살롬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믿었던 신하와 아들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헌데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누가 다윗을 정말 사랑하는지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아픔까지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십니다. (2)베드로와 가룟 유다처럼 배신할 수 있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헌데 유독 가룟 유다만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회복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헌데 유다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다보면 배신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때 가룟 유다의 길을 가지 마세요. 베드로의 길을 가세요. 가룟 유다의 길이 얼마나 멋져 보입니까? 돈을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을 매고 죽습니다. 쿨하지요. 휴머니스트 답지요.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신이 정죄를 한 것입니다. 헌데 주님을 믿는다면 베드로처럼 해야 합니다. 뻔뻔하더라도 베드로처럼 용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용서는 예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헌데 유다는 주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는 가룟 유다나 베드로처럼 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들을 일으켜 주시길 원하십니다.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예화)마가요한 - 실패자였습니다. 헌데 바나바는 믿어주었습니다. 결국 마가요한은 신실한 일군이 됩니다. 학자들은 여러 추측을 합니다.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게 된 이유가 뭘까? ①한축은 가룟 유다를 옹호하는 쪽입니다. 열심당원으로 예수님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예수가 이해가 안된 것입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고, 자극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의분을 일깨워서 함께 싸워주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②가룟 유다를 이해하는 또 한축은 유다를 나쁘게 보는 입장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것은 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탐욕의 사람이기에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스승도 팔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화)시실리안 성당 벽화 - 레오나르도 다빈치 12살 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 모델을 찾습니다. 그리고 20년 후 거룩한 주간이라는 벽화를 그리게 되는데 가룟 유다의 얼굴을 찾습니다. 헌데 길거리에서 술을 먹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유다의 모델로 그립니다. 그 때 그가 말을 합니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난 당신을 안다. 20년 전에 예수를 그릴 때 모델이었던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을 했습니다. 보세요. 한 사람의 모습속에 천사의 모습과 악마의 모습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모습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의로운 싸움을 하는 민족주의자의 모습도 있고, 동시에 돈을 사랑하는 탐욕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도 두 모습이 다 있습니다. (예화)사도 바울 - 로마서 7장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두 모습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모습과 악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결국 이 갈등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대사도인 바울도 이렇게 갈등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결국 마음의 거룩한 법을 따라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8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안에도 두 마음의 법이 있어요.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적용1-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적용2-내 안에도 가룟 유다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이 계세요. 적용3-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려면 ①첫 생각을 점검하라. 첫 생각을 대항하라. 마틴 루터 - 새가 내 머리위를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생각을 잘 점검하라. 생각에서 지면 안된다. 생각에 있는 것이 나온다. ②경건생활을 날마다 하라.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들도 언제든지 예수를 파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경건생활의 전부라고 하면 100%넘어진다. 이중 삼중으로 마음을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③마음의 잡초를 날마다 뽑아내라. 결국은 변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반드시 회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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