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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가로막는 것들(주일1부) 이병수목사 201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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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4일 주일 1부 예배설교

성경:민수기 1326-33

제목:순종을 가로막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고 올라가면 된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했다. 헌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할 것을 원한다. 진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여 정탐군을 보내자고 한다. 전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헌데 순종하지 않는다.

 

오늘 이 시간 순종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원한다. 순종해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는데 왜 순종하지 못하나?

1.첫째로 합리적인 생각이다.

합리적인 생각이 잘못은 아니다. 헌데 지금은 아니다. 신명기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자고 한다.

정탐하자는 이유는 1318-20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18.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19.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얼마나 합리적인 생각인가? 올라가기 전에 미리 알아보자.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좋은지 나쁜지, 진영인지 산성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럴 듯 하다. 그런데 왜 알아보자는 것인가? 아니면 안 가겠다는 것이다.

 

보라. 합리적인 생각이 순종을 막는다. 정탐하러 가자는 이유는 합리적인 생각이다. 헌데 합리적인 이 생각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믿음으로 순종하기 보다 계산한 것이다. 정탐군을 보내자. 정보를 수집하자. 더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적용)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합리적인 생각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있다. 믿음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때로는 무모한 면이 있다. 맹신이 되면 안된다. 맹신이란 약속의 말씀 없이 하면 안된다. 응답받고 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언제나 합리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된다.

(1)노아의 방주 -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

120년 동안 길이 137m, 넓이가 22m, 높이가 13m였다. 축구장보다 큰 크기이다. 헌데 하나님은 일원도 주시지 않았다. 일군을 붙여주시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명령만 하셨다. 그런데 노아는 순종했다. 노아는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갈등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내가 잘 하고 있나?

그럼에도 노아는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모험을 했다. 노아가 바보인가? 이해되지 않지만,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계산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훨씬 더 복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여리고를 정복할 때 보라. 이해가 되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전쟁을 하려면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헌데 하나님은 매일 성을 한 바퀴씩 돌라고 하신다. 돌아버리겠다. 그래도 돌았다. 매일 돌았다.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다. 이해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순종해서 돌았다. 돌아야 정복한다. 순종이 한 번도 쉬운 적은 없다.

 

(3)제일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십자가가 이해가 되는가? 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아무 힘 없이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씻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사도 바울

고린도전서 1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3-24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들, 이방인들이 누구인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다. 미련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파스칼은 말했다. 믿음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신앙은 초월적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인격을 갖고 상식적으로 해야 한다. 순종하려면 합리적인 생각을 뛰어 넘어야 한다.

 

2.둘째로 순종을 가로막는 것은 그러나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본문 27절을 보자.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었다고 하면 끝이다. 27절로 끝내면 된다.

그런데 꼭 뭐라고 하나? “그러나이다.

28절을 보라.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그러나안되겠다는 것이다. 핑계를 대는 것이다. 변명하는 것이다.

12명의 정탐군 중에서 10명이 그러나를 이야기 하니까 의심의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사람들을 감명시켰다.

141-2절을 보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완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에 다 걸려 넘어진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바빠서... 힘들어서... 더워서... 안된다는 것이다.

용서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다 안다. “그러나왜 내가 먼저 해야 하느냐?

그러나를 바꿔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로 바꾸라.

 

오늘 본문에서 갈렙은 뭐라고 말하나?

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찬양)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주님 뜻을 믿기 때문이죠 언제나 나를 향한 신실한 사랑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 우리가 함께 높이며 주를 찬양해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순종을 가로막는 그러나를 버리자. 그리고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도전해 보자.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자. 불순종의 그러나를 버리자. 그러나의 태도로는 절대로 기적을 경험할 수 없다.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도전하고 순종할 때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3.셋째로 순종을 가로막는 것은 메뚜기 콤플렉스이다.

33절을 보라.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네피림이란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영어 번역본 중에는 네피림을 ‘giants’라고 한다.

아낙자손은 대표적인 네피림 가운데 한 부족을 말한다.

 

잘 보라. 누가 메뚜기 같다고 했나? 스스로 그런 것이다. 네피림을 보고 겁을 먹고 스스로 그런 것이다. 남들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해보기도 전에 마음에 패배의식이 가득한 것이다. 메뚜기 콤플렉스는 해보지도 않고 도전해 보지도 않고 못한다. 안된다고 포기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싸워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것이다. 부딪쳐 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적용)젊은이들이 자조적인 말들을 많이 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 개천에서 용 나도 적응 못하고 다시 개천으로 돌아간다. 헬조선이다. 힘들어서 못살겠다. 칠포세대다. 수저타령등등 물론 힘든 것은 안다. 맞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마저 생각없이 말하면 안된다. 아무리 세상에 네피림들이 큰 소리를 치지만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면 안된다. 부딪쳐 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나?

시선의 문제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네피핌을 보고 있다.

믿음이 뭔지 아는가? 영의 눈이 열려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아버지께 너희를 위하여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달라고 말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오셨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헌데 오신 성령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보혜사이시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이다.

파라=곁에서, 옆에서 / 클레토스=도우시는 분이란 뜻이다.

합치면 파라클레토스이신 성령 하나님은 내 곁에서 내 옆에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성령 하나님이 내 곁에서 나를 도우신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봐야 한다. 지금은 멘탈의 시대이다. 우리에겐 파라클레토스가 되시는 성령님이 계시다. 쫄지 말라.

 

요셉을 생각해 보라. 요셉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고 억울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 헌데 놀라운 것은 상처가 없다. 상처를 수 없이 받았는데도 상처가 없이 밝다. 이유가 뭘까? 요셉은 늘 뭐 의식하며 살았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았다. 믿었다. 늘 곁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자살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파라클레토스라는 것을 잊지 말라.

 

삶의 태도를 분명히 하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메뚜기라고 인정하라. 교회에서는 잘난 척하지 말고 약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라. 괜찮다.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라. 하나님 앞에서는 메뚜기라고 인정하라.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당당하라. 뻔뻔하라는 것이 아니다. 담대하라는 거이다.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지 마라. 부딪혀 보라. 도전해 보라.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박국 317-19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결핍이 에너지다. 없는 것 많다. 그래도 우리는 즐거워 해야 한다. 기뻐해야 한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며 기뻐하라. 이것이 진짜 믿음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힘이 되어 주신다. 승리를 주신다. 메뚜기 콤플렉스를 버리라. 패배의식을 버리고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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