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요예배설교입니다. "그러므로 나도의 신앙" | 이병수목사 | 2016-08-10 | |||
|
|||||
|
2016년 8월 10일 수요예배 사무엘 3 성경:사무엘상 1:19-28 제목:그러므로 나도... 오늘 날 한나가 주는 영적 교훈은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도에 있어서 많은 도전을 준다. 오늘 날 우리들의 심각한 위기는 기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흥이 뭘까?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오로지 기도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부흥이다.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은 오직 기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기적을 맛보았고, 교회는 부흥했다. 그러나 오늘 날 성도들은 기도를 안합니다. 기도 외에는 모든 것을 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까 우리교회 성도들도 기도 참 안합니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힘들다고 하면서 괴롭다고 하면서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기도는 안합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에 사활을 걸면 뭐라도 될텐데 기도하지 않습니다. 헌데 한나는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부흥이 임한 것입니다. 기도하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나가 기도로 얻은 유익 중에 하나는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기도를 합니다. 1장 11절입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기도한대로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한나도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28절입니다. 27-28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러므로 나도”의 신앙이 뭘까요? 1.첫째로 약속의 근거한 신앙이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다. 한나는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다. 보세요. 약속들이 기초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이다. 엘리제사장이나 엘가나 한나는 약속의 말씀대로 양육한다.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도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하라. 부모가 떠나고 난 뒤에도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읽어 주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절대로 “두려워 하지 마라 놀라지 마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를 도와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오른 손이 너를 지켜 주실 것이다.” 욥기 23장 10절 말씀을 가르쳐 주면서 “너의 가는 길을 여호와께서 아신다. 그가 너를 단련하신 후에는 너는 반드시 정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보다 이보다 확실한 양육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자녀들을 살릴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너를 끊을 것이 없다. 너의 실수와 부족함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고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자녀를 양육해 보세요. 저도 이 부분에 많이 부족했는데... 집중해서 말씀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2.그러므로 신앙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는 신앙이다. 한나는 사무엘의 출생이 전적으로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므로 나도”가 되는 것이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면 그러므로 나도... 가 안된다. 헌데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기에 “그러므로 나도...”가 되는 것이다. 은혜를 잊지 않는 삶이 필요하다. (예화)들어보셨을 것이다. 한 사람이 아주 특별한 실험을 하였다. 어떤 마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는 각 집에 매일 만원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었다. 첫째 날, 집집마다 들러서 현관에 만원을 놓고 나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멈칫 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갔다. 둘째 날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셋째 날, 넷째 날이 되자 그 동네는 만 원씩을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두 번 째 주쯤 되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현관 입구에까지 나와 돈을 나눠주는 사람이 오는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언제쯤 올 것인가 기다리게 되었고 그 소문은 이웃마을에까지 퍼졌다. 세 번 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하거나 고맙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넷째 주가 되었을 때쯤은 매일 만원 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 끼 밥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은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드디어 실험기간이 끝나는 한 달의 맨 마지막 날,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투덜거리거나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느냐? 내 돈 만원을 안주는 거냐?”라고 따져 묻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매일 만원을 받는 일은 어느 새 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공짜로 만원을 받는 것처럼, 공기가 있어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물을 마실 수 있는 것도, 흙이 있어 딛고 설 수 있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직장에 처음 입사할 때는 적은 보수도, 낮은 직책도, 부족한 근무환경도 개의치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고마움을 느끼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 받는 것이 익숙해지면 고마운 것들은 당연한 것이 되고 더 잘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부모님만 찾던 아이도 성장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시하거나 귀찮게 여기다가, 결국 돌아가신 후에야 그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느끼게 되고 후회하곤 한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모든 것이 늘 그렇게 곁에 있으리라는 착각,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할 권리라는 착각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계약서를 쓰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내 심장이 70년 동안 아무 탈 없이 뛰어 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건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몸 조차도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가진, 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신문에서 한 칼럼을 읽었다. -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올림픽 시즌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헌데 금메달의 기쁨은 3개월이면 녹는 아이스크림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감정의 시스템은 ①사건(예-승진) - ②반응(야호!! 탄성) - ③무덤덤, 시큰둥해 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이런 시스템을 갖기에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다. 얼마나 큰 기쁜 일을 만나느냐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빈도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자주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선물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3.셋째로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과 깊은 신뢰관계를 갖는 것이다. 엘기나와 한나는 신실하였다. 신실함이란 한결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변치 않는 것이다. 변치 않는 신앙이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것이다. 개가 짖는다는 것은 상황이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기차가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살다보면 기쁜 일, 즐거운 일, 감사한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쭐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반대로 살다보면 힘든 일, 슬픈 일, 아픈 일, 속상한 일이 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다.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러므로 신앙이다.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개척한지 얼마 안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목회가 잘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우쭐하거나 교만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목회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은 모이지 않고 부흥은 더디 될 때에도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힘들어도 주님에 대한 신뢰함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것이다. 4.넷째로 그러므로 신앙은 내려 놓을 때 과감하게 내려 놓는 것이다. 24절을 보라.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기한이 되었을 때 한나는 과감하게 사무엘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믿음이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려 놓을 때이다. (예화)우리 아이들... 공부 잘 하길 바란다. 헌데 공부를 잘하는 머리는 아닌 것 같다. 고 3이 되니까 이제는 다 내려 놓게 되더라.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더라...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한 나도 아이도 불행해 지더라... 주님 앞에 내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선교사로 나가 계신 한 목사님의 따님을 돕는 일로 모였었다. 들어보니 연세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을 했다. 정말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다. 삼성장학재단에서 박사학위까지 장학금을 전액 받기로 했는데... 중도에 포기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에 석사 박사학위를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같은 목사의 자녀들인데... 저 목사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잘할까? 헌데 그 목사님에게도 고충은 있더라... 헌데 제가 비교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면 서로 불행한 것이다. 그목사님을 보면서 힘든 중에도 자녀들이 저렇게 공부를 잘하니 감사하겠구나! 싶더라... 헌데 저는 공부는 잘 못해도 착하고, 성실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그것으로 감사하다. 더 욕심 낼 것이 없다. 사랑한다면 과감하게 내려 놓아야 한다. 내 체면 때문에... 내 욕심 때문에... 자녀들을 컨트롤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경영인 같다. 목표를 세워놓고, 아이들을 조련한다. 분단위로 시간을 관리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숨이 막힌다. 좀 목하면 못하는대로 행복하면 되는데... 자기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내려 놓지 못하는 일이 많다. 즐겁게 내려 놓으라. 사랑하면 내려 놓으라. 우리는 내려놓는다는 것이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대신 기도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포기만 하면 안된다. 대신 기도를 해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내려놓고 서로 행복하면 된다. 감사하면 된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된다. 그것이 그러므로 신앙이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