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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 이병수목사 | 2016-1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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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7:39-42 제목:사랑은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 가운데 힘든 말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어도 별 것 없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왜 저렇게 어려움이 많아? 평생 예수를 믿고 열심히 사는데 왜 병들고 일은 풀리지 않는가?”하는 말들을 듣는 것이다. 오해를 받고 조롱받고 모욕을 당할 때 보면 정말 힘들 때가 있다. 헌데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에는 오해가 있다. 정확히 모르고 판단할 때가 많다. 부활장은 어디이지요? 고린도전서 15장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약에 부활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처럼 불쌍한 사람들은 없다. 이 세상의 눈으로만 보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좋은 게 뭔가? 싶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이 있다. 영생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래서 전혀 불쌍한 것이 아니다. 예수를 잘 믿는 성도들 중에도 암에 걸릴 수 있다. 실패할 수 있다. 가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마라. 예수님 안에 감추어진 보화가 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전재산을 팔아 밭을 산다. 허나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쓸모 없는 밭을 왜 사느냐?고 한다. 세상 사람들의 오해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오늘 본문도 그렇다. 예수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모르고 비난하는 것이다. 헌데 놀라운 것은 예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말 속에 진리가 숨겨져 있다. 저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비난하고 있다. 조롱 속에 진리가 숨겨 있다. 첫째는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라는 말이다. 40절을 보자.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1)예수님이 전에 성전을 사흘에 짓겠다고 하신 적이 있다. 요한복음 2장이다. 요한복음 2장은 유명한 ‘성전청결 사건’이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분노하시면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았다. 그 때 유대인들은 예수께 말한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네가 무엇인데 성전을 무너지게 하느냐? 그 때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유대인들은 깜짝 놀라면서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성전을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헌데 당시 사람들은 건물이 성전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전을 사흘 만에 짓겠다는 것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성전이신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도 성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전 3장 16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것처럼 클리어한 진리는 없다. 교회 교회하는데 교회가 뭐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예요.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건물인 교회를 지으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를 세우라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란 성전이요 교회인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속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그 땅에 세우라는 것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 던져 놓아도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는 성전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이다.
(3)교회, 성전이 된다는 것이 뭐죠? ①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있는 곳에서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뭐라고 했나?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여러분이 성전이라면 기도와 말씀이 있어야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능력을 받고, 성전으로 지어져 가라.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서 건물을 지어가듯이 하루 하루 은혜 받고 기도와 말씀으로 능력을 받아서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 한다. ②교회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했다. 예수님에게 붙어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야 한다. (예화)기억하라. 성전(교회)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교회를 핍박한 로마는 사라졌는데... 핍박 받은 교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역사학자들 중에서 제일 설명이 안되는 단체가 교회라고 한다. 교회는 신비하더라... 2000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살아남았다. 왜 그럴까?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는 참으로 연약해 보인다. 헌데 건재하다. <혀와 이빨을 보라> 이빨이 훨씬 더 강하다. 혀가 이빨을 때렸다는 말이 없다. 오히려 이빨에게 혀가 물려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혀는 교회와 같다. 헌데 시간이 흘러보라. 이빨은 빠져도 혀는 빠지지 않는다. 약해 보이나 강하다. 왜 그런가? 예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러지지 않는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교회인 사도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나면서 앉은 뱅이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킴 같이 교회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생명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신뢰하다. ③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엄마의 사랑이다. 