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의 불이 붙어야 산다(주일2부) | 이병수목사 | 2016-08-14 | |||
|
|||||
|
2016년 8월 1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요한복음 18:15-18 / 25-27 제목:마음의 불이 붙어야 산다 복습해 보자. 베드로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는 1.주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2.주님과 시선이 마주치면서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오늘 세 번째는 마음의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8장 18절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때는 유월절, 양력으로 3-4월 경 새벽 녘이다. 이스라엘은 12-3월까지가 겨울이다. 날이 몹시 추워 뜰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베드로도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모닥불 주위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생각해 보라. 얼었던 몸을 녹이기 위해서 불을 쬐고 있다. 피워 놓은 모닥불로 몸은 따뜻해 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의 마음은 어떤가? 베드로의 마음은 너무나 춥고 힘들었다. 마음은 전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베드로가 정말 추웠던 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었다.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 지금 그의 마음은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마음의 불이 꺼져 있던 베드로가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8장 25-27절을 보자.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만약에 베드로의 마음에 불이 붙어 있었다면 몸이 추운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 곁에 있지 않고, 주님 곁에서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영혼의 불이 꺼졌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1.왜 베드로의 영혼에 불이 꺼졌을까? 위대한 제자인 베드로가 어찌 이렇게 넘어지게 되었나? (1)예수님과 멀찍이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상황에 대해서 모든 복음서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거리를 ‘멀찍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탄로 날 것 같아서 가까이 못 갔다. 여기에 베드로의 문제가 있었다.. 멀찍이 주를 따랐다는 것은 주님과 마음의 거리였다. 실제 거리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거리로 주님과 마음이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적용)우리도 신앙도 그렇다. 어정쩡한 상태에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신앙생활의 온도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미지근하다. 라오디게야 교회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여 내가 토해 버리겠다.”고 하셨다. 오늘 날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많다. (성경의 예화)멀찍이에서 주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출애굽기에 모세와 바로가 서로 대적하는 것을 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바로가 내 놓는 타협안을 보면 사탄의 전략과 일치한다. ①첫 번째 타협안은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는 것이다.(출 8:28) “바로가 이르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이 표현은 마귀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예수 믿는 것 좋지. 그런데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라, 깊히 빠지지 마라, 적당히 다녀야지 교회에 미치면 안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단의 영향도 있다. 깊히 빠져서 가정도 깨지고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예를 많이 보아서 그렇다. 그러나 정상적인 교회라면 깊히 생각해야 한다. ‘사랑은 하되 너무 뜨겁게 사랑하지 마라. 사랑은 하되 깊히 빠지지는 마라’ 이것이 말이 안되듯이 신앙도 그렇다. 헌데 마귀가 쓰는 수법은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이다. “적당히 믿으라”는 것이다. 뜨거움 없이 취미생활이나 오락하는 기분으로 믿으라는 것이다. ②둘째 바로의 전략은 “남자들만 가라”였다.(출10: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그래! 하나님 잘 믿어라. 그런데 너희만 잘 믿고 자녀들에게는 강요하지 마라. 지금은 공부할 때다. 대학 가서 믿어도 충분하다. 지금은 너희만 잘 믿으라.” 이런 달콤한 감언이설에 부모가 넘어가면 우리는 자녀들을 마귀에게 내어주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자녀를 놓치면 모든 것을 다 놓치는 것이다. 어느 교회 중직자 자녀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 아빠가 저보고 교회 오지 말래요. 우리가 다 알아서 너 위해 기도할 테니 너는 공부에만 전념하래요.” 이것은 무서운 마귀의 유혹이다. 사사시대가 왜 영적 암흑시대였는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기적도 많이 일어났는데 말이다. 