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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 이병수목사 | 2016-08-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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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7:15-22 제목: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자기 동일시”를 잘하는 것이다. 고난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까?” 성경을 읽으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뭘까?” 설교를 들으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내가 바로 그 사람이구나!” 라고 받아야 한다. 헌데 누가 들어야 하는데... 하면 안된다. 다윗이 그렇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기에게 적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다윗이 범죄했다. 음욕에 사로잡혀 밧새바를 범했다. 그리고 완전범죄로 꾸미기 위해서 밧새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서 죽게 했다. 헌데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양심이 굳어져서 죄인 줄 몰랐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낸다. 하나님이 다윗을 정말 사랑하신 것이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나단 선지자는 한 이야기를 한다. 다윗 왕이 다스리는 한 마을에 아주 큰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부자는 양고 소가 심히 많았다. 가난한 사람은 암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암양은 그 사람에게는 자식과 같았다. 함께 먹고 함께 살았다. 헌데 어느 날 부자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부자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자기 양은 아까워서 잡지 않고 힘으로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 이 말을 듣자 마자 다윗은 분노하였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 때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그러자 다윗은 변명하지 않는다. 핑계대지 않는다. 왕의 권력으로 위협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들을 때 나에게 주는 말로 들었다. 인정할 줄 알았다. 사람이 실수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정할 줄 아는 것이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동일시를 하길 바란다. 오늘 본문에는 바라바가 나온다. 바라바를 보면서 “내가 바라바구나!”라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1.바라바는 당시 유명한 흉악범이었다. 마가복음 15장 7절에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였다. 바나바는 로마 법에 의해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이제 사형 집행만 남은 흉악범이다. 바나바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죄인이었다. 살인자! 반란죄!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바를 생각해 보라. 간수들의 발자국 소리만 나도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 날도 간수들이 바라바를 찾아온다. 감옥 문이 열리고 끌려 간다. 바라바는 올 것이 왔구나! 이제는 죽는구나! 생각했다. 아무런 소망 없이 데드 워킹이 시작된다.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 나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때 빌라도는 큰 소리를 묻는다. 17절이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로마는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유대인들이 원하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우리 나라가 삼일절, 광복절, 성탄절에 특별사면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곳에 모인 유대인들은 소리친다. 20절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사람들이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친다. 바라바는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고, 대신 바라바를 놓아준다. 빌라도가 외쳤을 것이다. “바라바 너는 이제 자유다. 네 대신 저 예수가 죽는 것이다” 바라바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 대신 예수가 죽는다는 것이다. (적용)우리들이 바라바가 아닌가? 바라바 대신 내 이름을 넣어야 한다. 우리들도 사망선고를 받은 자들이다. 모두가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2.헌데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이다. 바라바는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헌데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바라바가 대신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대속”이다. 대속이란 ransom, Redeem이다. 노예나 죄인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대신 지불한 값을 말한다. 우리들이 대신 치러야 할 죄 값이 있다. 죄 값은 사망이다. 헌데 예수님이 내 대신 값을 치러 주셨다.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이 대신 담당해 주셨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디모데전서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베드로전서 1장 18-19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전설에 의하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바라바는 회심하였다고 한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따라갔고, 십자가 달린 예수를 보고 깨달았다. “예수가 달린 저 십자가에 내가 달려야 하는데... 예수가 대신 달려 죽었구나!” 예수님 때문에 내가 대신 살았구나. 예수님 때문에 제가 대신 자유함을 얻었구나.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돌아서게 되었다. 바라바는 깨달았다. 사람을 죽이고, 온갖 죄를 범한 내 손에 녹슨 못이 박혀야 하는데 문둥병자들을 만져주신 주님, 어린 자녀들을 쓰다듬어 주시는 예수님의 손이 못에 박혔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 내마음 대로 다녔던 내 발에 못이 박혀야 하는데,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시려고 한 걸음이라도 더 재촉하신 주님의 발이 못박혔다. 내 심장이 터져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심장이 터지셨다. 내가 비난받고 멸시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멸시 천대를 받으셨다.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시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다. 이사야 53장 4-6절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찬송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내 대신 담당하셨다. 복음이 무엇인가? 내가 널 반드시 살린다! 그래서 대신 예수님이 담당하시 것이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희망이 되는 곳은 오직 교회 밖에 없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거룩해서 희망이 아니다. 잘 났기 때문에 희망이 아니다. 교회에도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 교회에도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왜 교회가 희망인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돕고,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우리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대신 싸워 주시고, 대신 지켜 주시고, 이끌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희망이고 영광인 것이다.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면 예수님은 그 곳에 함께 하신다. 교회는 대속의 은혜가 넘치는 곳이다. 우리들도 서로 대신 해 주는 곳이 교회이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약하고 힘들어 기도하지 못할 때, 기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해 주기 때문에 힘을 얻는 곳이 교회이다. 내가 상처 받았을 때 상처 받아 보았던 사람들이 위로해 주기에 교회는 소망인 것이다. 내가 외롭고 지칠 때 나와 함께 걸어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교회이다. 나는 사방으로 막혀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 교회이다. (예화) 지난 금요일 사랑하는 민권사님을 심방했다. 그 때 아버지 되시는 민장로님께서 나누신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정말 필요한 말씀을 주셨다. 아버지가 아파하는 딸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고린도후서 1장이다. 찾아보자.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은 지금 고난으로 인해서 너무나 힘들었다. 죽을 것 같았다.)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다고 한다. 사랑하는 권사님의 마음일 것이다. 헌데 이렇게 하신 이유가 뭐라고 하시나?)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왜 고난을 주시나? 우리들의 믿음을 보식 위함이다.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길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믿음이 필요하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믿을 때 어떻게 되는가?)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예수님께서 건지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이 대신 나를 살게 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대속의 은혜, 대신 해 주신 은혜가 넘치는 곳이다. 예수님이 내 대신 고난 받으시고, 내 대신 승리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를 믿기만 하면 예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1장 11절이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뜨겁게 기도하는 일이다. 우리들의 기도가 대속의 은혜가 될 것이다. 우리들의 기도가 고난 받는 사람들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들의 기도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독교는 타력종교이다. 자력종교가 아니다. 누가 빚을 갚아 주어야 한다. 밖에 구원이 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바라바 같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다. 함께 외쳐보자!!! 예수 고난! 내 고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리! 내 승리! 예수 능력! 내 능력! 믿습니까? 교회는 대속의 은혜가 흘러 넘치는 곳이다.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 죽는 것은 못 본다” 그래서 바라바를 살리시고, 제 2, 제 3의 바라바를 살리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지금도 십자가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는 살린다. 반드시 너를 살린다.” 이 은혜로 민권사님도 우리성도들도 살려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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