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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이병수목사 | 2016-1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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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누가복음 23:39-43 제목: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도 말씀을 들을 때 자기 동일시를 하라. 내 이야기로 들어주길 바란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행악자가 나온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강도들이라고 말했다. 로마 법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을 만한 중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Ⅰ.첫째로 이 두 행악자의 모습에서 우리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사람들이 얼마의 삶을 살았던 결국은 십자가 처형을 받아야 하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죄 값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바로 우리들이 이 죄인들과 같다고 한다. 헌데 우리들 중에는 이 말이 거슬리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십자가 처형을 받을 만한 죄는 짓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젊은 우리 아들 딸들이 죄를 지으면 얼마나 지었겠나? 어떤 분들은 ‘왜 교회는 자꾸 죄인이라고 하느냐?’고 마음으로 항변한다. 나름대로 착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왜 죄인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성경이 뭐라고 하는가?가 중요하다. (1)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8-9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와서(그는 성령이시다. 성령이 오시면 하시는 일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성령이 우리를 죄에 대해서 물으시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는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2)성경은 모든 사람들은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 (예)자녀를 키워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린 자녀들이 말하기 시작하면서 하는 말이 뭔가? 엄마, 아빠 하고 난 다음에는 “싫어!! 내꺼야!!”라는 말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죄를 짓는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서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3장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3)마귀이 유혹이 뭔지 아는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착각하게 만든다. 난 이만하면 착하게 살았다. 난 최소한 하지 않았다. 간음하지 않았다. 살인하지 않았다. 도둑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허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들이 보는 것으로 얼마나 많이 죄를 짓는가? 눈이 금식해야 한다. /살인하지 말라. 난 살인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았다로 만족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을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한 자라고 하신다. 세상에 살면서 한 번도 미워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탐내면 이미 도둑질 한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이다. 행동이 아니다. 마귀는 최소한 행동하지 않았지 않느냐? 안했으면 괜찮다라고 한다. 무슨 생각 무슨 마음을 품든지 행동하지 않았으면 되었다고 한다. 아니다. 주님은 마음에 품으면 이미 행한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죄 때문에 주님이 오신 것이다. 주님이 오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귀한 것이다. 우리들도 두 강도와 다를 바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라. Ⅱ.둘째로 우리 앞에 두 길이 있다. 1.하나는 끝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사람이다. 정말 안타깝다. 끝까지 변화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내가 잘 살고 있나? 잘 살았나? 돌아보는 시간을 갖었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헌데 이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2.또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의 길이 있다. 43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리 하시니라” (1)이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①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했다. 40-41절이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느냐? 우리는 지은 죄 때문에 마땅히 벌을 받는 것이다. 허나 이 분은 아무 죄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심각하게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대로 살았다. 헌데 죽는 순간이 되었을 때 비로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예화)한 사냥꾼이 독수리를 총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헌데 독수리는 자신을 사냥꾼이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정신없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꾼은 독수리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따라가 보니 뱀 한 마리를 보고 있었다. 뱀은 독수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개구리 한 마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헌데 개구리는 무당벌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관찰하던 사냥군은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당장 눈 앞에 먹잇감에 온 정신을 빼앗겨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보지 못하고 있는 독수리와 뱀과 개구리와 무당벌레의 모습이 자신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좇느라 내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앞만 보지 말고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한 번이라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느니 살펴 보아야 한다. 회개가 뭔가? 회개는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하나님이 보일 때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가가 보인다. 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적용)반드시 회개하는 시간을 갖아야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난 죄인이구나! 예수님을 잘 믿지 않는 것이 죄였구나! 똑똑한 척 내가 결정하고 내 마음대로 살았구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②그리고 예수님을 부르라. 42절이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여”라고 부른다. 예수가 무슨 뜻인가? 나의 구원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님을 부르라.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 우리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사람이 이렇게 변화된 이유가 뭘까? 고통의 순간인 십자가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사람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한 것인가? 