그것은 후손들에게 신앙이 계승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제사장, 사무엘, 기드온 얼마나 위대한 자들인가? 헌데 이 하나님이 위대한 종들이 다 자식신앙교육에 실패했다. 물론 자녀 신앙교육은 사람으로 힘으로 안된다. 그러나 자녀 신앙교육에 마음을 써야 한다. 관심을 갖아야 한다. 자녀들이 예배드리지 않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학원가지 않는 것은 난리를 치면서 교회 가지 않는 것은 적당히 여긴다. 자녀가 공부 못하고 좋은 대학 못 가는 것은 괜찮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다. 구세군 창설자인 월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이렇게 말했다. “빨리 우리 자녀들에게 손을 쓰십시오. 사단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손을 쓰기 전에 빨리 손을 써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십시오.” ③셋째 타협안은 “재산은 두고 가라”이다.(10장 24절이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바로가 이번에는 가기는 가되 양과 소는 두고 가라고 말한다. 재산을 두고 가면 적어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마귀는 이렇게 우리를 유혹한다. “그래, 믿어라. 열심히 뜨겁게 믿으라. 그런데 그렇게 돈까지 바쳐가며 믿을 건 뭐냐?” 결국 마지막 유혹은 물질의 헌신 없이 입술만 헌신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말씀한다. 물질을 드릴 때 마음도 따라 드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물질을 드릴 수 없다면 어떻게 그보다 더 어려운 시간이나 건강, 생명을 드릴 수 있겠는가? 이 물질의 문제, 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너무 멀찍이서 하나님을 따르지 마라. (2)베드로가 넘어진 결정적인 이유 중에 또 하나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몇 번이나 경고하셨다. 당부하셨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언제나 실패의 원인은 기도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삶에 실패하면 우리는 핑계가 많다. “환경이 이랬고, 운이 없었고, 경제가 따라주지 않았고…”. 하지만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 결국 우리가 실패한 원인은 기도하지 않아서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기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오늘 날 우리들의 위기가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들다고 한다. 괴롭다고 한다. 헌데 기도는 안 한다. 기도 말고는 다 한다. 이것이 정말 위기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헌데 오늘 날 우리들은 기도 외에 다한다. 죽을 힘을 다해서 기도하면 뭔가가 되도 된다. 헌데 기도를 안해도 너무 안한다. 생각해 보라. 마음은 차디찬 얼음처럼 얼어 있어서 몸이라도 따뜻하게 하려고 모닥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마음은 추운데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고, 아무리 모닥불을 쬔들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이 베드로는 바로 우리이다. 오늘 날은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때이다. 좋은 옷을 입는다. 좋은 집에서 산다. 냉난방이 잘 되어 있다.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몸은 편안하고 따뜻하다. 헌데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가는데 마음은 왜 이리 추운가? 만족함이 없다. 행복하지 않다. 허전하고 늘 불안하다. 화가 나 있다. 왜 그런가? 뭐가 문제인가? 왜 우리 마음에 기쁨이 없나? 감사가 없나? 마음의 불이 꺼져서 그렇다. 영적으로 볼 때 그렇다.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풍요로울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일제 시대 때 성도들이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몸을 따뜻하게 할 만한 시설도 건물도 없었다. 헌데 영적으로는 가장 풍성하였다. 뜨거웠다. 꿈이 있었다. 뜨겁게 사랑했다. 영혼이 뜨거웠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가장 살기 좋은 시대가 되었다. 좋은 모닥불이 많다. 몸은 따뜻하다. 헌데 영적으로는 가장 타락된 한국교회가 되었다. 건물도 좋고, 돈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영적으로 가장 추운 때이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헌신적으로 가장 추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삶은 어떤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을 때 행복지수는 높았다. 헌데 국민소득이 오를수록 행복도는 떨어진다. 모닥불은 쬐고 있는데 마음의 불은 꺼져 있다. 이웃간에 냉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미덕은 사라졌다. 이웃이 사촌이 아니라, 원수가 되어 가고 있다. 마음은 점점 얼어 붙고 있다. 마음이 꿈도 사라졌다. 젊은이들은 자조적인 말들을 하며 포기하는 삶을 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마음의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2.언제 베드로의 마음이 뜨거워 졌는가? (1)회개했을 때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난 뒤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고 뛰쳐 나가 슬퍼하며 통곡하였다. 