희생과 고생이 있지만 기뻐하는 사랑이다. K-Pop에서 이설아라고 하는 가수 지망생이 자작곡을 불렀다. 제목은 <엄마로 산다는 것은...>이다. 늦은 밤 선잠에서 깨어 /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 부시시한 얼굴 ‘아들! 밥은 먹었느냐’ (이 말 한마디 안에 사랑이 다 들어 있다) ‘피곤하니 쉬어야겠다’며 / 짜증 섞인 말투로 / 방문 휙 닫고 나면 / 들고 오는 과일 한 접시!(엄마가 두고 간 과일 한 접시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 나를 이렇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세상 어디에 내 편인 사람이 있겠나?) 엄마도 소녀일 때가 / 엄마도 나만할 때가 / 엄마도 아리따웠던 때가 있었겠지 / 그 모든 걸 다 버리고 /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엄마!! 엄마로 산다는 것은... (나지막히 한 마디 한다)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됐다’ 언제 철이 나는가? 느낄 때이다. 엄마도 나처럼 예쁠 때가 있었겠지... 나만할 때가 있었겠지... 엄마도 여자이지... 하고 깨달을 때 철이 드는 것이다. 정말 강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엄마의 강함은 무엇인가? 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끝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저는 교회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강함은 무엇인가? 품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기다려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저는 남자 성도들이 사랑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예수를 모신 성전이라면 사랑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진짜 강함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한다. 십자가에서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내려가지 않으신다. 십자가에서 내려가면 당신은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예수님이 진짜 강하신 것은 십자가에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래야 우리들을 살 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가? (적용)생각해 보세요. 이런 교회를 다니고 싶으세요. 쌀쌀맞고, 조금만 잘못하면 지적하고, 찾아가도 누구 하나 환영해 주지 않는다면 그런 교회에 가고 싶으세요? 사랑이 없는 곳, 은혜도 안 되는 곳, 기쁨도 없는 곳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미래교회라는 것을 잊지 말라. 여러분은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말라. 여러분은 어떤 성전인가? 어떤 교회인가?
예수님은 성전이 되시기 위해서 또 하나의 모욕을 들으셨다. 42절이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바로 이것이다. 저들은 조롱하느라고 한 말이지만 이 말은 진리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은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대신 죽으셨다. 당신이 죽지 않고는 우리들을 구원하실 없으셨다. 그래서 당신이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예화)장영희 교수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우산을 들어 주어서 비를 덜 맞게 해 주는 것도 귀한 일이다. 그러나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이 사랑이다. 함께 젖는 것이 공감이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가 이해가 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이해가 된다. 우산을 들어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힘든 우리들을 조금 도와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오셨다.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이 지은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들을 구원하려고 자신은 죽으시러 오신 것이다. (적용)우리는 능력이 없다. 우산 씌워주려고 하지 마라. 그냥 함께 비를 맞자. 함께 길을 가자. 뭐 대단한 일을 해 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함께 묵묵히 사랑하며 가는 것이다. 힘들어 하는 성도들,,, 아파 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너무 맘이 아프다. 대단한 일을 해 주고 싶은데...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후회 없는 사랑을 하자.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랑하자. 열심히 기도하자. 진심으로 관심을 갖자. 진정으로 아파하자.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아 주자. 교회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동역하시기 때문이다. (예화)맥스 루케이도라는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는 골프 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느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골프대회에 나갔다. 네 사람씩 조를 짜서 단체경기를 하는데, 자신의 점수는 엉망이었다. 그런데 같은 팀원들이 잘 쳐서 우승을 하였다. 공이 숲으로 날라 갔던 물속에 빠뜨렸던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제대로 된 4인조에 속했다는 것이다. “보라 하나님과 나는 얼마나 멋진 4인조인가? 성부 성자 성령 나 이렇게 말이다.” 이보다 더 환상적인 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루케이도는 말한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위치적 성화’라고 한다. 내 실력 때문이 아니라, 내 팀원들 때문에 내가 함께 상을 받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합작하여 나를 승리하고 우승하게 하려고 십자가를 사용하셨다. 삼위 하나님은 예수님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려고 십자가를 합작하셨다. 그리고 내려오시지 않고 죽으셔서 나를 구원하셨다. 내가 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 때문에 이긴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는다. 성령님 때문에 혼자가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교회된 우리들은 쓰러지지 않는다. 승리한다. 믿으라. 예수님을 품은 성전이다. 날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전으로 지어져 가자. 어디에 있어도 성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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