한 가지 단서가 있다. 눅 23:33-34절을 보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이 사람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었다. 예수님이 용서하시는 기도를 들었다.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저 사람은 뭔가? 정말 소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맞는 것 아닌가? 어떻게 저들을 용서할 수 있나? 나 같으면 저들을 용서할 수 없을 텐데 저들을 용서하나?” 이 사람은 주님의 용서하심을 보고 마음을 연 것이다. 저 분이라면 내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예화)저는 성령을 체험하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난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몰랐다. 헌데 성령체험하고 난 이후에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가 보였다. 중3, 16살짜리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지었겠는가? 헌데 내 죄가 보였다. 내 안에 살기와 악의와 분노와 미움이 가득한 것을 그 때 알았다. 저의 큰 형은 다섯 살에 약을 잘 못 먹어서 정신 지체자가 되었다. 헌데 동네 형들이 많이 놀렸다. 바보가 된 형을 붙들고 울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그 때는 어려서 힘이 없던 나는 크면 형들을 놀린 저 놈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악의가 가득함을 보게 되었다. /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나! 불순종한 것들이 보였다. 엄마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한 것들이 보였다. / 거짓말 한 것들 / 악담과 욕설을 퍼부은 것들이 다 떠올랐다. 내 죄가 보이면서 이런 날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 용서해 달라고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 내가 죄인이며, 내 죄를 씻어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임을 믿게 되었을 때 십자가위에서 드린 주님의 기도는 바로 나를 위한 기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여 병수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병수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헌데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이 기도를 하신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예수님은 이 기도를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시고 계시다. “아버지여! 아무개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회개한 강도는 이 기도를 들은 것이다.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간단하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진실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 죄를 씻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인해야 한다. 예수여!! 예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 나를 기억해 주소서!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나를 기억해 주소서!! 부르짖으라. (2)그러면 구원의 결과는 무엇인가?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은 무엇인가? 43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①첫째로 낙원을 주겠다고 하셨다. 낙원은 천국이다. 낙원은 있다. 낙원은 죄와 고통이 없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과 4절을 보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구원은 즉각적으로 받는 것이다. ②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임마누엘을 약속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주님은 구원하신 사람들을 절대로 혼자 두지 않으신다. 예수를 믿어서 받는 복, 선물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천국이다. 앞으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재림이라고 한다. 헌데 주님은 재림하실 때까지는 우리를 혼자 두시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재림이라고 한다면 매일 매일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재림을 거꾸로 읽어서 “임재”하시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임재하시고 계시다. (3)성도들의 탄식은 무엇인가? 목회를 하면서 안타깝고 답답한 것이 있다. ①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고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읽지 않는다. 성경 속에 다 들어 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고 내 길에 빛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으라고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다 알게 된다고 하신다. 성경을 가까이 하세요. ②또 하나님은 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데 왜 안 만나 주시나? 주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헌데 이 말은 정말 틀린 말이다. 하나님은 이미 내 안에 와 계시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고 계신다. 성경에 수 없이 기록해 놓았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 증거들이 수 없이 많다. 헌데 날 만나 달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성령님 와 주십시오 하는 말은 틀린 말이다. 성령님이 내 안에 이미 와 계신 것을 믿으라. 이것을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믿으라. 내 생각을 의지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확인을 하라. 지난 주일 말씀을 드린 것처럼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의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 그대로이다. 왜 모르는가? 왜 생각을 안하는가? (예화)마음이 우울하고 힘들 때 좋은 친구 만나서 차 한 잔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친구를 만나서 한 두 시간 이야기 하고 차를 마셔도 힘이 나는데... 생각해 보세요.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힘이 나지 않는다면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저도 화를 낸다. 말 실수를 한다. 내세울 만한 삶도 아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주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믿어진다. 죄를 지으면 두렵다. 사람에게 화를낸 것인데 하나님이 두렵다. 또 주님을 실망시킨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성령님을 근심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반대로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힘이된다. 주님과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 받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나고, 치유가 된다. 좋은 친구가 내게 있어 좋다. 길을 가면서도 주님과 대화를 한다. 무엇을 하든지 주님에게 마음을 드린다. 교회에 와서 눈을 감고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 진다. 문제가 해결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기쁘다. 이 은혜가 있길 바란다.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사모하라. 찬송중에도 기도 중에도 말씀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주신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느끼고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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