누가복음 22장에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회개했다는 말은 주님과 등지고 살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부탁을 드린다. 절박함을 갖고 하나님을 찾으라. 이 길만이 사는 길이다. 우리 성도들은 착해서 말씀을 들으면 도전을 받는다. 헌데 문제는 사흘을 못 간다. 헌데 이런 현상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다. 호세아가 이렇게 말한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다.(호 6장 1-3절) 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우리를 다시 낫게 하실 것이며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셨으나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3일째에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므로 우리가 그 앞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것처럼 확실하다.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봄비같이 그가 우리에게 나오실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고백인가? 헌데 바로 이어지는 4절을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너희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무슨 말씀이지요? 잠깐 은혜를 사모하다가 다시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이러지 말아야지! 이제는 기도해야지! 주님만 붙들어야지! 하다가도 얼마가지 않아서 아침 안개처럼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호세아 6장 6절이 답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힘이요 능력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말라. 마음의 불을 붙여 주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 밖에서 통곡하는 베드로를 생각해 보라. 베드로의 몸은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얼어 갔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은 비로소 따뜻해 졌다. 주님 앞에 통곡하는 베드로의 영혼은 드디어 뜨거워 졌다. (2)언제 베드로의 마음이 뜨거워 졌는가? 성령의 능력을 받았을 때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가 성령이 임하셨다. 그 때 임하신 성령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바람 같은 성령, 불 같은 성령이다. 왜 불 같은 성령인가? 성령은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여 주시는 분이시다. 차디찬 얼음 같은 마음을 녹이고, 주님을 향한 뜨거운 불을 붙여 주시는 분이시다. (예화1)빈민 구제 활동을 위해 노력하던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님은 유신시대를 맞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그 일로 긴급조치 대상으로 구속되어 15년을 선고 받고 감방 생활을 하게 된다. 독방에 이감된 김진홍목사님은 추운 겨울, 너무 추워서 추위를 이겨보려고 성경에서 “불”자를 찾았다. 호렙산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말씀 “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를 찾았다. 그리고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는 부분에서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 졌다. 성령 체험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동상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좇으며 사시겠는가? ①몸을 따뜻하게 하는 모닥불을 찾아 가겠는가? 몸만 따뜻하고 편안하면 그것으로 만족한가? 내 영혼은 차디찬 얼음처럼 얼어 있는데도 몸만 따뜻하면 되는가? ②아니면 몸은 춥고 불편해도 영혼의 따뜻함을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구하겠는가? 몸은 힘들어도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사명을 위해서 헌신하고,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룩한 인생이 되기 원하는가? (예화)새가족 교육을 하는데... 그분들이 그런다. 은혜를 받으니 자꾸 드리고 싶더라. 새 가족인데... 십일조를 하셨다. 마리아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왜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전부 부어드렸는지 이해가 되더라. 왜요? 마음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이 꺼진 가룟 유다가 볼 때는 미친 짓이다. 아깝다. 헌데 마음이 불이 붙은 마리아!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리아는 더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것이다. 이것이 이해되는가? 헌데 마리아가 이해가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마음의 불이 붙은 것이다. 이런 사랑을 회복하길 원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모닥불을 찾지 말고 내 영혼에 불을 지피기 위해 기도하시길 바란다. 식어진 마음은 무관심한 채 몸만을 따뜻하게 하는 세상의 모닥불을 좇았던 삶을 회개하자. 멀찍이 주님을 따랐던 것을 회개하자. 내 곁에서 도우시는 성령님께 식어진 마음에 불을 붙여 주시길 기도하자. 베드로를 일으키셨던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에 오시면 내 영혼도 뜨거운 불이 붙어 주님을 따라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될 수 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